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거미줄에 맺힌 비이슬과 백일홍 백일홍 한 송이가 수백송이로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거미줄에 맺힌 비이슬과 백일홍백일홍 한 송이가 수백송이로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 김민수

 

소낙비가 내렸습니다. 후텁지근하던 날씨가 내린 비에 조금은 시원해집니다. 에어컨도 없이 무더운 여름을 나야 하는 서민들에게는 선풍기가 내뿜는 뜨거운 바람보다 소낙비 한 줄기가 주는 시원함이 더 좋습니다.

 

이렇게 시원함을 선물로 준 것도 고마운데 비온 뒤 거미줄에 맺힌 비이슬과 한창 피어나기 시작하는 백일홍이 이 세상의 어떤 보석도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비이슬 물방울마다 예쁜 꽃 새기고
비이슬물방울마다 예쁜 꽃 새기고 ⓒ 김민수
 
'그대 있음으로 더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종종 나는 과연 이런 사람인가 자문을 합니다. 내가 있음으로 인해 더 아름다운 세상이길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나이가 들수록, 높은 자리에 앉을수록,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절제할 줄 모르면 자신도 모르게 '그대 없어야 더 아름다운 세상'일수도 있는 것입니다.
 
새끼 노린재 새끼 노린재도 비이슬을 이고 풀잎에 앉아있다.
새끼 노린재새끼 노린재도 비이슬을 이고 풀잎에 앉아있다. ⓒ 김민수
 
노린재의 새끼가 이파리에 숨어있다가 소낙비가 그친 후 젖은 몸을 말리기 위해 햇살이 드는 곳을 찾았습니다. 노린재 등에 남아있는 비이슬, 그로 인해 별로 예쁘지 않은 노린재가 '어린것(새끼)'이 가지고 있는 귀염움과 비이슬이 가지고 있는 '맑음'으로 아주 예쁜 존재가 되었습니다. 
 
비이슬이 맺힌 풀과 노린재 등에 남아있는 이슬이 아니었다면 주인공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곳에 서있는가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서있을 곳에 제대로 서있는지 늘 돌아봐야 할 일입니다.
 
비이슬 백일홍의 삶은 백일도 넘지만 이슬의 삶은 하루도 안된다.
비이슬백일홍의 삶은 백일도 넘지만 이슬의 삶은 하루도 안된다. ⓒ 김민수

비이슬이 남아있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비이슬과 백일홍의 멋진 조화, 그러나 햇살이 비치고 바람이 불자 그 아름답던 물방울들도 하나 둘 자취를 감춥니다. 그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기에 언제보아도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것인가 봅니다.
 
한번 피어나면 백일동안 피어있다 하여 '백일홍'이라는 이름을 얻은 꽃, 그 꽃 한 송이가 백개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비이슬마다에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름답던 비이슬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자신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자연에 있어서는 삶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가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거미줄과 비이슬 물방울에 새겨진 꽃들의 신비로움
거미줄과 비이슬물방울에 새겨진 꽃들의 신비로움 ⓒ 김민수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움을 누구나 보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사에 시달리며 살아가다 보면 이런 것들을 보며 감탄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도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삶을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무가치하다 여기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들은 삶의 재미가 무엇인지,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광복절, 촛불이 켜진 지 100일되는 날입니다. 촛불 하나가 비이슬에 새겨진 백일홍처럼 수백만 촛불로 피어나 귀 먹고, 눈 멀어 헛된 말을 하는 권력자들이 다시는 국민들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100일 동안 마음을 담아 촛불을 켠 모든 이들, 그대가 있어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슬사진#촛불 100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