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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출판
달은 오롯이 어두운 밤을 항해하는 선장입니다. 별무리를 이끌며 밤의 낭만을 지켜주지요. 그렇다면 실제로 달은 어떠할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추억과 낭만이 있을까요. 물론 그 해답은 과거에 달 탐사여행을 다녀온 우주인들이 해주었습니다.

그들이 본 우주는 시꺼먼 암흑 뿐이었어요. 달은 대기도, 바람도, 그 어떤 생명체도 없는 죽음의 공간이었지요. 도착한 우주인들의 귀를 곤두세울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상하좌우의 방향조차 없는, 지구의 모든 사물과 법칙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그 압도적인 위력에 달을 다녀온 우주인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완전히 다른 시공간을 경험한 그들의 삶은 예전과 같을 수 없었습니다. 광인이 되어 인생을 탕진한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종교에 귀의해 목사나 전도사가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정계에 진출한 실리적인 인물도 물론 존재했지요.

우주인이 되기 위한 조건은 대단히 까다롭습니다. 항공학, 천문학 등은 물론 우주여행에 필요한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무중력의 위력과 예상치 못한 위험을 견딜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아무나 우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내에서도 얼마 전에야 첫 우주인이 탄생했지요. 그나마도 우주선을 이끄는 선장이 아닌, 참여하는데 만족하는 수준이었고요.

<무중력증후군>에서 그려지는 달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놀랍게도 이 소설에서는 달이 하나가 아닙니다. 이 소설의 기발한 질문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달의 증식'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농담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삶과 사회에 다가온 현실이라면, 우리는 혹은 주변은 얼마나 달라질게 될까.

이를 지켜보는 화자이자 주인공은 스물다섯의 나이에 강남의 부동산 회사에 다니는 과장 '노시보'입니다. 겉만 봐서는 번지르르할 것 같지만, 실은 입사와 동시에 과장이 되는 회사에서 업무 시간 내내 전화번호 책를 뒤져가며 익명의 누군가에게 전화해 땅 투기를 권유하는 게 전부인 사람입니다. 여자 친구도 없고 딱히 희망적인 미래도 없어요. 집에서는 내내 공부 잘하던 형에게 밀려난 신세지요.

그의 유일한 낙은 뉴스를 보는 겁니다. 최신 검색어와 포털사이트의 메인을 장식하는 선정적인 카피와 제목의 기사들. 그 기사를 허겁지겁 섭취해 남들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거지요. 회사 뿐 아니라 동호회 등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최신 트렌드 유행은 물론 이런 기사들을 수시로 접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입니다.

그는 휴대폰의 알림 메시지, 인터넷 그리고 사무실이나 거리 곳곳의 소문 등을 통해 이런 이야기들을 접합니다.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노 과장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안정감 그 자체거든요. 그것이 그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것을 궁금해 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중략) 순위에 내가 아는 것이 올라오면 안심이 되었고, 모르는 검색어가 등장하면 부리나케 정보를 찾아보았다."(본문82쪽)

두 개의 달이 떴다? 아니, 끊임없이 달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하여, 평소와 다름없이 뉴스 섭취에 여념이 없던 어느 날 그의 레이더망에 충격적인 소식이 감지됩니다. 두 개의 달이 떴다! 그렇습니다. 달의 증식 사건이 일어나고야 만 겁니다.

노시보 과장은 물론,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빠른 속도로 알게 됩니다. 뉴스를 제공하는 언론과 미디어에서도 이를 놓칠 수는 없겠지요. 신문 지면 대부분을 달 증식 사건으로 채우고, 텔레비전 토론회와 시위까지 열리며 그야말로 사회는 대혼돈 상태에 빠집니다.

실제 보통 사람들의 두 눈으로는 목격이 불가능하고, 오로지 망원경으로만 관찰이 가능한 이 두 번째 달. 이 두 번째 달이 바로 사건의 발단이었습니다. 이에 무중력자가 되어 달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고된 중력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왜냐? 두 개의 달이 생겼으니 그만큼 지구를 떠나 살 수 있을 확률도 높지 않겠냐는 다소 비현실적인 바람이 증폭된 거지요. 이 바람은 급속도로 퍼져 현대사회의 사람들을 감염시킵니다. 바이러스에 걸려 허우적대는 것처럼 사람들은 거리 곳곳을 부유하며 방종과 자살을 일삼습니다. 내면에 품고 있던 현실에 대한 탈출의지가 광기로 표현되는 겁니다.

