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 겉그림 파트릭 펠루의 〈환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책 겉그림파트릭 펠루의 〈환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 프로네시스

'전국민의료보험제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국민의료보험제도'는 아주 잘 만들어진 일 같다. 병원 진찰과 약 처방을 받을 때에 본인 부담금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보험공단의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기관지가 좋지 않는 우리집 세 아이들은 겨울철이면 일주일이 멀다하고 병원을 찾는데, 그 역시 많은 비용 부담을 덜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내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호박죽을 끓여서 신호등을 건너가고 있는데 그만 차에 치인 것이다. 그 일로 왼쪽 무릎 아래가 분쇄골절을 입었고, 오른쪽 발목 부분은 몇 군데 금이 갔다. 그것을 가해자가 든 보험회사로부터 모든 치료를 받고 있으니 다행스런 일이다.

 

그런데 만에 하나라도 국민의료보험제도를 민영화 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종부세도 감면해 주려는 마당이니 돈 있는 부자들이야 더욱 좋을 것이다. 많은 돈으로 값비싼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 없는 서민들은 자체 부담 때문에 도무지 치료할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파트릭 펠루의 <환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그런 폐해를 미리 예측하게 한다. 1995년부터 프랑스 공공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한 그는 2003년 여름 프랑스의 폭염사태로 큰 인명피해가 있을 것을 내다보고 언론에 경고를 보냈다. 그로 인해 스타가 된 의사다. 그는 현재 사르코지 정부가 수익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공공종합병원들을 기업화하려는 것을 최전선에서 저항하고 있다.

 

사실 프랑스 사회는 사회보험제도, 다시 말해 비영리의료법인(공공종합병원) 제도를 도입한 나라라고 한다. 이 책을 옮긴 양영란 님도 그런 제도 덕택에 아이를 낳고, 몸조리를 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모든 기간 동안의 입원료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육아비용까지 지급받을 정도였으니 그 혜택이 얼마나 좋았겠는가. 물론 그 일은 198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 사르코지 정부는 비영리의료법인을 운영할 수 있는 자금이 고갈된다는 명목 하에, 아울러 수익성을 최대한 끌어 올릴 수 있는 명목 하에 ‘2007년 종합병원개혁계획’을 세워 공공종합병원 제도를 바꾸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응급실의 의사와 간호사와 병상의 수를 대폭 줄이고, 병원의 동력과도 같은 배관과 기관공들까지도 외주용역회사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처해 있으니 그가 몸을 던져 막으려는 이유를 대충 알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사회의 공공종합병원은 특정 계층이나 특정 부류의 전유물이 아니다. 프랑스인 모두의 재산이며, 프랑스 사회의 안정망을 형성하는 마지막 보루다. 그것을 해체하는 일이란 그 사회를 악창과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게 만드는 일이다. 사르코지 정부가 불도저처럼 그것을 밀어붙이려하고 있으니 그가 시민들과 함께 막아서려는 것이다.

 

“의료행위별 수가 책정을 보자면, 그걸 시행해야만 병원은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다. 그러니 공공종합병원이나 사설종합병원들이 저마다 가장 수가가 높은 의료행위에 치중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인도주의를 표방하는 병원 문화는 사라지고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기업의 속성만 남게 되어, 급기야 환자를 선별해서 받는 비극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162쪽)

 

그와 같은 일들이 아직까지는 우리사회에 일어나고 있지 않다. 나 같은 서민들에게는 극히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종부세를 점차적으로 없애겠다고 하는 현 정부가, KBS를 민영화하듯이 혹시 의료보험제도를 민영화하려고 한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발생할 것이다.

 

이 끝부분에 삐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모르겠지만, 현 정부가 종부세를 없애겠다고 벼를 것이 아니라, 종부세를 그대로 두거나 아니면 좀 더 낮춰서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하여 프랑스처럼 '전국민의료보험제도'의 혜택을 받게 해 주는 것은 또 어떨까...?


환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 시장주의 의료개혁에 맞서는 공공병원 의사의 고군분투기

파트릭 펠루 지음, 스테판 샤르보니에 그림, 양영란 옮김, 프로네시스(웅진)(2008)


#환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파트릭 펠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