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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등사를 가리라 작심하고 나선 길이었다. 현등사가 워낙에 경기도의 명소로 유명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20여 년 전 폭우로 불어난 계곡물 때문에 가다가 포기했던 이후로 가슴 속에 응어리로 남겨진 현등사였다.

 

'언젠가는 가게 되겠지'만 읊조린 지 어언 20년. 덕분에 나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고 발랄했다. 드디어 오늘 현등사를 보겠구나.

 

운악산 현등사 일주문 필체가 힘찬 현판
운악산 현등사 일주문필체가 힘찬 현판 ⓒ 이희동

 

현등사의 초입. 그 일주문 현판부터가 남달랐다. 여느 사찰들과 달리 한글로 쓴 '운악산 현등사'가 세로로 배치되어 있었다. 비록 교과서의 활자처럼 매끄럽지 않은 글씨였지만 오히려 그 투박함이 필체의 힘을 더하고 있었다. 최근에 지어졌는지 단청은 없었지만 오히려 그 단아함이 더 아름다운 일주문이었다.

 

일주문을 지나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른다. 찌질하게 흐르던 계곡물은 산허리를 몇 번 돌고 나니 웅장한 소리를 내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래도 개성 송악, 서울 관악, 파주 감악, 가평 화악과 함께 경기 5악을 이루는 운악인데 그 계곡이 허투루 생겼을 리 있겠는가.  

 

보기만 해도 시원한 계곡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작정 계곡으로 들어가 발을 담근 뒤 머리를 적신다. 말 그대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해지는 그 시원함.

 

계곡에 대한 미련을 접고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저 멀리 운악의 바위병풍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위가 많고 험하다 하여 '岳'이라 했던가. 역시 산은 바위가 있어야 한결 그 풍광이 아름다운 법. 오늘 채 끝까지 오르지 못할, 부족한 시간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수려한 운악산 계곡 아저씨면 어떠랴
수려한 운악산 계곡아저씨면 어떠랴 ⓒ 정가람

현등사 불이문 이곳에 사찰이 있음을 알리는
현등사 불이문이곳에 사찰이 있음을 알리는 ⓒ 이희동

현등사는 운악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다. 불이문이라는 전각이 그곳에 사찰이 있음을 알리고 있었는데 그 뒤로 가파른 계단이 펼쳐져 있었고, 그 이름은 108 번뇌의 108계단이라 하였다. 순간 최근 스님들이 서울 시청 앞에서 행하셨던 108배를 떠올렸다. 스님들의 내공이 담긴 <생명과 평화의 108 참회문>의 명문들을 들으면서 느꼈던 그 서늘함이란.

 

108번뇌 108계단 극락으로 오르는 길
108번뇌 108계단극락으로 오르는 길 ⓒ 이희동

역시 나 같은 한낱 중생이 108번뇌를 떨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천근만근 하는 다리를 부여잡고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108계단을 오른다. 그악스러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부여잡고 있던 온갖 탐욕을 벗어던지고자, 그리고 지금 바로 이 순간까지 버리지 못했던 온갖 부질없는 미련을 벗어던지고자 108계단을 올랐다. 그것은 스스로의 정화를 위한 노력이요, 고행이었다. 산을 오르는 사람 치고 악한 이 없다더니, 괜한 말이 아니다. 이렇게 오르고 또 오르며 스스로를 정화시키는데 어찌 악인이 있을 수 있겠는가.

 

계단을 오르고 나니 그곳이 극락이었다. 비록 108계단만으로 중생들을 정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인지 그 흔한 사천왕문은 없었지만, 그 좁은 공간에 많은 전각들이 옹골차게 들어서서 극락을 표현해 내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무념무상의 정화를 거친 이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극락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현등사에서 바라본 속세의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운악산이 높은 까닭인지 산 중턱에 위치한 사찰인데도 저 멀리 높고 낮은 산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호연지기. 지금처럼 이 단어가 알맞을 때가 있을까. 다시 한 번 사찰 터가 명당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런 풍광을 매일 보면서도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바로 그 사람이 문제일 터. 현등사가 강화 보문사와 관악산 연주암과 더불어 영험한 기도도량으로 유명한 경기 3대 기도 성지라더니, 사찰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바로 그 조건이 아니었을까?

 

이곳이 극락이라 108번뇌의 끝
이곳이 극락이라108번뇌의 끝 ⓒ 이희동

현등사의 앞마당 부석사의 그것을 떠올린다
현등사의 앞마당부석사의 그것을 떠올린다 ⓒ 이희동

 

뒤로 보이는 기막힌 풍경에 비해, 현등사의 전각들은 천년이 넘은 고찰답지 않게 고색창연함이 떨어졌다. 물론 워낙에 유명한 사찰이라 많은 이들의 손때를 탔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천년고찰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빛바랜 단청의 고고함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세월이 흘러 노쇠하여도, 그것이 곧 연륜이요, 지혜임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큰 스님에 대한 그리움과 비슷했다.

