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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서역 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의 역사는 대규모로 정비되어 그 모습이 크고 웅장하다.
베이징서역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의 역사는 대규모로 정비되어 그 모습이 크고 웅장하다. ⓒ 김대오

한중문화협정의 일환으로 전국 50명 중국어교사들과 함께 베이징에서 실시되는 6주 연수에 참가하게 되었다. 4주간의 어학연수에 이어 열흘간 뤄양(洛陽), 시안(西安), 충칭(重慶), 창지앙(長江) 등을 여행하며 중국내륙의 중원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그때 보고 들은 것들을 정리하여 향후 연수 참가자나 그 지역을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다.

밤 10시 30분, 정저우(郑州)행 기차를 타기 위해 거의 두 시간 전에 베이징서역에 도착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모든 역에 설치된 짐 검색대를 통과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 대합실로 이동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두 분의 선생님께서 과도가 좀 길다는 이유로 짐 검색대에서 한참을 시달리다가 결국 일행을 놓쳐 '길 잃은 양'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짐을 가득 어깨에 지고 가는 많은 민공(民工, 농민 출신 도시노동자)들이 자리를 펴고 누운 대기실 대신 연수단은 5위안(우리돈 750원)씩을 내고 VIP용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여행단이 50명이니까 한 사람에 5위안씩 모두 250위안을 냈냐고 내가 여행사 총경리에게 묻자 '얼빠이우(二百五, 250)'하니까 어감이 이상하다며 주위의 선생님들이 모두 웃는다.

은 500냥 한 묶음을 1펑(封)이라고 하는데 250개는 빤펑(半封)이고 이는 '반쯤 미쳤다(半疯)'는 말과 발음이 같아서 얼빠이우는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 된다. 또 280일동안 엄마 뱃속에 있다가 나와야 하는 아기가 250일만에 나오면 우리는 '칠삭둥이', '팔삭둥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역에 설치된 짐 검색대 중국 모든 역 입구에는 검색대가 설치되어 있다.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조금 미리 도착해야 한다.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간에 임박해서 가면 검색대의 긴 줄을 기다리고 통과하느라 늦을 수 있다.
역에 설치된 짐 검색대중국 모든 역 입구에는 검색대가 설치되어 있다.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조금 미리 도착해야 한다.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간에 임박해서 가면 검색대의 긴 줄을 기다리고 통과하느라 늦을 수 있다. ⓒ 김대오

대기실에는 사방에 금연문구(请勿吸烟)가 붙어 있는데 여행사 총경리와 어언대교수가 관리사무실에 가서 담배 좀 피울 데가 없냐고 하자 관리직원은 대기실 내에서 흡연은 안 된다고 하더니 금방 "화장실 앞에서 피우던"하고 얼버무린다. 금연을 단속해야 하는 그들이 꽌시(关系, 사회적 관계)가 있는 이들은 못 본 척 눈감아 주는 것에 대해 어언대학교수는 '한 눈은 뜨고 한 눈은 감아주네(睁一只眼, 闭一只眼)'라며 느슨한 질서 관리를 스스로 인정한다.

대부분 선생님들은 여행지에 대한 사전정보가 정리된 유인물을 읽거나 미리 세면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연수단의 첫 번째 여행지인 허난성(河南省)은 면적 16.7만㎢, 인구 9700만명으로 남한보다 훨씬 크고 인구도 두 배 가까이나 많다. 중국에서도 인구가 가장 많은 성이다.

중국의 7대 고도(베이징, 난징, 시안, 항저우) 중 뤄양(洛陽), 카이펑(開封), 안양(安陽) 세 곳을 점하고 있는 중국 황하문명의 발원지로 유명한 곳이다. 예로부터 "중원을 취한 자가 천하를 얻고, 천하를 얻으려면 절대 허난성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져 올 정도니까 말이다.

기차 대기실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자료를 보고 있는 연수단 선생님들의 모습이다.
기차 대기실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자료를 보고 있는 연수단 선생님들의 모습이다. ⓒ 김대오

기차 출발 40분 전에 기차에 올랐다. 4주간 어학연수에서 벗어나 그것도 올림픽을 앞두고 이런저런 통제가 심했던 베이징을 벗어난다는 홀가분함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사실 연수가 실시되는 베이징위엔(北京語言)대학이 베이징올림픽 농구선수단 연습장으로 지정되어 연수기간 내내 학생증이 없으면 학교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심지어는 수업을 하기 위해 교실에 들어갈 때에도 학생증을 제시해야 하는 불편을 감내해야 했다.

4주 동안 기숙사생활을 하며 냉장고에 남았던 이런 저런 과일들을 안주 삼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든다.

베이징올림픽 취재를 한다고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얼굴이 검게 그을렸는데 몇 몇 선생님들이 내 얼굴이 흑인 같다며 놀려댄다. 어느 선생님은 중국산 치약 중에 '흑인치약(黑人牙膏)'이 있다면서 그 치약을 사용해 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자리는 6인용 3층 침대칸 잉워(硬卧)인데도 기차가 새것인지 시설이 아주 깔끔하다. 3층 침대 중 내 자리는 3층 상좌다. 젊은 남교사축에 든다는 이유로 흔들림이 많고 오르내리기에 다소 불편한 상좌를 배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머리 맡으로 에어컨이 아주 세게 나와 이불을 완전히 덮어쓰고 에어컨 바람을 피해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기차통로에서 계엄도시 베이징을 떠나 홀가분한 기분으로 열흘간의 중원기행을 시작한다.
기차통로에서계엄도시 베이징을 떠나 홀가분한 기분으로 열흘간의 중원기행을 시작한다. ⓒ 김대오

잠자리에 누웠는데 쓰촨(四川)에서 또 강도 6.0의 여진이 발생했다며 여행을 불안해하는 걱정의 소리도 들려온다. 실제로 결혼을 앞둔 한 여선생님은 여행 코스가 쓰촨성 부근인 충칭(重慶)까지 가는 것을 걱정하는 부모님의 만류로 여행에 참가하지 않고 귀국하기도 했다. 

베이징을 출발한 기차는 밤새 중국대륙을 남남서쪽으로 달려 황허(黃河)를 지나 우리를 중국문명의 발원지인 허난성의 성도 정저우(鄭州)에 내려줄 것이다. 주말여행으로 우타이산(五臺山)에 갔다가 막 돌아와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또 흔들리는 기차, 그것도 3층의 에어컨바람 앞에 고단한 몸을 뉘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8월7일~15일까지 다녀온 여행을 기록한 것입니다.



#허난성#정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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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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