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의 여정을 보니 단 한 곳이 낯설다. 바로 사성암이다. 곡성에서 참게탕으로 점심을 먹고 산자락을 돌아 드디어 야트막한 야산 기슭에 닿았다. 여기서 작은 차로 갈아타야 한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불평의 소리가 새어 나온다. 열여섯명 일행이 60만원에 이틀간 전세낸 큰 버스로는 사성암을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작은 버스가 출발하자 그 불평은 이내 찬사(?)로 바뀌었다. 너무도 급격한 경사길이다. 덜컹거리는 버스안에서 내장까지 흔들려 소화가 절로 된다고 한다. 1인당 3천원의 차비가 싸다는 칭찬이다. 승용차로 왔다고 해도 이 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겠다면서.
4Km가 넘는 뱀처럼 구불구불 험악한 산길을 타고 올라가 드디어 하늘과 맞닿은 산꼭대기 기암절벽 위에 제비집처럼 자리를 잡은 절집, 아니 바위의 아들이 바로 사성암이었다. 바위암자에다 아들자자를 쓰는 암자, 바로 사성암은 바위의 아들이었다.
하늘과 맞닿은 오산 꼭대기 바위굴, 이 바위굴에서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 들 네 분의 큰 스님이 수도를 하였다고 한다. 왜 큰 스님들은 이런 바위굴속에서 수도를 하는 것일까. 굴, 아마도 그곳은 어머니의 자궁처럼 평안한 곳이 아니었을까. 석가모니는 남근을 여근곡에 밀어 넣기 보다는 차라리 독사의 아가리에 넣으라고 했다.
하지만 여근곡, 그 깊숙한 바윗굴은 자궁이 되어 수행자의 잡념을 잠재우게 한 것은 아닐까. 큰 스님들이 한결같이 토굴 수행을 즐기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이 있지 않을까 싶다.
사성암은 백제성왕 22년(544년)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한 이듬해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차 운전을 겸한 길잡이에게 사성암이 자리 잡은 산이름을 물으니 ‘우리동네 산’이라고 한다. 초면에 농담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오산’이라고 덧붙인다.
'나 오'자를 써서 오산 즉 우리동네 산이라고 하나보다 했는데 오자는 자라를 뜻하였다. 길잡이에겐 정다운 산이라 ‘우리동네 산’이 된 것일까. 오산은 530m에 지나지 않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길잡이는 오산 사성암이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절이라고 설명한다.
내가 들어온 바로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은 지리산 ‘법계사’이지만 사람들이 느끼기로는 설악산 ‘봉정사’다. 하지만 산꼭대기 기암절벽에 자리잡은 사성암은 하늘과 맏닿은 곳이니 산의 높이를 떠나서 이 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절도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사성암은 하늘과 맞닿은 곳, 아니 도솔천 자락에다 지은 절이라고 한다. 도솔천은 강림하기 전 부처가 수행하는 곳이 아닌가. 연기조사는 이곳에서 수행하여 아미타불이 되었다고 전설은 전한다.
전설에 원효대사가 선정에서 오산 꼭대기 25m 높이의 기암절벽에다 손톱으로 아미타불을 음각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마애약사 여래불이다. 사성암 법당(약사전)은 유리창 밖으로 이 마애여래불상을 보게 된다. 약사전은 여느 법당과는 달리 사각형이 아닌 사다리꼴을 이루게 된 것은 기암괴석 바위틈새에 따라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바위틈새에 약사전, 지장전 등의 전각을 짓고 또 그 바위틈새에 길을 내어 오산 꼭대기를 돌아서 부처님을 참배한다.
멀리 발아래를 굽어보면 구례 곡성 들녘이 한 눈에 들어오고 맑은 섬진강 건너 지리산을 마주 한다. 지리산 노고단, 반대봉, 촛대봉을 바라보며 성불을 꿈꾸는 수행자들이 다녀가는 절집 사성암은 이렇게 하늘아래 첫 절집이 되었나 보다.
바위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우뚝 서 있는 두 그루의 귀목은 느티나무다. 800살이 넘는 저 느티나무는 사성암의 역사를 지켜보면서 성불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사성암은 오산 전체를 기단으로 바위틈새에서 우뚝 솟아 하늘을 어루만지고 있다.
원효대사의 ‘발심수행장’ 한 구절을 외우며 사성암 약사여래 앞에서 108배를 올린다.
“메아리 울리는 바위굴로 염불당 삼고 슬피 우는 기러기를 마음의 벗으로 삼으라. 절하는 무플이 얼음같이 시려도 불을 생각하지 말고 주린 창자가 끊어질 듯하여도 밥 구하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 백년이 잠깐인데 어찌 배우지 아니하며 일생이 얼마나 되는데 닦지 않고 놀기만 하겠느냐.”
덧붙이는 글 | 사성암은 구례 오산에 있는 절입니다. 오산은 야트막한 산이긴 하지만 그 정상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바위틈새에 사성암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산꼭대기 하늘과 맏닿은 절집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저는 진주교대 8기 부산 동문들과 같이 8월 21일 이 절을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