문제는 현대 사회와 언론이 이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입 닥치고 '돈'이 지상 최대 과제인 그들에게 '달의 증식'과 '무중력자의 증가'는 놓치기 어려운 유혹이었습니다. 언론은 끊임없이 두려움과 공포를 증폭시키며 사람을 불안에 떨게 만들며 돈을 법니다.

장사치들은 무중력을 이용한 천편일률적인 돈벌이들을 내놓습니다. 물론 이는 대성공을 거두지요. 왜? 사람들에게는 뒤처지지 않으려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에요. 노시보 과장처럼 말입니다. 남들과 같은 이야길 듣고, 같은 공감을 하기 위해 확실한 근거나 자료는 필요 없었습니다. 오로지 소문의 꼬리를 붙잡으며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달은 계속 늘어납니다. 네 개가 되고, 다섯 여섯 개 이상으로 늘어납니다. 사람들은 차츰 지루해하기 시작하지요. 뭐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 돈벌이의 수단은 물론 사회 유지의 수단으로 이용되던 달의 증식은 이윽고 사람들의 관심 밖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와 언론은 또 다른 두려움과 공포 대상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고요.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생존법칙인 셈입니다.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

<무중력증후군>은 '달의 증식'과 이로 인해 생긴 '무중력증후군'(책에 따르면 달의 증식으로 인해 숨을 잘 쉬지 못하고, 목덜미가 뻐근하고, 가끔 사물이 빨갛게 보이며, 가끔 턱관절이 이상해지고, 위가 쓰리기도 하는 증상을 말함)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문제적 현상들을 경쾌하게 터치한 세태풍자소설입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과 깊이를 가졌음에도 시종일관 가볍고 경쾌한 이야기와 문체가 이어져 한 번 책을 열면 끝날 때까지는 덮을 수 없을 정도로 소설적 재미도 상당합니다. 1980년생의 젊은 작가답게 재기 발랄하면서도 다양한 퀼트의 이야기 조각들을 그럴 듯하게 잘 직조해낸 점도 돋보입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뒤에 적힌 심사위원들의 일방적인 극찬에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만, 젊은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 이 정도라는 것에는 정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잡아낸 사회 현상 그리고 사람들 행동의 디테일. 꼼꼼한 이야기 전개와 구성은 단연코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은 사람들의 내면에 끝도 없이 차오르고 있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돈과 미디어 매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돈이 사랑과 성공, 꿈을 모두 말해주는 게 현실이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유혹의 꼬리를 뒤좇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되는 겁니다.

언론과 그에 속한 기자들은(소설에 나오는 퓰리처 같은) 이것 저것을 묶어 반복성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또 다른 양식의 공포를 만들어냅니다. 이게 성공하면 세상은 곧 그들의 법칙대로 돌아가게 되는 겁니다.

"무엇이든 금세 잊고 치유하는 이 도시에서는 반복적인 것이 곧 두려운 것이 된다."(본문 104쪽)

누구나 한 번쯤은 다른 세상을 꿈꿉니다. 달이 늘었다는 것은 곧 그들에게 세상의 중력법칙을 극복해내고, 날 수 있다는 달콤한 환상을 부여한 것입니다.

"이 사회의 거짓말이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은 것처럼 어쩌면 달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범죄를 계획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들킬 때까지 계속할 거짓말을."(본문 290쪽)

노시보 과장과 '달의 증식'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결말과 조우하게 될까요. 허황된, 그러나 소중한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아니면 깊은 체념만을 배우게 될까요. 제13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인 윤고은 장편소설 <무중력 증후군>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더운 날씨에 복잡한 인문서나 소설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젊고 경쾌하면서도 현대 사회 세태를 깊이있게 그려낸 <무중력증후군>은 더위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좋은 해답이 될 만한 즐거운 소설입니다. 호이, 호이! 세상의 기준과 법칙을 잠시라도 이겨낼 수 있는 마법 같은 힘이 혹시, 당신에게 필요하진 않으신가요?  


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한겨레출판(2008)


#무중력증후군#한겨레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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