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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맞은 YTN, '성장을 하는 과정'

 

14일 아침 일찍 일어나 YTN 본사로 향하는 나의 귓전에는 단식투쟁 중인 현덕수 전 YTN 노조위원장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이 싸움은 방송인으로서의 직업 소명 의식이 맞닿은 싸움이다. KBS나 MBC와는 달리 YTN은 1995년 출범 이후에 이렇게 '국민의 방송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에 대해 명확하게 각오를 다질 계기가 없었다. 이제야 성장을 위한 진통을 겪는 것 같다. YTN은 지금 사춘기에 비유할 수 있으며 성장을 하는 과정이다."

 

지난 4일에 YTN 본사 앞에서 YTN 노조원들과 시민들이 함께 했던 촛불집회에서, 현역 노조위원장이었을 당시의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였다(현 박경석 노조위원장은 6월 26일 선출됐다). 그러면서 현 전 위원장은 지금의 '낙하산 사장' 사태에 대해 "공영방송이라면 한번쯤 겪는 통과의례"라고 했다. 그것이 바로 '국민의 방송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명확한 각오'였으며 '사춘기'이자 '성장을 하는 계기'라는 것이다.

 

그렇듯 YTN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14일 오늘은 그 기로가 정점에 달한 날이었다. 이미 일찌감치 '임시주총'이 예정돼 있었으며, 그 임시주총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당시 방송특보를 맡았던 구본홍씨를 정식사장으로 추인하는 자리였다. 오래 전부터 YTN노조는 임시주총 자체를 막기 위해 '봉쇄'에 나설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들은 아침 7시부터 행동에 나섰다.

 

언론노조와 시민들도 YTN노조에 '응원 목소리'

 

▲ 아침 일찍 찾아와 YTN 노조를 응원하는 시민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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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노조는 '14일 주총 관련 투쟁 방안'을 통해, 취재분야 조합원의 14일 오전 모든 취재 일정을 취소하고, 생방송 필수요원을 제외한 나머지 뉴스진행 분야 조합원 및 휴가자와 야근자의 '적극 참여'를 요구했다. 수백 명의 YTN 조합원들 역시 그에 화답해 이른 새벽부터 1층 로비에서부터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철저히 막았다.

 

하지만, YTN 사측이 수백 명의 용역을 주총이 열리는 본사 5층과 엘리베이터, 비상용 계단 등에 배치하면서 묘하고도 서글픈 장면이 연출됐다. 조합원들과 용역들은 곳곳에서 대치했고, 현덕수 전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은 주총장에서, 그리고 로비 곳곳에서 "이곳에 왜 저들이 있어야 하느냐"면서 강하게 항의했다.

 

현장 곳곳에는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과 YTN 노조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이야기했던 박성제 MBC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전국언론노조의 구성원들이 YTN 조합원들을 도와 용역과의 대치에 나섰다.

 

이명박 정부의 '특보단 낙하산 인사'는 박경석 YTN 노조위원장의 언급처럼 '사업장의 한계'를 뛰어넘은 '언론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연대'를 이끌어냈다. 그들은 YTN이 무너지면 KBS와 MBC로 번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했다.

 

그렇다면 바깥에는 누가 있을까?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그동안 YTN 본사 앞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도 아침 일찍 모여 조합원들에 대한 응원의 구호를 보내고 있었다. BJ '산타니온'도 변함없이 노트북을 들고 열심히 생중계에 임하고 있었다. 이들의 응원은 YTN 노조의 낙하산 사장 저지 움직임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주총장, 단상 앞에서는 '용역'들의 스크럼이...

 

▲ 주총장에서의 '몸싸움'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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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앞에서 주총장에 출입할 수 있는 '프레스'를 발급 받아 단 1기만 가동되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통해 5층 주총장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노조 측과 용역의 신경이 집중되고 있는 민감한 현장이었다. 지하에서 엘리베이터가 올라온다면 주주들이 5층 주총장으로 향하고 있다는 의미. YTN 노조 측은 결사적으로 막아야 하며, 용역은 결사적으로 출입시켜야 했다.

 

그 과정에서 몸싸움이 일어났다. 격렬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결사적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 노조 측이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용역 몇 명이 밀려나고 박경석 위원장이 '비폭력'을 강조하면서 상황은 곧 정리됐다.

 

 

 

하지만, 주총장에서는 더욱 격렬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단상 앞에는 임시주총의 의장을 맡은 김재윤 대표이사가 서 있었고, 그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노조 측의 단상 진입을 막기 위한 것인지 용역들이 스크럼을 짜고 서 있었다. 그 스크럼에 YTN 노조원들의 다시 한 번 분개했다. 다음과 같은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저 사람들은 무슨 자격으로 저기에 서 있는 것입니까? 이런 식의 주총은 효력 정지 대상입니다!"

"지금 '명박산성'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그 상황에서 박경석 위원장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선언했다.

 

"지금부터 저희는 '실력 행사'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이어진 몸싸움. 좁은 주총장에는 노조원과 용역은 물론 수많은 취재진까지 몰려 있었다. 때문에 몸싸움이 이어지자 금새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단상과 김재윤 대표이사를 '쟁탈전'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용역이 밀렸다.

 

주춤주춤 밀리던 그들은 아예 단상 밖으로 내몰렸고, 그 사이에 앞으로 진입한 노조원들이 자리에 주저앉았고 일부는 스크럼을 짰다. 가장 앞 창문 앞가에 있던 김재윤 대표이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스크럼을 짜고 사력을 다하던 용역들도 점차적으로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임장혁 YTN 돌발영상팀 기자가 김재윤 대표이사에게 뭔가 간절하게 이야기하는 상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김재윤 대표이사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눈웃음까지 지어 묘한 뉘앙스가 연출됐다.

