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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다녀 왔습니다. 요즘 고향에 자주 가게 됩니다. 어머니에게 고향보다 더 큰 위안이 없어 보입니다.

진정한 고향, 땅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면 고향이 더 향긋한 그리움이 되나 봅니다.

 

고향에 가면 정신이 아주 총총해지십니다. 내가 못 알아보는 옛날 사람들을 어머니는 다 알아보십니다. 어릴 때 헤어진 내 또래 사람들이 몇몇 귀향을 해 사는데 나는 못 알아 봐도 어머니는 한눈에 알아봅니다.

 

"니가 도북띠기 둘째 아들 형포 아이가?" 하십니다.

 

...놀랍습니다.

 

 

 

거연정 앞 냇가에 세워진 400년 역사의 정자
거연정앞 냇가에 세워진 400년 역사의 정자 ⓒ 전희식

아름다운 내 고향 마을에 있는 정자. '거연정'. 코흘리개 시절 여기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놀다 홑이불 하나 덮고 자기도 했습니다.

 

"이거 다 우라부지가 맹글은기라. 거연정도 다리도... 저기 저 나무도 우라부지가 심은기라."

 

쳇. 뭐든지 자기 아버지가 다 했대요. 쳇.

 

"어머니. 저기 저 구름은요?"

"저 구름도 우라부지가 하늘에서 맹그런기라."

 

나 원 참.

 

거연정 아랫쪽 다리 위로 와서 거연정을 봅니다.
거연정아랫쪽 다리 위로 와서 거연정을 봅니다. ⓒ 전희식

 

지금은 이렇게 다리가 놓여 있지만 옛날에는 비만 오면 떠내려가는 나무다리였습니다. 이 다리 밑에서 빨래하고 멱 감고 했답니다. '거연정'을 더 자세히 감상하려고 아래쪽에 새로 놓인 다리 위로 왔습니다.

 

거연정이 잘 보이는 이곳에서 한참을 어머니 옛 이야기 들었습니다. 내가 다 아는 사연들도 있고 첨 듣는 사연들도 엄청 쏟아져 나왔습니다.

 

제가 할 역할은 겨우 어머니가 이리 가자 그러면 이리 가고 저리 가자 그러면 저리 가고. 큰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모든 상황을 주도하십니다.

 

동네 동네 할머니들
동네동네 할머니들 ⓒ 전희식

마을로 들어서서 우리집으로 가는 길에 나락을 널고 있는 동네 할머니들을 만났습니다. 앞쪽 할머니는 환갑이 갖 지났는데 시집오던 날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마도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일텐데 새색시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짓궂게 놀려대는 구경꾼들 때문에 들러리들이 끄는 대로 오가면서 끝내 훌쩍훌쩍 울었던 분입니다.

 

전라도 운봉에서 시집와서 운봉댁이라 불립니다.

 

호박 고향집 마당에서 따 온 호박
호박고향집 마당에서 따 온 호박 ⓒ 전희식

고향집 앞 마당에 심어 놓았던 호박이 싱싱하게 온 마당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늙은 호박 만들 것은 남겨두고 나머지를 다 땄더니 열 몇개나 되었습니다. 어머니 좋아 하시는 호박잎도 한 자루 따 왔습니다.

 

말려서 겨울에 호박잎 국밥 해 드릴 생각입니다.

작은 호박은 볶아 반찬했고 부침개도 만들어 먹었습니다. 큰 호박들은 썰어서 말렸습니다. 모두 어머니가 했습니다.

 

이 좋은 가을날.

치매 부모님 모시고 나들이 길 나서 보라고 하늘이 불효자의 속죄기회를 주시는 듯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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