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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보이는 백사장이 위화도다.
▲ 압록강 푸른 물 뒤에 보이는 백사장이 위화도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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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을 출발한 소현은 봉황성에서 원손과 맞교환하고 애하에 도착했다. 강 건너 멀리 의주 삼각산과 백마산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고국인가. 소현은 세자빈과 함께 배에 올랐다. 압록 빛 강물이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폐부를 파고드는 차가움이 상쾌했다. 의주에 도착한 소현은 평안감사와 의주부윤의 영접을 받았다.

의주를 출발한 소현은 일로 남행을 계속했다. 평양과 개성을 지나 임진강을 건넜다. 어머니 인열왕후가 잠들어 있는 파주 장릉을 참배하고 진관사 입구를 지나 고개 마루에 이르렀다.

"예전엔 이 고개가 질퍽거렸는데 많이 좋아졌구나."
질퍽이던 마루턱에 박석이 곱게 깔려 있었다.

"오가는 사신들이 불편이 많다고 호통을 쳐 길을 고쳤습니다."

박석고개는 고개답지 않게 마루턱에 물이 많이 흘렀다. 북쪽 숲 사이에 흐르는 수맥이 노출된 음골이었던 것이다. 이곳을 지나는 청나라 사신들이 가죽신에 붉은 황토물이 묻고 자신들의 짐수레가 진창에 빠져 곤혹을 치른다고 노발대발하자 조정에서 부랴부랴 길을 넓히고 박석을 깔았던 것이다. 백성들의 편리를 위해 보수한 것으로 생각했던 소현은 청나라 사신들을 위해 길을 넓히고 돌을 깔았다는 설명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밥도 팔고 여자도 판다 하옵니다

양천리에서 휴식을 취한 후, 산골고개를 넘은 소현은 시야에 펼쳐진 수많은 여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쟁으로 피패해진 나라에 먹고 마시고 노는 유흥여각이 번성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이봐라 보덕, 저 많은 여각은 누가 드나든단 말이냐?"
"전쟁으로 상업이 발달하여 돈 많은 장사치들이 많아졌다 하옵니다."

"저기에서 파는 것은 무엇 무엇이다 하더냐?"
"밥 때가 되면 밥도 팔고, 늦으면 재워주고, 손님이 원하면 여자도 붙여준다 하옵니다."

"그 여자들은 어떤 부류의 여자들이냐?"

"여각과 주막을 전전하는 작부들도 있지만 심양에 잡혀갔다 속환되어 돌아온 포로 중에 집에서 쫓겨나와 오갈데 없어 이곳에서 작부질을 하는 여염집 여인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뭣이라고?"
소현은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아연실색했다. 소현은 걸음을 멈추고 아직 땅거미가 짙어오지 않았는데도 불빛이 휘황찬란한 여각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포로 한 사람을 빼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속환금을 지불했느냐? 그 뿐이냐? 돈을 바치면서 저들에게 얼마나 비굴하게 읍소했느냐? 그렇게 빼내온 여자들을 다시 쫓아내어 작부질을 하게한다니 이해할 수 없구나."

"금주위로 보내는 군량미를 빼내어 삼개나루에서 처분하고 여기에서 여자 끼고 진탕마시며 분탕질을 하는 자들도 있다 합니다."

이것은 분명 범죄행위다. 당장 잡아들여 물고를 내고 싶지만 세자에게는 그러한 권한이 없다. 부왕에게 주청을 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부왕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꼴이다. 소현은 입술을 깨물고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으으음, 한심한 작태로군."

소현은 괴로운 신음을 토해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영접 나온 관리들이 몸둘바를 몰라 했다. 무악재고개를 넘어 홍화문에 이르는 연도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몰려나와 길을 메웠다. 한성에 들어온 소현은 양화당으로 직행하여 부왕을 알현했다. 소현을 호위한 청나라 장수가 도르곤과 우진왕이 섭정왕 자격으로 보내온 서찰을 인조에게 전했다.

"지난날 선제께서 생존하셨을 때에는 번왕이 제왕에게 선물을 주는 일이 있을 경우 선제께 알리고 받았으나 이제는 황상(皇上)이 어리시어 일체의 정무를 모두 우리들이 거들고 있다. 우리들이 어린 군주를 모시고 국정을 거들면서 외번(外藩)의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옳지 않다고 생각하니 앞으로는 귀국에서 번거롭게 예물을 보내지 말라.”

친정 방문을 거절당하는 세자빈

청나라는 상중이다. 연회도 생략되었고 영접행사도 간단하게 끝났다. 세자를 호위한 청나라군사들이 숙소로 돌아가고 3정승이 머리를 맞댄 구수회의가 열렸다.

"세자빈이 이역에서 어버이의 상을 만났으니 슬픈 마음으로 궤연에 임하고 모친을 살펴보는 것은 인정입니다."
영의정 심열, 좌의정 김자점, 우의정 이경여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품의했다.

"세자빈은 여염집 아낙이 아니지 않느냐?"

