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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BS가 방영한 특집다큐 <신의 길 인간의 길>(6월29일 첫방송)이 한기총을 비롯한 보수 기독계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 29일 방송된 다큐 1부 '예수는 신의 아들인가?'에서, 예수가 고대 이교신화의 영향을 받아 신화적으로 조작된 인물일 가능성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지난 2천 년 이상 구세주(求世主)로 섬겨오던 예수가 역사상 실재했던 것이 아니라 상상에 의한 허구적 인물에 불과하다니, 이런 파격적 주장이 대다수 기독교인들에게 큰 충격과 분노, 허탈감을 안겨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 다큐는 신화적 예수상을 내세우는 소수 학자들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내보내진 않았다. 비록 다소 급진적 시각을 가진 학자들이 주축이긴 했으나, 다년간 예수를 연구해온 국내외 중요한 학자들을 인터뷰해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주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사실 상업적인 공중파 방송에서, 예수에 대해 이렇게 나름 진지하게 학문적 접근을 시도한 사례는 이례적이다. 게다가 제작진은 종교 간의 '소통'을 위해 이 시리즈를 기획하고 많은 시간과 자본을 투자하여 만들었다고 하니 평가할만한 일이라고 본다.

그런데 일부 보수 기독교계가 나서서 대규모 반대집회와 같은 실력행사로 방송자체를 막으려 시도하고 있다. 이는 성숙한 신앙인답지 못한 과잉대응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지난 2002년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이 출간되어 큰 화제를 모으자 이를 절판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이력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때처럼 힘으로 밀어붙이면 될 줄로 아나 보다. 그러나 지금 같은 정보화 시대에 어떤 정보가 유통되지 못하게 억지로 막는다고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앞서 방영된 내용정도는 '예수 역사학'에 어느 정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크게 새롭다할 것도 없는 상식적인 수준이다. 이미 국내에 최근 역사의 예수 연구 동향을 알 수 있는 책들이 다수 출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긴 줄곧 근본주의·문자주의 신앙의 틀에 갇힌 교회들은 그러한 다큐가 큰 위협과 도전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자주의 신앙을 졸업한 기독교인들에게 예수 신화론은 토론거리는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신앙을 뿌리 채 흔드는 충격을 주진 않으리라고 본다.

성서가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사실의 언어'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적인 '진실의 언어'로 기록되었음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서는 역사적 사실에 관한 정보를 일정하게 담고 있다. 그러나 성서 자체가 애초부터 그러한 사실 전달보다는, 삶의 깊이를 드러내는 의미에 더 초점을 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이 교계에 파문을 낳던 무렵, 나는 한국교회가 이 책을 실력행사로 무작정 절판시킬 것이 아니라 전문 신학자들과 함께 토론을 하기를 바랐다. <뉴스앤조이>와 <CBS>에서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여 실제 토론회를 개최한 적도 있었다. 일부 신학자들의 방송 토론회다보니 겉도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으나 그 나름의 차분하고 합리적인 대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옛 이야기가 말해주듯, 언로를 억지로 차단하면 본래 막으려던 목소리가 오히려 더욱 증폭되는 것이 일반적 속성이다. 그러니 차라리 기독교는 외부의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공론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현재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국내에도 역량 있는 쟁쟁한 신학자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교권을 틀어쥔 자들의 등쌀에 이들의 자유로운 학문 활동이 크게 위축되어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이번 다큐를 둘러싼 사태만 하더라도, 다수의 신학자들이 기이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기껏해야 보수적인 몇몇 학자들의 전통 교리에 기초한 원론적인 수준의 이야기 밖에 흘러나오지 않는다. 이래가지고야 기독교를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 갑갑한 노릇이다. 이번 기회에, 최소한 지난 200여년이 넘도록 진행되어온 ‘역사적 예수 연구’ 결과에 대해 알기 쉽게 소개 정도는 하는 것이 공부한 학자들의 책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야 자못 센세이셔널한 예수 신화론 같은 주장이 어느 정도의 학문적 평가를 받고 있는지 냉정한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대체 기독교에서는 무엇을 근거로 예수의 역사성을 내세우는 것일까? 생산적인 논쟁을 위하여 신학계에서 말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간략히 정리하여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신약성서>와 각종 <외경> 상의 증거다. 신약성서 가운데서도 복음서의 기록이 역사의 예수를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자료다. 복음서는 예수 이후 약 40여년이 지난 뒤 <마가복음>부터 기록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복음서는 예수의 전기를 쓸 목적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널리 알리고 믿게 하기위해 기록된 책들이라서 오늘날 예수의 역사성을 가려내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른다.

신학적 해석에 의한 진술 너머에 있는 역사적 실체를 추적해내려면 엄밀한 비평작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까다로운 비평작업은 역사비평학이 발달된 18세기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렇긴 해도 현재 무수히 많이 남아 있는 복음서 사본들은 예수가 실존 인물이었음을 말해주기에는 크게 부족함이 없는 자료가 되고 있다. 이렇게 오래된 사본들의 존재는 예수의 역사성을 따지는 작업 자체를 가능케 만든 요인이 되기도 한다.

