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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가 되는 삶들>
<쓰레기가 되는 삶들> ⓒ 새물결
세상은 진보에 대한 강박증으로 무장한 채 문명을 현대세계의 지금 이 시간, 이곳까지 끌고 왔다. 중턱에서 한숨 돌릴 여유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높은 곳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 뿐. 그는 브레이크 없는 차를 몰고 있는 운전자이고, 결승선 없는 무한 경주에 뛰어든 마라토너다.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현대 세계는 당신의 뒷덜미를 끊임없이 밀어댈 것이다.

'계속 뛰어라. 멈춘다는 것은 당신이 쓰레기가 된다는 뜻이다.'

최근 출간된 지그문트 바우만의 <쓰레기가 되는 삶들>은 '인간=쓰레기'라는 다소 파격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최근 사회를 새롭고도 밀도 있게 진단한다. 새로움과 진보를 꿈꾸며 끝없이 타오르는 욕망이 현대 사회를 어떻게 변모시켰는지, 그리고 사회가 거기서 배제된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풍자적 시각과 냉철한 분석이 돋보이는 책이다.

쓰레기가 되거나, 쓰레기가 될 예정이거나

사회의 안과 밖에 놓인 유령들은 저마다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청년 백수, 조기 퇴직자, 비정규직 근로자, 이주 노동자(불법 체류자), 난민, 망명자 등이 바로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말하는 그 유령들이다. 그들은 책 제목처럼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책에서 말하는 쓰레기란 잉여의, 여분의 인간들, 즉 공인받거나 머물도록 허락받지 못했거나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지 않는 인간집단을 지칭한다. 그들은 현대화의 질서구축과 경제적 진보에서 탈락해 온전한 의미의 현대적 생활방식을 영위하지 못한다.

텔레비전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패션 트렌드와 값비싼 유흥, 고급 예술 등도 결국에는 특권화된 지역에서만 누릴 수 있다. 문명의 생산라인에서 쓰레기로 전락한 그들은 불안정한 줄 위를 걷는 위태로운 폐기물 취급을 받을 뿐이다.

초국적 기업의 이익은 보호하면서도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국가 권력은 규율, 억지, 통제를 통해 사람들을 관리한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기계의 일부분이 되라고 강요한다.

감옥과 형벌제도를 통한 교화 또한 이 작업의 일부분이다. 주변화된 사람들은 끊임없이 밑으로 침몰하고, 아직 남은 이들은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발버둥치기에 급급하다. 유동적 현대의 합리성은 과거를 배제한 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는 폭주기관차가 되어버렸다.

"상호 경쟁적인 무수한 설계 · 건설 프로젝트들 한복판에서 누구도 진정으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본문 163쪽)

이주 노동자들 역시 편견과 경제 불안에 휩싸여 점점 추방되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의 영국, 프랑스가 그러하며 대한민국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권력은 그들을 게토화된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는 이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들은 이주자들을 테러리스트, 범죄자와 동일선상에 놓는다. 최근 '불법체류자 추방운동본부' 같은 모임이나 이주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접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정치권력은 범죄 세력과 싸울 수도 없고 싸우려고 하지도 않는다.(중략) 교외 지역의 불운한 이주자들과 망명자 수용소에서 공공의 적 제1호를 찾는 것이 훨씬 더 시의적절하고 편리하며, 무엇보다도 문제의 소지가 적다." (120쪽)

정치권력은 거대 범죄조직이나 국제적 기업의 불법 행위 등을 대해서는 온순한 태도를 보이나, 이주 노동자들에게는 더 없이 차갑고 냉정하다. 그게 더 쉽고 간편한데다 국민들의 지지까지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계화의 다양한 방식을 무한정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중요한 노동자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무조건 불법 처리해 싹 다 잡아들인다고 해서, 이주 노동자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부와 궁핍의 계급적 간극이 가면 갈수록 심하게 벌어지는 자유경쟁, 약육강식의 현대 사회는 이주 노동자들을 그저 추방해야할 쓰레기 정도로만 여기고 있다.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법률의 모순점을 발견하고 이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인 일이겠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불안정한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빅브라더'의 21세기형 진화 

"유동적 현대의 삶은 보편적 일시성을 나날이 시연하고 있다.(중략) 모든 것은 임박한 죽음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태어나고, 사용 기한 딱지가 붙어 생산라인을 떠난다." (176쪽)

저자는 현대 세계를 과잉, 잉여, 쓰레기, 그리고 쓰레기 처리의 문명이라고 지적한다. 영원한 것이 없는 불확실한 세상은 인권 보다는 경제라는 명제 아래 끊임없이 생산라인을 가동하며, 사람들을 하나하나 처리하고 있다. 누군가는 합격, 누군가는 불합격. 합격된 이에게 세상은 더 없이 아름답고 평온한 것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에게 세상은 새로운 의미의 빅브라더나 다름없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는 사람들을 통합시키기 위해 감시하는데 열중했다. 하지만 21세기의 빅브라더는 정반대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골라내 쫓아내거나 추방시키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이민국 관리자들에게 입국 불허자 명단을 제공하고, 은행가들에게 신용 있는 회사에 취직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의 명단을 제공한다'(241쪽)고 말하고 있다.

빅브라더의 불빛은 세상의 모든 곳곳을 비추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 청년 백수 200만, 88만원 세대란 말이 너무 익숙해진 지금 이 곳에서는 누구도 그 빛을 피할 수 없다. 음울한 유령들은 세상을 부유하고 있다. 그들은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한다. 안전장치와 사회보장은 사라졌고, 매일이 곧 도전이자 모험이다.

자유경쟁과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는 누군가에게는 축복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 없이 쓰라린 지옥으로의 초대가 되었다. 문명은 새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으로 끊임없이 여분의, 불필요한, 쓸모없는 것을 잘라내 버렸고, 그 덕분에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이 탄생했다. 어두운 현실은 밑으로 계속 가라앉고 있으며,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아름다움은 핏빛 욕망을 감춘 채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쓰레기가 되는 삶들 - 모더니티와 그 추방자들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정일준 옮김, 새물결(2008)


#지그문트바우만#쓰레기가되는삶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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