"후비(后妃)가 신하의 상에 친히 임하는 일이 옛날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빈궁이 부모의 상에 가서 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석기가 우의정을 지낸 세자의 신하이긴 하지만 황후와 왕비도 친정어버이의 상에 곡한 전례가 있으니 허락해 달라는 것이다.

"과인이 지금 재변이 참혹하고 민심이 안정되지 않은 것을 걱정하느라 법 밖의 예나 외람한 거조는 생각할 틈이 없다."
인조가 법을 내세워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중궁과 빈궁의 사가 문상은 법에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관습법으로 허통되고 있던 관례다.

"세자께서 청나라 아문에 귀국을 청할 때 빈궁과 함께 돌아가겠다고 내세운 이유가 부친의 상을 거론하였는데 찾아가 곡하지 않으면 저쪽에서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영의정 심열, 좌의정 김자점, 우의정 이경여가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한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하지 않았느냐?"
인조의 완강한 벽에 부딪혔다.

"빈궁이 상차(喪次)에 임하고 모친을 살펴보는 일은 비록 예법에 어긋나나 인정에 합당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중외의 논의를 진달하였는데 전하께서는 이를 따라주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도리어 엄중히 물리치시니 신들은 황공스럽기 그지없어 대죄합니다. 아울러 사직을 청하오니 면직시켜 주소서."
대소신료들도 맞불을 놓았다.

"내가 옛 규례를 고집하는 것은 뒤 폐단이 있을까 염려해서이다. 경들은 대죄하지 말라. 그리고 사직하지 말라."

 비석이 있는 지점에서부터 의주까지 천리. 동래까지 천리. 딱 한반도의 중간지점을 표시하고 있다. 그래서 비석명칭이 양천리(兩千里)다. 원래의 비석은 훼손되었고 2005년 비석을 다시 세우면서 동래를 부산으로 표기했다.
▲ 양천리비석. 비석이 있는 지점에서부터 의주까지 천리. 동래까지 천리. 딱 한반도의 중간지점을 표시하고 있다. 그래서 비석명칭이 양천리(兩千里)다. 원래의 비석은 훼손되었고 2005년 비석을 다시 세우면서 동래를 부산으로 표기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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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빈궁은 친정을 방문하지 못하고 소현과 함께 북행길에 올랐다. 돈의문을 빠져 나온 세자 일행이 무악재 고개를 넘어 양철평에서 잠시 멈추었다. 가마에서 내린 소현이 당산나무  정자에 자라를 잡았다. 정자 바로 옆에는 양천리 비석이 있었다.

"여기에서 동래까지 천리, 의주까지 천리입니다, 나는 의주에서도 7백 여리를 더 가야 합니다. 오라는 사람은 없어도 나는 가야 합니다."
갑자기 숙연해졌다.

"멀리 이역 땅에 있다 보니 병중에 계신 전하께 시약(侍藥)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항상 마음이 아픕니다. 여러분이 가까운 곳에 있으니 전하를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망극하옵니다."
뒤 따라 온 승평부원군 김류, 익녕부원군 홍서봉, 청원부원군 심기원, 한원부원군 조창원이 맨땅에 머리를 조아렸다. 주변을 살펴본 소현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북경의 바람이 하수상합니다."
"무슨 소식이라도 있으신지요?"

모두들 귀를 쫑긋했다.

"폐하의 황군이 반란군에 밀리고 있다 합니다."
여기까지 말한 소현이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펴보았다. 심양의 황제를 두고 북경의 황제를 거론했으니 청나라 군사들의 귀에 들어가면 평지풍파를 일으킬 문제의 발언이다.

"황제 폐하의 안위도 위태롭다 합니다."
"아니 이럴 수가…. 그게 참이란 말씀입니까?”

떠도는 풍설은 있었다. 허나, 세자로부터 북경 소식을 전해들은 원로와 대소신료들은 믿어지지 않은 현실 앞에 망연자실했다. 명나라가 잠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믿고 싶었다. 하늘같이 떠받드는 대국은 능히 고난을 떨쳐버리고 다시 세상의 태양으로 우뚝 서리라 믿었다. 하지만 태양이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심양에 있지만 나는 나그네입니다. 바람이 불면 부는데로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와야 하는 몸입니다. 어쩌면 북경에 가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자면 가야지요. '아니'라고 말할 권리가 나에게는 없습니다. 내가 북경에 가게 되면 조선은 절망입니다."

모두가 한숨을 지었다. 청나라에 억류되어 있는 소현이 북경에 들어간다는 것은 북경이 청나라 수중에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환송회를 마친 원로대신들은 도성으로 돌아가고 이사(貳師) 이명한, 보덕(輔德) 서상리, 문학(文學) 이래, 사서(司書) 임한백은 세자를 호종하여 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자를 호종하는 신하 중에 이색적인 사람이 있었으니 환관 김언겸이다. 그는 귀인 조씨의 심복이었다.


태그:#소현세자, #양천리, #의주, #심양, #압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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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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