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ㄱ. 전근대적 정신

 

.. 예술작품 속에서 ‘고귀하지 않은 계급’의 캐릭터를 그릴 때 ‘평범한(전형적인)’ 캐릭터를 피하고 ‘특별한’ 캐릭터를 사용하는 건 한 인간의 가치를 신분으로 결정하는 전근대적 정신의 반영이다 ..  <B급 좌파>(김규항,야간비행,2001) 245쪽

 

 “예술작품 속에서”는 “예술작품에서”로 고치고, “계급의 캐릭터(character)를 그릴 때”는 “계급을 그릴 때”나 “계급 모습을 그릴 때”로 고쳐 줍니다. ‘평범平凡한(전형적典型的인)’은 ‘수수한(흔히 보는)’으로 다듬고, ‘특별(特別)한’은 ‘남다른’으로 다듬으며, “사용(使用)하는 건”은 “쓰는 일은”으로 다듬어 줍니다. “한 인간(人間)의 가치(價値)를”은 “한 사람 값을”로 손질합니다. ‘결정(決定)하는’은 ‘못박는’으로 손봅니다. “정신(精神)의 반영(反映)한다”는 “마음을 보여준다”나 “뜻을 나타낸다”로 풀어냅니다.

 

 ┌ 전근대적(前近代的) : 근대 이전의 색채를 벗어나지 못한

 │   - 전근대적 사고방식 / 남존여비의 전근대적 관념 / 전근대적인 기업주 /

 │     전근대적인 낡은 감각

 ├ 전근대(前近代) : 근대의 바로 앞 시대

 │   - 오늘날 한 여자가 저 전근대의 유습에 희생당하는 걸

 │

 ├ 전근대적 정신의 반영이다

 │→ 낡은 생각을 보여준다

 │→ 낡은 생각이 드러난다

 └ …

 

 “근대 이전”이라 한다면 ‘지금’이 아닙니다. ‘오늘날’이 아닌 “근대 이전”이라면, ‘옛날’이나 ‘예전’입니다. 옛날이나 예전이라고 다 좋지 않으며 다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오래 묵었으면서 좋지 않다고 할 때에는 ‘낡다’나 ‘고리타분하다’ 같은 낱말을 넣어 봅니다.

 

 ┌ 전근대적 사고방식

 │→ 낡은 생각

 │→ 고리타분한 생각

 │→ 케케묵은 생각

 │→ 낡아빠진 생각

 │→ 구닥다리 생각

 ├ 남존여비의 전근대적 관념

 │→ 남자는 높이고 여자는 깔보는 낡은 생각

 ├ 전근대적인 기업주 → 낡은 생각에 사로잡힌 기업주

 └ 전근대적인 낡은 감각 → 낡은 감각

 

 그나저나, 우리가 ‘전근대’ 같은 낱말을 써야 할 까닭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근대 앞’이라고 하면 넉넉하지 않을는지요. ‘근대 앞-근대 뒤-근대 둘레’라 말하면 되지 않을는지요.

 

 보기글 같은 자리, 또 국어사전 보기글에 나오는 온갖 쓰임새를 살펴보니, ‘흘러간 옛날’이나 ‘머나먼 옛날’로 고쳐써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ㄴ. 전근대적인 단발머리

 

.. “딴 학교는 올해부터 두발자율화를 실시했는데, 왜 우리 학교만 전근대적인 단발머리를 고수하려는 겁니까?” “학교장의 재량이야.” ..  <오달자의 봄 (1)>(김수정,서울문화사,1990) 106쪽

 

 “두발(頭髮)자유화(自由化)를 실시(實施)했는데”는 “머리를 제 마음대로 하도록 했는데”나 “머리를 길러도 자유라고 하는데”로 다듬어 줍니다. ‘단발(斷髮)’은 ‘짧은머리’나 ‘짧게 깎은 머리’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단발머리’처럼 적으면 겹치기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짧은머리’로 손봅니다. “고수(固守)하려는 겁니까”는 “매달리고 있습니까”나 “붙잡고 있습니까”로 손질합니다. “학교장의 재량(裁量)이야”는 “학교장 마음이야”로 고쳐씁니다.

 

 ┌ 전근대적인 단발머리를 고수하려는

 │

 │→ 한물 간 짧은머리를 매달리려는

 │→ 거꾸로 짧은머리를 지키려는

 │→ 낡은생각으로 머리를 짧게 깎으려는

 │→ 낡은생각으로 머리를 못 기르게 하려는

 └ …

 

 아이들 머리카락 길이를 이리 재고 저리 치는 일은 참으로 낡아빠진 생각입니다. 아니, 낡아빠진 생각이 아니라 미친 생각, 허튼 생각입니다. 우리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을 때, 우리 삶이나 문화는 머리카락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머리카락은 자라는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대로 두어도 알아서 빠지고 새로 나면서 알맞는 길이가 고스란히 이어갑니다.

 

 아이들 머리카락 길이를 요리조리 재고 어쩌고 들볶는 일은 일제강점기 때부터입니다. 사람들을 억누르는 길 가운데 하나로 머리카락을 짧게 쳤습니다.

 

 그런데 이 몹쓸 일제강점기 찌꺼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2000년을 훌쩍 넘어선 오늘날까지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우리 문화 구석구석에, 우리 터전 어디에든 이와 같은 일제강점기 찌꺼기가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있으니, 얄궂거나 뒤틀린 찌꺼기말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자꾸만 가지를 치고 새끼를 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어른들부터 일제강점기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어른들부터 머리를 길러야, 아니 자라는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자라는 그대로 사랑하고 보듬어야 합니다. 어른 스스로 짧은머리에 익숙해지거나 길들다 보니, 아이들한테도 짧은머리를 하라며 억지를 부립니다. 억지로 이끕니다. 억지로 부추깁니다. 우리 어른들부터 올바르고 알맞고 티없는 말과 글을 안 쓰고 있으니, 아이들한테도 얄궂게 영향을 끼쳐서 아이들 말씀씀이가 더러워지고 짓궂어지고 망가집니다.

 

 이 낡아빠진 어른들 때문에. 이 쓸개빠진 어른들 때문에. 이 멍텅구리 어른들 때문에. 이 알랑방귀 어른들 때문에. 이 넋나간 어른들 때문에. 이 말 많고 몸은 꼼짝 않는 쇠밥그릇 어른들 때문에.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적#우리말#우리 말#적的#전근대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