 

이렇게 해서 노조원들은 주총장에서 용역들을 몰아낼 수 있었다. 박경석 위원장은 "용역들이 빠져나갔으니 주총을 진행하자"고 이야기했다. '주총 진행' 선언과 함께 주주들은 주총장에 자리잡았으며, YTN 내의 '우리사주' 조합원들도 이미 '주주 비표'를 받고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다. 노조와 사측이 협상해 '주총 진행' 형식만은 밟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6일간 단식, 현덕수 전 위원장의 놀라운 에너지

 

주총이 열리기 직전에는 조합원들의 다양한 발언이 이어졌다. 의미있는 발언도 나왔다.

 

"현직 대통령을 만드는 데에 일조한 사람이 중앙언론사의 사장이 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타협할 수 없어 이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오늘 선배님들께 '하수인'이라는 표현도 쓰고 그랬는데 나로서는 참담한 소식을 들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누구인지 밝혀달라. 선배님들 중에 대주주의 권리를 위임하려고 하신 분들이 있다고 들었다."

 

<돌발영상> PD였던 노종면 앵커의 말이었다. 장내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박경석 위원장이 "추후에 반드시 밝히자"고 대처함으로써 상황은 다시 진정됐다. 그 다음 새로운 사람이 발언했다. 오늘로 6일째 단식투쟁중인 현덕수 전 위원장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캠프 방송특보를 YTN 사장으로 앉히려는 대주주의 행동이 정당한가. 방송 독립을 지키려는 우리의 행동이 정당한가. 그리고 용역을 동원해 단상을 점거한 사측의 행동이 정당한가, 그것을 막은 우리가 정당한가.

 

나는 운동권 출신도, 전문가도 아니다. 단지 선배들이 가르쳐준대로 했을 뿐이다. 선배들은 왜 눈을 감고 계신가? 입사 14년동안 선배들로부터 배운 언론기자의 원칙은 다 허구였나. 지금 우리 후배들이 왜 이럴 수 밖에 없는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 연설에 나선 현덕수 전 위원장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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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선배들을 이해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뼈'는 잊지 않은 듯했다.

 

"개인적으로는 선배들에 대한 비난에 동의하지 않는다. 선배님들에게도 충정이 있을 것이다. 그 충정을 이해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선배님들도 하셔야 할 일이 있다. 선배님들이 청와대와 구본홍씨를 직접 설득해주시길 바란다."

 

곧이어, 김재윤 대표이사는 의장석에 자리잡아 '개회 선언'을 선포했다. 77.69%의 주주가 참석했다고 한다. 간단한 감사보고 진행과 함께 이렇게 이야기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오늘 심의하고자 했던 안건은 불가피하게 상정을 못하게 됐습니다. 총회를 연기하고 다음 일정을 의장에게 일임하고자 하는데 이에 동의하십니까?"

 

조합원들의 박수가 울려펴진다. 이 소식은 바깥에 자리잡고 있던 시민들에게도 알려졌다. 시민들 역시 박수와 환호성으로 '승리'를 만끽했다.

 

"단 한명도 대오를 이탈하지 않고 주총을 무산시켰다. 조합원 여러분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두 달이 넘게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외쳤을 뿐이다. 공허한 메아리처럼 느껴졌다. 우리 말을 외면해 우리는 이렇게 힘을 쓰게 된 것이다. 우리의 단결된 힘을 통해 주총을 무산시킨 것으로 1차 목표는 달성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이 끝이 아니다. 이후에도 이명박 정권은 '낙하산 사장'을 앉히려고 계속 시도할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향후투쟁 대책논의를 가져 반드시 구본홍씨를 막아낼 것이다." - 박경석 위원장

 

▲ 시민 향한 '감사의 인사'와 함께 날아온 '종이 비행기'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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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아닌 싸움, YTN의 미래는?

 

박경석 위원장의 이야기처럼 "오늘이 끝은 아닐 것"이다. 이미 3개 방송사 및 유관기관 기관장에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캠프 특보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YTN은 중요한 분기점이다. 그 '낙하산 시도'가 중앙방송사에도 통할 수 있을지, YTN이 첫 관문이다. 게다가, 3개 기관에서 별다른 저항없이 낙하산 사장이 안착한 것에 반해 YTN에서 첫 저항에 부딪친 것이다. YTN의 상황에 따라 KBS와 MBC의 방향도 좌우될 것이다.

 

나로서는 상황이 정리되자 현덕수 전 위원장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안부가 궁금해 "단식중이신데도 힘내시느라 수고많으셨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봤다. 곧 답장이 날아왔다. 개인적으로 나눈 문자메시지지만, 혼자서만 간직하기보다는 더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싶은 그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에 공개해볼 생각이다. 혹시 이 글을 보실지도 모르는 현덕수 전 위원장, 양해해 달라.

 

"고맙습니다. 기력은 없네요. YTN 계속 사랑해주세요."

 

그는 YTN을 계속 사랑해 달라고 했다. 지금껏 오랫동안 촛불을 들고 YTN 본사 앞을 지켜왔던 '촛불시민'들을 향해 "고맙다"면서 "YTN이 지금까지 시민들께서 바라시는 보도를 구현했는지, 앞으로도 구현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던 그의 단식 3일째날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시민들은 YTN을 앞으로도 주시할 것이다. 이를 계기로 과연 YTN이 '사춘기'를 넘어 '성장'을 일궈낼 수 있을지, 시민들의 눈은 YTN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위기의 언론독립, #구본홍,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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