 

사찰을 어슬렁어슬렁 한 바퀴 돌며 땀을 식힌 뒤 이만 내려가려 하는데 108계단 끝에 자리한 찻집이 나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예전 같았으면 누군가 청하지 않은 이상 자본의 쇳내가 이곳 깊은 산사에까지 올랐다고 인상을 찡그리며 가던 발걸음을 재촉했을 텐데, 언제부터인가 사찰을 찾으면 으레 들리기 시작한 바로 그 찻집이었다.

 

현등사의 전각 천년고찰로서는 조금 아쉬웠던
현등사의 전각천년고찰로서는 조금 아쉬웠던 ⓒ 이희동

휴식 여유
휴식여유 ⓒ 이희동

 

무엇이 나의 발걸음을 매번 이곳 산사의 찻집으로 인도하는 것일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 더 쉬고 하산을 하겠다는 신체적인 필요도 있을 테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미련 때문이었다. 나의 무지 탓에 채 알아보지 못한 사찰의 멋에 대한 미련. 나는 그 아쉬움을 찻집에서 맛의 깊은 여운을 통해 달래고자 하는 것이었다. 스무 살의 내겐 사치일 테지만, 갓 서른을 넘긴 내게 그것은 하나의 여유요, 내 자신을 한 박자 쉬며 달리 바라볼 수 있는 지혜였다.

 

찻집에는 주인으로 뵈는 스님 한 분이 어느 보살님과 말씀을 나누고 계셨고, 주방 겸 프론트에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과 여성이 앉아 있었다. 왠지 평화롭고 나른한 찻집의 분위기.

 

오미자차 그 오묘한 맛
오미자차그 오묘한 맛 ⓒ 정가람

 

무엇을 먹을까? 전 같았으면 꽤 많은 고민을 했을 터인데, 웬일인지 오늘은 별 갈등 없이 오미자차를 골랐다. 내가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것은 결국 몸이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라던데, 지금 나의 몸은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짠맛을 모두 필요로 하는 것일까? 무엇이 부족하기에 이리도 많은 맛에 굶주려 있단 말인가.

 

오미자차의 다섯 가지 맛을 가려내고자 차를 음미하고 있는데, 보살님을 붙들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시는 스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현 시국의 가장 큰 문제는 결국 덧없는 욕망 때문이라는 스님의 일갈. 현 정부가 단순한 사실 하나를 가지고도 여기서는 이런 냥, 저기서는 저런 냥, 여러 사람을 현혹시키고 있는데 사람들이 얼토당토않게 속아 넘어가는 것은 결국 그 자신의 욕심 때문이라는 말씀이셨다.

 

순간 오미자의 맛을 굳이 구분하겠다고 뜸을 들이던 나는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오미자차의 맛은 그냥 오미자이거늘. 그것을 굳이 다섯 가지의 맛으로 구분해 내려는 나의 욕심은 무엇인가. 단순한 오미자를 오미자로 보지 못하고 그것을 내가 아는 지식에 맞추어 분석해 내려는 나의 욕심이 결국 108번뇌의 시작 아니겠는가.

 

속세로 향한 길 홍진으로 들어선다
속세로 향한 길홍진으로 들어선다 ⓒ 이희동

뜻하지 않는 꾸지람에 목이 말라서일까?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남성에게 오미자차도 리필이 되냐고 수줍게 물어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한 컵을 더 따라 주웠다. 이것이 진정 산사의 인심이려니. 설마 스님이 돈을 벌기 위해 차를 팔겠는가, 사람을 벌기 위해 차를 제공하는 것일 테다.

 

찻집을 나와 다시 108계단을 내려간다. 속세로 드는 길. 당장 서울 올라갈 생각을 하니 안 봐도 뻔한 그 끝도 없는 차량행렬에 기가 막혔지만, 방금 마신 그 오미자의 맛을 떠올리며 보무도 씩씩하게 하산하기 시작했다. 막히면 막히는 대로, 뚫리면 뚫리는 대로, 그 속에서 길을 찾는 건 결국 나의 몫인 저.

 

내려오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짧았다. 一切唯心造. 이 역시 불가의 가르침이었던가. 가을이 깊어가고 단풍이 짙어지면 다시 오리라는 마음만을 안고 다시 홍진에 들어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운악산#현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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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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