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외국사람이 찾아와 본 적이 없는 메콩강 옆 오막집. 엉성하게 지은 작은 집에서는 우리를 위한 점심 준비가 한창이다. 장작불 위에 놓여 있는 큰 솥에서는 아까부터 무언가가 끓고 있다.

 

 

나는 비위가 약한 편이다. 반찬을 가리지는 않으나 음식이 조금만 지저분하다 싶으면 수저를 들지 못한다.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겪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지저분한 식당에서 지저분한 식기에 담은 음식을 먹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과일이 많아 여행 중에 과일로 식사를 대신 할 수 있다는 것.

 

식사를 하자고 부른다. 그들 나름대로 깨끗하게 그리고 정성을 다한 식탁에는 음식이 가득하다. 그러나 내 눈엔 지저분하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식탁에 놓인 젓가락을 눈치 못채게 손으로 한 번 닦았다. 아내가 보면 깨끗한 척한다고 핀잔할 것이다.

 

부엌에서 가지고 온 국에는 닭고기가 얼큰한 국물과 어우러져 있다. 키우던 닭을 우리가 온다고 하기에 잡았다는 것이다. 밖에서 노는 어미 닭 한 마리와 병아리 세 마리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자신의 식구 중 하나를 우리가 먹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닭들은 모이를 찾아다니기에 바쁘다. 토종닭이다.

 

국을 담은 솥이 지저분할지 몰라도 오랜 시간 푹 끓였기에 위생에는 염려가 없을 것이라고 나 자신을 위안하며 닭고기를 집어들었다. 어느 정도 매콤한 맛이 우리 입맛에 맞는다. 내가 닭고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서일까? 내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인 아줌마는 자신이 먹던 젓가락으로 닭고기를 연방 내 접시에 올려주며 많이 먹기를 권한다. 옛날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들이 오래 떨어져 있던 친척들에게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점심을 먹고 나니 무료하다. 외진 곳이라 특별히 구경할 곳도 없다. 말도 통하지 않아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다. 아내는 설거지를 도와준다고 남고 나는 혼자 소화도 시킬 겸 오솔길을 걸어본다.

 

이 오솔길에는 7가구가 살고 있다. 짧은 오솔길을 끝까지 간 후 돌아오는데 우리가 조금 전 먹었던 닭국을 들고 오는 맏아들을 만났다. 이웃에 음식을 돌리는 모양이다. 그동안 도시에서만 살아 잊고 있었던 시골사람의 정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집으로 돌아오니 주인 부부는 시장에 다녀오겠다며 오토바이를 타고 나간다. 식곤증 때문인지 아니면 더운 날씨 때문인지 눈이 감긴다. 침대 겸 쓰는 넓은 평상에 누우니 편안하다. 깊은 잠에 빠졌다. 한 시간은 잤을 것이다. 버스와 오토바이를 타고 오며 쌓였던 피로도 가셨다.

 

밖이 소란스러워 나가보니 강에 수백 마리의 오리가 떼를 지어 가고 있다. 한 처녀는 배에서 노를 젓고, 한 청년은 강가에서 다른 한 청년은 수영하면서 긴 장대로 물을 내리 치며 오리떼를 몰고 있다. 오리떼를 모는 기술이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오리는 모는 데로 잘 움직인다. 오리를 내가 걸었던 오솔길로 몰고 나와 추수를 금방 끝낸 들판으로 인도한다.

 

 

 

타작을 막 끝낸 들판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오리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먹고 있다. 이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는 봉하마을에서 시도하는 오리농법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 머리로는 알아낼 도리가 없다. 수백 마리의 오리를 자유자재로 몰고 다니는 그들의 기술과 팀워크에 감탄할  뿐이다.

 

내가 갖지 못한 솜씨와 팀워크를 가지고 있음에도 내가 금전적으로 그들보다 더 풍요를 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의 말처럼 세상은 불공평하다.

덧붙이는 글 |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베트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