* 현존하는 신약성서 사본은 헬라어 사본이 5,746개, 라틴어 사본이 약 10,000개, 그 밖의 다른 언어로 된 사본은 8,000여 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복음서 사본은 다음과 같다.
100-150년: 요한복음(P52), 에거톤복음(PEgerton 2)
150-225년: 마태복음(P64, 67, 77), 요한복음(P66, 90), 도마복음(POxy 1), 베드로복음(POxy 2949, 4009). 

둘째, 매우 드물고 단편적이긴 하지만 성서 외적인 자료들도 일부 존재한다. 이 성서 밖의 증거 자료들도 그 진정성에 있어서 많은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예수에 대한 언급이 극히 단편적인 수준인데다, 남아 있는 사본 자체가 성서에 비해 너무 늦기 때문에 혹시 가필되지 않았을까하는 의혹이다. 가령 요세푸스가 저술한 <유대고대사>의 경우, 가장 오래된 사본이 10-12세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러한 사정은 호메로스나 플라톤 등 다른 고대문서들도 모두 다 마찬가지다. 우리 시대의 고전 가운데 성서사본 만큼이나 최고(最古)의 것으로 현존하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①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AD. 37/38-100년 이후)의 증언 : 요세푸스는 ‘예수라고 하는 한 현자’가 살았으며, 메시아로서 한때 대중적인 명성을 얻다가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되었고, 그를 따르는 족속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유대고대사>18, 63-64.) 요세푸스는 또한 62년 ‘율법 위반을 이유로’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대제사장 아나누스와 그가 이끄는 산헤드린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전한다.(<유대고대사> 20, 200)

② 랍비자료 [bSanh 43a] (구전되던 것을 기원후 2세기 초에 기록) :
“예수가 마술을 행하고 이스라엘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여 불충한 자로 만들었다”면서 그에 대한 적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이 자료는 예수에게 다섯 명의 제자가 있었으며, “아무도 그를 변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유월절 축제 전날 밤에 매달았다”고 전한다.

③ 시리아인 스토아 철학자 마라 바르 사라피온의 기록(73년경):
이 철학자는 로마의 어느 감옥에서 자신의 아들 사라피온에게 쓴 편지에서 예수로 추정되는 인물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유대인들이 현명한 왕을 처형하고 그때부터 그 나라를 빼앗겼으니 그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소크라테스는 죽지 않았다-플라톤 때문에. 피타고라스도 아직 살아 있다-헤라스타투에 때문에. 현명한 왕도 살아 있다-그가 준 새로운 율법 때문에.

④ 로마의 정치가 플리니우스(61-120년경)의 서간문:
폰투스 지역을 관할하는 총독시절 그리스도인에 대한 고발을 받고 조사하면서 초기 그리스도교 신앙이 어떠했는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규칙적으로 정해진 날 해가 뜨기 전에 모여서 차례차례로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경배하며, 나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도둑질, 강도, 간음, 약속 파기, 기탁금 횡령을 중단할 것을 맹세합니다.”

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55/56-120년경)의 <연대기>15,44,4 :
타키투스는 네로의 전기를 쓰면서, 64년 발생한 로마의 큰 화재로 인해 방화혐의를 받았던 기독교인들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이 명칭(Christiani)은 티베리우스 황제 치하의 행정관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당한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 부패한 미신은 잠깐 동안 억눌려 있었지만 나중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 신앙이 처음 발생한 유대 지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혐오스러운 것과 흉악한 것들이 밀려들어와 횡행하고 있는 로마에도 세력을 뻗혔다.”

⑥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70-130년경) :
그는 열두 황제의 생애를 집필했는데, 그 내용 중에 클라우디우스 황제(41-54)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한 사건을 짤막하게 언급한다. 이 사건은 사도행전(18:2)에서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고린도로 이사하게 된 배경과 관련하여 나온다. 기독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수에토니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크레스투스에 의해 미혹되어, 끊임없이 소요를 일으키는 유대인들을 그는 로마에서 추방했다.”

⑦ 로마인 혹은 사마리아인 역사가 탈루스(1세기) :
로마 역사가 율리아누스 아프리카누스(170-240년경)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 당시 발생한 급작스런 어둠에 대해 탈루스가 그의 책에서 언급했음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역사책 제 3권에서 탈루스는 이 어둠을 일식이라고 부른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불합리한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마커스 보그/김중기·이지교 역. (2004). 『성경 새롭게 다시 읽기』. 연세대출판부.

게르트 타이센․아네테 메르츠/ 손성현 역. (2001).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정승우. (2005).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책세상.

로버트 펑크/김준우 역, (1999). 『예수에게 솔직히』. 한국기독교연구소.

장동수, (2005). 『신약성서 사본과 정경』. 침신대출판부.

김경희 외, (2002). 『신약성서 개론』. 대한기독교서회.



예수는 신화다 - 기독교의 신은 이교도의 신인가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지음, 승영조 옮김, 미지북스(2009)


태그:#신의 길 인간의 길, #역사의 예수, #예수는 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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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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