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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의 종교편향 문제로 자칫 종교 간의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불교,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 성직자들이 종교 간의 화해와 연대를 다지는 '4대 종교 성직자 축구대회'가 9월 22일(월) 오후 1시 부산 가톨릭신학대학 운동장에서 열렸다.

 

이 대회는 '부산 열린종교인 모임'에서 주최한 것으로 올해가 3회째다. 열린종교인 모임은 다원화되어가는 시대를 맞아 폭넓게 이웃종교를 이해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1991년부터 꾸준하게 대화하며 모임을 이어왔다.

 

경기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작년 우승팀이 원불교팀이었는데, 매년 꼴지를 도맡았던 개신교팀이 성공회 신부님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 내심 우승을 노려볼 만하다고 기대가 부풀어 있다.

 

그러나 승부는 예상외로 진행되었다. 첫 번 경기로 불교팀과 원불교팀이 붙었는데, 예상외로 불교팀이 원불교팀을 꺾었다는 것이다. 불교팀에서 선수들을 젊은 스님들 위주로 대폭 물갈이를 했는지 기량도 뛰어나고 도무지 지칠 줄을 몰랐다. 소문에 의하면 불교에서도 전국대회에 출전하는 스님 몇 분이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고 한다. 원불교 교무님들이 애석하게 되었다.

 

두 번째 경기는 개신교팀과 천주교팀의 대결이었다. 구교와 신교와의 경기이니만큼 긴장감이 팽팽하다. 개신교팀이 올해는 기필코 꼴지를 면해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나왔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가톨릭팀 실력이 출중했다. 대충 나이 차이가 10살은 되는 것 같았다. '아우가 형을 이길 수는 없지 않은가?' 경기 결과는 창피하니 묻지 마시라.

 

청명한 가을 하늘이다. 가톨릭신학대학 잔디 운동장에 가을햇살이 눈부시다. 서로 오가며 떡과 음료수를 건네기도 하고 안부를 묻기도 한다. 종교는 다르지만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기만 하다.

 

이 대회를 준비하는데 일등공신 열린종교 운영위원 안하원 목사에게 소감을 물었다.

 

"축구대회를 통해서 이웃 종교 간에 친교를 도모하는 일이 우선이지요. 운동장에서 볼을 차는데 종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볼을 차고 몸을 부대끼면서 우리가 서로 종교의 옷만 다르게 입었구나를 느끼게 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서로 친밀감을 느끼고 대화하게 되지 않겠어요. 해를 거듭할수록 축구대회가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아 대단히 흐뭇합니다. 각 종단마다 준비도 성의 있게 해주시고…."

 

경기는 처음부터 승부에는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승부에 관심이 없으면 좀 싱겁고 흥미도 반감될 텐데, 잘하는 것보다 못 하는 것이 재밌고, 웃으면서 공을 차는 것이 즐겁지 않은가.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다.

 

경기가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어 예선 두 경기를 마치고 이어서 3-4위전이 벌어졌다. 개신교팀과 원불교팀과의 경기이다. 예선에서 패한 팀 간의 경기여서 맥 빠진 경기가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검정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고 응원하시는 원불교 김경은 교무님이 원불교팀 선수들 이름을 불러가며 연신 파이팅을 외친다. 약간의 협박조이다. 왕년에 한가락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선수는 골대 앞에서 헛발질이다. 꼴지를 면해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출전한 개신교팀이 경기 막판을 지키지 못해 1-2로 지고 말았다.

 

개신교팀 선수들이 풀이 죽어 터벅터벅 운동장에서 걸어 나오자 개신교팀 좌장격인 방영식 목사님이 큰 소리로 외친다. "내년에는 각 교파마다 선수를 선발해서 합숙훈련을 시키자고. 어째 매년 꼴찌냐? 내년에는 다른 팀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버리자고…." 그러나 개신교 신부님 목사님들은 그 말을 신뢰하는 분위기가 아닌 듯하다.

 

경기가 절정에 이르렀다. 결승전이다. 가톨릭팀과 불교팀 간의 한판이다. 내가 김홍술 목사에게 누굴 응원해야 되냐고 물었더니, 개신교 목사가 당연히 불교팀을 응원해야 된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2천년이 되었으니 훨씬 형님이기도 하다.

 

역시 결승팀 답게 공방전이 치열하다. 막상막하다. 한쪽에서 치고 올라가면 금방 저쪽에 치고 내려온다. 슛이 골대에서 살짝 빗나가기도 한다. 삭발을 하신 젊은 스님들 머리가 가을 햇살에 반짝거리고 신부님들은 수행보다 축구를 더 열심히 하셨는지 몸이 날렵하다.

 

서로 치고받는 공방전 끝에 경기는 1-1로 끝났다. 연장전없이 승부차기를 하기로 했다. 개신교팀에서 그냥 불교팀과 가톨릭팀이 공동우승으로 하면 우리가 3등인데 왜 굳이 승부차기를 해서 우리를 4등으로 만드느냐고 애교섞인 항의를 한다.

 

양팀에서 5명의 선수가 서로 교대해서 슛을 하기로 했다. 모두 반원으로 앉거나 둘러서서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 볼을 넣은 선수에게도, 못 넣은 선수에게도 박수가 터졌다. 한 골 차이로 가톨릭팀에 우승이 돌아갔다. 처음부터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지막 폐회를 하고 기념품을 나눌 때까지 거의 모든 사람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종교는 달랐지만 말이 통하고 숨이 통했다.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았다. 마음이 상한 사람도 없었다. 4개 종교 성직자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한 하늘 아래 가을햇살을 맞으면서 하루의 기쁨과 우정을 나누었다. 서로 손을 잡고 내년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종교 간의 대화없이 종교 간의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 간의 평화없이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 -한스 큉

덧붙이는 글 | 당당뉴스와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합니다.


#열린종교#이웃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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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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