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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 조각가 안필연의 설치작품.<Figzig-Passion 0f the Real>. 허공에 구름인듯 둥둥 떠 있는 초콜릿 다각형들이 인상적이다.
 14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 조각가 안필연의 설치작품.<Figzig-Passion 0f the Real>. 허공에 구름인듯 둥둥 떠 있는 초콜릿 다각형들이 인상적이다.
ⓒ 안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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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혹은 페미니스트 예술가로 익히 알려진 중견 조각가 안필연(경기대 부교수)이 한국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FIGZIG, 찰나, 刹那>라 이름 붙여진 이번 전시는 지난 17일부터 청담동 카이스 갤러리 제1전시관에 터를 잡았다.

2층에 위치한 전시관을 들어서기 위해 통유리 문을 열면, 전시에 흔한 꽃내음보다는 은근한 초콜릿향이 먼저 방문자를 잡아끈다. 눈으로 보기 전에 후각부터 자극한다는 점이 일단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안필연은 많은 상을 받아 유명한 작가가 아니다. 그러나 1999년 이미 안티미스코리아를 주제로 한 행위전을 여는 등 사회에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들로 국내외에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안필연=가위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조각, 설치. 행위 등 모든 작가 행동에 가위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넋, 깊은 거울, 도박, 만화경, 삼켜진 달, 엿보기, 연장1. 연장2. 사라진 경계, 패스워드. 나열된 이 단어들은 1991년부터 2003년까지 안필연의 개인전에 붙인 표제들이다. 거의 빠짐없이 가위가 등장한 것도 흥미로운 집착이다. 열 개의 전시제목이 작가의 정신을 규정짓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 스스로 명명한 단어들의 은유를 하나씩 연결해보는 것도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데 조금의 도움은 줄 것이다. 게다가 동일한 오브제를 사용해온 작가라면 더욱 긴요한 귀띔이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안필연의 이번 개인전에는 티타늄과 초콜릿 두 가지 재료가 사용되었다. 그 모두는 꽃의 개화를 그리고 있는데, 그것이 작고 큰 삼각형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필연의 이번 개인전에는 티타늄과 초콜릿 두 가지 재료가 사용되었다. 그 모두는 꽃의 개화를 그리고 있는데, 그것이 작고 큰 삼각형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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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번 전시에는 그 어디에도 가위 여인의 가위를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약간의 당혹감을 준다. 작가는 형상을 감추고 의미로 변신했다고 설명한다. 얼핏 들어서는 알아들을 재간이 없는 말이다.

작가는 3이란 숫자와 그 의미에 대해 골몰해왔다. 스스로 ‘절대선을 향한 대답없는 정진’이라고 표현한 그의 작가생활을 지탱한 3이란 숫자의 구상적 표출이 가위라는 것인데, 가위의 두 날과 닿는 하나의 점 그 셋의 역학에서 ‘무엇’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절단, 아이러니하게도 결합, 공간, 소리 등이 3이라는 의미 속에서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아직도 어렵다. 아니 설명을 들을수록 더 어려워진다. 작가가 부여한 작품의 의미와 오랜 방황과 발명을 거듭한 작가의 정신을 과연 얼마만큼 듣는다고 이해가 되겠는가 하고 그저 덮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집가가 아닌 한 감성적인 관객이 작가와 작품에 의해 전시관을 둘러보는 아주 짧은 시간에 어떤 예술적 공감을 얻느냐에 관한 지극히 소심한 이해득실을 따져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안필연의 12번째 개인전은 수집가도, 평론가도 아닌 평범한 예술적 동기를 가진 일반인들에게 유익한 전시라는 점에 이견을 달기 어렵다. 왜 그런지 전시 속으로 들어가 본다.

 꽃의 개화로 보기에는 어딘가 거칠거나 혹은 거창하다. 그러나 꽃이라고 어디 다 곱게만 피겠는가. 불규칙적인 삼각거울 앞에 서면 관객은 예기치 않은 반영과 숨박꼭질에 빠져든다.
 꽃의 개화로 보기에는 어딘가 거칠거나 혹은 거창하다. 그러나 꽃이라고 어디 다 곱게만 피겠는가. 불규칙적인 삼각거울 앞에 서면 관객은 예기치 않은 반영과 숨박꼭질에 빠져든다.
ⓒ 안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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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필연의 개인전 <FIGZIG, 찰나, 刹那>에는 유일하게 딱 하나의 소재만 빼놓고는 모두 삼각형의 결합들이다. 티타늄과 초콜릿이라는 대단히 이질적인 두 재료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들의 형상은 모두 ‘꽃의 개화’ 그 순간을 담고 있다. 한없이 원 그 자체일 것 같은 꽃의 개화를 3각형의 조합으로 그렸고, 그 삼각형의 다원적 결합들은 관찰자와 독특하게 소통한다.

단면의 거울은 피사체를 일대일로 반영한다. 그러나 복잡하게 튀어나오고 들어가 배치된 여러 조각의 거울들은 하나의 피사체에서 수많은 반영과 왜곡을 만들어낸다. 평면거울로는 불가능한 피사체의 측면도 슬쩍 비추는 이 다원거울의 기능적 독특함보다는 그 앞에서 관객은 동화적 감상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어린 시절 과학전시관에서 처음 대하고는 즐거워했던 오목, 볼록거울의 기억들을 새삼 끄집어내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 동화적 놀이는 이번 전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설치 작품인 <FIGZIG-Passion of the Real>에 들어서면 좀 더 분명해진다.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초콜릿덩이를 비켜 지나면 높고 너른 공간에는 두 개의 부채를 붙여놓은 형상의 둥그런 조각거울이 바닥에 놓여있고, 허공엔 부조가 대부분인 바깥 전시작품과는 달리 다각형 초콜릿 덩이가 설치되어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이번에는 전과는 달리 또 보고자 하는 것이 바로 확인되지 않는다. 눈으로 보이는 허공의 초콜릿덩이를 거울을 통해 확인코자 하는 것은 관람자의 본능적 동기건만 이 거울은 호락호락하게 그 반영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초콜릿의 반영을 찾다보면 이미 주제, 의미 등의 어려운 것들은 입 안에서 초콜릿이 녹아버리듯 사라지고 그저 놀이가 되고 만다.

 안필연의 작품들.
 안필연의 작품들.
ⓒ 안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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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설치작품을 경험하고는 대개는 한 번 더 부조 작품들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그때는 좀 더 가볍고, 적극적으로 다면거울의 놀이를 즐기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작가의 말처럼 ‘예기치 않은 각도에서의 자기 발견’의 즐거움을 알게 되나보다. 바로 작품 혹은 작가와 관객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아닐까.

작가 안필연은 “관객과의 소통이 내 작품의 기본이다. 작가의 작품이 3차원이라면 그 소통을 통해서 4차원이 만들어진다. 내 작품은 관객이 있어야만 완성이 된다. 관객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전의 모든 의미를 다 떼어내고 스스로를 그대로 보인 전시”라고 하는 안필연이 14년 만에 한국에서 여는 개인전에서 관객들은 그의 여전함과 또 새로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안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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