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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청준 선생님과 함께 한 기억들. 단편 <눈길>에서 어머니가 아들을 데려다주고 돌아가던 장면을 회상하는 이청준 작가(상). 작가 이청준이 <당신들의 천국>의 배경인 소록도를 찾아와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중). 장흥에서 소록도로 가는 뱃길 갑판 위에서 이청준 선생이 독자와 함께하고 있다(하).
이청준 선생님과 함께 한 기억들. 단편 <눈길>에서 어머니가 아들을 데려다주고 돌아가던 장면을 회상하는 이청준 작가(상). 작가 이청준이 <당신들의 천국>의 배경인 소록도를 찾아와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중). 장흥에서 소록도로 가는 뱃길 갑판 위에서 이청준 선생이 독자와 함께하고 있다(하). ⓒ 안경숙

여고 시절 교과서는 못 챙겨도 소설 한 권씩은 빼놓지 않고 넣어다녔다. <병신과 머저리>라는 단편집도 그 중 하나다.

 

당시 작가 이청준의 소설은 내게 교과서 대용이었다. 앞에서 선생님이 떠드는 동안 친구의 등을 가리개삼아 고개 숙이고 소설 읽는 낙을 제대로 누리느라 '언더'에 머물렀던 내 인생은 '소설이 원수'라는 말을 내뱉으며 아웃사이더로 풀렸다.

 

그리고 오늘에야 이마를 쳤다. 아웃사이더로 살아오는 내내 나는 '병신'이었고 '머저리'였다. 재능 없는 필력으로 감히 '소설'을 꿈꾸었던 것도 이청준 선생의 소설을 읽으면서였음을 오늘 이청준 선생의 죽음을 접하며 떠올린다.

 

나는 어떤 평론가의 글 한 줄 읽는 우를 범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선생의 글을 읽고 또 읽었더랬다. <별을 보여드립니다>에 담긴 슬픈 의지는 엉뚱하게도 내 낭만의 바탕이 되었고 <소문의 벽>과 <조율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대의 어둠과 불안을 가르쳐 주었다.

 

<이어도>를 두 번 세 번 읽으면서 나는 죽음 저편에 자리한 삶의 영역을 욕망했으며 <당신들의 천국>이 던져준 감동은 그대로 바윗덩어리가 되어 가슴을 눌렀다. 선생이 남긴 작품을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니 알겠다. 이청준이라는 작가가 내게는 거대한 문학서요, 내 문청 시절 한가운데 우뚝 서있던 문학의 나무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황송하고 꿈만 같은데 문학의 이정표에 다름아닌 이청준 선생과 함께 한 적이 있다. 5년 전 '소록도 문학기행' 때였다. 파도가 거칠고 바람이 몹시 부는 날씨였지만 갑판에 이청준 선생과 함께 서너 명이 나와 앉아 있었다. 그때도 이미 당뇨합병증으로 몸이 많이 약해져 수척해 보이셨다.

 

무슨 얘긴가 끝에 선생은 "내가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로 자꾸 소설을 잡고 있을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 돼"라며 씁쓸하게 웃으셨다. 참 철딱서니없게도 나는 그때 그랬다.

 

"독자로서의 욕심인데 저도 선생님의 문학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는 작품이 안 나왔으면 싶어요. 지금껏 제가 누려온 작가 이청준의 문학을 저보다 어린 세대의 독자들이 고스란히 누릴 수 있게요."

 

그랬던 선생님이, 작가 이청준이 7월 31일 새벽에 영영 가셨다. 소록도를 나와 버스를 타고가던 어느쯤에선가 먼저 내리시게 된 선생이 일어서셨고 나는 앞으로 달려나가 선생의 손을 잡았더랬다. 그때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했던 선생의 손을 잡고서 제대로 하지 못한 말이 내 속에 남아 있다. 이제 선생이 가시는 길 작가 이청준의 문학에 어림없이 못미치는 초라한 헌사를 꺼내놓는다.

 

문학은 궁극에 자리한 내 삶의 별자리임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3월 이청준 선생의 모습
2007년 3월 이청준 선생의 모습 ⓒ 마동욱

#이청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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