메뉴 건너뛰기

close

ㄱ. 삼양라면 특유의 맛

.. 삼양라면은 세가지 종류의 용기로 출시되어 삼양라면 특유의 맛을 언제, 어디서나 즐기실수 있습니다 ..  〈삼양라면〉 봉지에 적힌 글월

많은 사람들이 즐겨먹는 라면 봉지를 가만히 살펴봅니다. 삼양라면이든 농심라면이든 오뚜기라면이든 잘 살펴보면 그게 그 말인데, 이 봉지에 적는 글월을 제대로 적는 회사는 없어 보입니다. 뭐, 이런 글월까지 꼼꼼히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만, 한두 개를 만드는 물건도 아니고 수천만, 아니 수억 개를 만드는 물건에 적히는 말이 엉망이거나 어렵거나 얄궂다면 어떻겠습니까. 띄어쓰기 틀리게 쓰는 대목도 보기 안 좋지만, 띄어쓰기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훨씬 큰 골칫거리가 있습니다.

 ┌ 삼양라면 특유의 맛
 │
 │→ 삼양라면에만 있는 맛
 │→ 삼양라면에 남달리 있는 맛
 │→ 삼양라면이라야 즐길 수 있는 맛
 │→ 삼양라면이기에 즐길 수 있는 맛
 │→ 삼양라면에서만 즐기는 맛
 │→ 삼양라면이 선사하는 남다른 맛
 └ …

먼저 ‘특유의’를 살펴봅니다. “특별하게 있다”를 뜻하는 ‘특유(特有)’인데, 가만히 보면, ‘특유’라는 말을 자꾸 쓰니 토씨 ‘-의’도 들러붙는구나 싶습니다. ‘특유’라는 말은, 뒤에 ‘-의’를 붙여 ‘특유의’로만 쓰인다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뒤에 ‘-의’를 붙일 때 제구실을 하는 말, 우리 말에는 없는 말, 일본사람들이 즐겨쓰는 말, 우리 삶과 동떨어지고 우리 말을 망가뜨리는 못된 말 가운데 하나가 ‘특유’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구나 싶습니다. 이런 말을 꼭 써야 하지는 않겠지요.

 ┌ 세가지 종류의 용기로 출시되어
 │→ 세 가지 용기로 나와서
 │→ 세 가지로 저마다 다르게 나와서
 │→ 세 가지 크기로 나와서
 │→ 세 가지로 나와서
 └ …

다음을 봅니다. 여기에서는 무엇보다 “세 가지”로 띄어서 써야 맞습니다. 다만, 띄어쓰기는 틀릴 수 있다고 할지 모르겠는데, 온나라 사람이 즐겨먹는다는 라면봉지에 쓰는 말이라면, 이런 띄어쓰기도 더더욱 마음을 기울여 주어야지요. 이런 띄어쓰기쯤은 올바르게 맞춰 주어야지요.

“세 가지 종류의 용기”란 무슨 소리일까 헤아려 봅니다. ‘용기(容器)’ 크기가 다르다는 소리인지, 세 가지가 맛이 다르다는 소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얼추 보아 그릇 크기만 다르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그러면 “크기가 다르다”라고 적으면 됩니다. 괜히 군더더기 말까지 붙여서 꾸밀 까닭은 없어요. 없는 모습도 있는 듯 보이고, 있는 모습은 감추거나 숨겨서 없는 듯 보여야 물건이 잘 팔린다고 해서 이렇게 적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해야 사랑을 받고 인기를 얻어 잘 팔리는 물건이 라면인지 모르겠고요.

그렇지만, 값싼 라면 하나라고 해서, 이 라면을 담는 봉지에 적는 글월을 아무렇게나 적을 수는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들도 즐겨 끓여 먹는 라면임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어린아이들 가운데에는 틀림없이 라면봉지에 적힌 글월을 읽는 아이도 있을 테고, 그 아이는 이 봉지에 적힌 말을 그대로 읽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에 물들고 길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책임은 누가 집니까. 라면회사에서 ‘잘못된 말을 아이들이 배우도록 한’ 책임을 질 수 있습니까.

아니, 라면회사는 이런 책임을 져야 합니다. 라면회사도 지고 출판사도 지고 공책회사와 볼펜회사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런 책임을 못 지겠다면 제발 라면봉지에 적는 말을 엉망으로 적지 않도록 조금이나마 눈길을 두거나 살펴보아 주면 좋겠어요. 이것 하나 바로잡는 데에는 돈도 시간도 품도 거의 안 들어가잖아요. 마음만 아주 살짜쿵 들 뿐이에요.

ㄴ. 노년 특유의 풍요로운 정신 세계

.. 노년에는 노년 특유의 풍요로운 정신 세계가 틀림없이 있습니다 ..  《요시야마 노보루/김동섭 옮김-늙음은 하느님의 은총》(성바오로출판사,1991) 130쪽

‘노년(老年)’은 ‘늘그막’이나 ‘늙은이’나 ‘늙은 나이’로 고쳐 줍니다. ‘풍요(豊饒)로운’은 ‘넉넉한’이나 ‘푸진’이나 ‘너른’으로 손질하고, ‘정신세계(精神世界)’는 ‘마음밭’이나 ‘마음그릇’으로 손질합니다.

 ┌ 노년 특유의
 │
 │→ 늘그막에만 있는
 │→ 늙은 나이에만 보이는
 │→ 늘그막에만 누릴 수 있는
 │→ 늘그막다운
 │→ 늙은 사람한테만 있는
 └ …

사람은 누구나 제 나이에 걸맞게 아름답습니다. 한 살짜리 아기일 때에는 아기라서 아름답습니다. 열 살짜리 어린이일 때에는 어린이라서 아름답습니다. 스무 살 젊은이일 때에는 젊은이라서 아름답습니다. 서른다섯 무르익는 나이에는 무르익음이 아름답습니다. 쉰 살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라서 아름답고, 예순다섯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라서 아름답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한 해 자란 나무는 한 해짜리 나무이기에, 열 해 자란 나무는 열 해짜리 나무이기에, 백 해 자란 나무는 백해짜리 나무이기에 아름답습니다.

늘 그대로, 언제나 그처럼, 제 모습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즐길 수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토씨 ‘-의’#-의#우리말#우리 말#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