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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컷 하우스 입구. 애스컷 하우스 입구에 서있는 안내판
애스컷 하우스 입구.애스컷 하우스 입구에 서있는 안내판 ⓒ 유경

호주 멜버른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노인요양원이 있다는 소식에, 순전히 놀기 위해서 언니네에 간 거였지만 가만 있을 수는 없었다. 전날 급히 방문 예약을 하고 7월 25일 오전 '애스컷 하우스(ASCOT HOUSE)'를 찾았는데, 고맙게도 간호사인 노애정 원장의 친절한 설명과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애스컷 하우스는 SRS(Supported Residential Services), 즉 우리말로 하면 '24시간 거주하며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연방정부 산하의 요양원이나 양로원과는 달리 주정부 산하이며, 완전 사립으로 비용 전액을 입소자가 부담해야 하는 곳이었다.

노 원장이 인수해 운영한 지는 3년 정도 됐고, 입소 가능 인원 52명 가운데 현재 반 정도만 입소해 있었다. 입소자의 연령은 80세에서 90세 사이. 한국인 원장이 운영하고 있어 한국인 입소자도 있을 것 같았는데 아직까지는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한국의 호주 이민 역사가 길지 않고, 부모님을 시설에 모시는 것에 대한 자녀들의 거부감때문인 것 같아요. 앞으로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애스컷 하우스의 1인실. 입소자를 기다리고 있는 애스컷 하우스의 1인실
애스컷 하우스의 1인실.입소자를 기다리고 있는 애스컷 하우스의 1인실 ⓒ 유경

일반 허약 어르신에서부터 경증 치매, 중증 치매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다 입소 가능하고, 중증 치매 어르신들의 주거 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비용은 증상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어서 주당 550~650 호주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5만 원에서 65만 원으로 한 달에 220만 원에서 260만 원 정도다. 1개월치 비용을 보증금으로 내고 보증금은 퇴소시에 전액 돌려받는다. 아무튼 결코 싸지 않은 가격.

시설을 둘러보니 우리나라의 시설이 하나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뒤지기는커녕 우리나라에서 새로 짓는 시설들은 훨씬 다양한 공간 배치와 안전 장치들을 고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문제 많은 시설도 있겠지만 말이다.   

다만 땅을 넉넉히 쓸 수 있는 나라여서인지 널찍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마당이 편안해 보였다.

애스컷 하우스의 정원. 애스컷 하우스의 한 가운데 자리한 정원의 일부
애스컷 하우스의 정원.애스컷 하우스의 한 가운데 자리한 정원의 일부 ⓒ 유경

중증 치매 환자들의 공간으로 들어서니 냄새가 났다. 지린내가 섞인 그 냄새를 노 원장 역시 의식했는지 덧붙인다.

"중증 치매 어르신들은 100% 기저귀를 차시니까, 어제 바로 카펫 스팀 청소를 했는데도 이렇게 냄새가 나네요. 최대한 청결하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어려워요."

방을 둘러보는데 두 명의 어르신이 번갈아 옆을 스쳐지나가신다. 치매 어르신의 배회 현상. 한 곳에 가만 계시지 못하는 건 호주 어르신들이나 우리 어르신들이나 똑같다. 한 분은 전직 교수, 한 분은 전직 기자셨다는데 그게 지금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한 방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을 꼭 잡고 침대 위에 나란히 앉아 계시길래, 부부시냐고 여쭤보니 노 원장의 대답이 뜻밖이다.

"아니예요. 저 할머니는 할아버지 한 분을 찍어서 저렇게 꼭 붙어다니신다니까요. 예전에 찍혔던 할아버지는 '왜 자꾸 귀찮게 따라다니냐'고 할머니를 때린 적도 있어요."

맞다. 내가 근무하던 복지관 부설 치매 요양원에서도 할아버지를 유난히 좋아하는 할머니가 계셨다. 할아버지와 눈만 마주쳐도 볼이 발그래 달아오르던 그 할머니 생각이 났다. 정말 다 똑같구나...

노 원장은 감추는 것 없이 시원시원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 가운데는 배회 증상이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을 잃어 버렸다가 고생 끝에 찾은 이야기도 있었다.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린 치매 어르신을 찾아 전 직원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생각이 났다. 물론 요즘은 요양원에 출입문 안전 장치가 잘 갖춰져 있고, 치매 팔찌와 같은 도움 장비들이 있어 그런 일은 많이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튼 어르신들을 모시는 사람들의 노고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수익이 안정되지 않아 3년 동안 월급을 한 번도 가져가 본 적이 없다는 노애정 원장.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노인 선교'가 궁극적인 목표라고 했다.

끊임없이 걸려오는 상담 전화에 유창한 영어로 일일이 응대하면서도 성의껏 안내해 준 노애정 원장의 표정에는 어르신들의 마지막을 책임지는 전문가로서의 당당함과 함께 환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정말 노인복지 아무나 하나 싶었다. 노인복지 하는 선후배들과 만나면 꼭 하는 말, '노인복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란 말이 생각났다.  

치매에 무슨 동서양이 따로 있고, 남녀가 따로 있겠는가. 살아온 시간을 다 잊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물론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잊어 버리는 병... 애스컷 하우스를 돌아나오는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 않았던 것은 노년의 병든 삶이 애처롭고 안타깝고 두려워서였다. 늙음에서, 질병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나도 예외는 아니니까.

애스컷 하우스 노애정 원장과 함께. 사진 왼쪽이 노애정 원장
애스컷 하우스 노애정 원장과 함께.사진 왼쪽이 노애정 원장 ⓒ 유경

덧붙이는 글 | www.ascot-house.net
Email : ascothouse@dodo.com.au



#애스컷 하우스#노인요양원#노인#노년#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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