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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요즘 촛불끄기에 나름 여념이 없다. 경찰, 검찰의 도움으로는 부족했는지 최근에는 서울광장의 잔디 힘(?)까지 빌려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27일 서울시는 "서울광장의 잔디가 복구 불가능한 수준으로 훼손되어 잔디 교체작업을 실시 한다"면서 "잔디 교체기간(6월 27~29일) 및 잔디 활착기간(7월 7~20일)까지 잔디 내 출입을 통제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이미 지난 6월 13일자 '파릇파릇하던 잔디는 어디로…'라는 기사를 통해,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 예년 같으면 푸른 잔디가 한창이어야 할 광장은 엉망이었다"면서, "서울광장이 연이은 촛불집회의 여파로 폐허나 다름없게 변했다"며 잔디를 아끼는 마음(?)과 함께 이명박 정부와 서울시에 훈수(?)를 둔 바 있다.

또 위 기사는 잔디를 조성한 2004년부터 2008년 5월말 현재까지 8억5500만원이 들었고, 잔디 구입비용이 2008년에는 1억원이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잊지 않았다.

최근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동아일보> 등도 촛불집회로부터 잔디를 보호할 방법에 골몰하는 모습이다. 속보이는 짓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명분은 '잔디광장' 보호다.

 서울시청과 용역 직원 70여명이 28일 오전 서울광장에 설치돼 있던 천막과 집기 등을 철거하고 있다.
서울시청과 용역 직원 70여명이 28일 오전 서울광장에 설치돼 있던 천막과 집기 등을 철거하고 있다. ⓒ 선대식


'서울광장'은 공원이 아니라 '광장'이다

2002년 당시 이명박 시장은 "시청 앞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겠다"라며 2004년 5월 잔디를 깐 서울광장을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물론 개방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서울광장 사용조례'에 따라 매주 월요일이면 잔디보호를 이유로 출입을 금했다.

착한 시민들이 보기에는 촛불 든 집회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잔디를 밟아 훼손했다는 지적에 미안한 마음도 있다. 정부와 <조선일보>는 이 점을 노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촛불을 든 시민들이 착하기만 한가. 똑똑하기도 하다. 서울광장이 말 그대로 '광장'이지 '공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2002년 월드컵을 시청 앞에서 함께한 수십만의 시민들을 보면서, 이후 시민광장의 필요성이 대두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서울광장'이다.

'광장'의 사전 의미는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넓은 빈 터' 또는 '여러 사람이 뜻을 같이하여 만나거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말한다.

그런 광장에 잔디를 깐 곳은 아마 대한민국의 서울시뿐일 것이다. 공원에 잔디 까는 나라는 많다. 광장에 잔디 까는 나라는 드물다. 세계 기네스북에 혹시 올라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잔디훼손으로 인한 잔디교체에 드는 비용을 걱정한다는 핑계보다 지금부터라도 광장에 걸맞게 잔디를 제거하고 다시 서울광장을 조성해야 한다.

시민의 휴식처를 만들어 주고 싶으면 매년 들어가는 세금을 지금처럼 허비하지 말고 푸른 잔디가 있는 공원을 하나 만들어 주면 된다. 더이상 잔디 핑계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경제 살리겠다"는 구호 하나로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촛불을 끄기 위해서 또다시 이 구호가 등장했다. 이명박 대통령 뿐만 아니라 영부인마저도 "경제를 살리자"고 나섰다. 그래도 촛불을 든 민심은 심드렁하기만 하다.

오히려 "또 속을 줄 아냐"는 네티즌들과 시민들의 아우성이 드세다. "촛불민심 완전히 이해했다"는 이 대통령의 그간의 처방은 모두 헛방이었다. 경찰의 폭력진압도 그렇고, 검찰의 배후세력 운운하는 엄포도 그렇다.

 독일 쾰른시내 노이마크(Neumarkt) 광장. 항상 집회와 문화행사로 붐비던 광장이 오랜만에 한산한 분위기다.
독일 쾰른시내 노이마크(Neumarkt) 광장. 항상 집회와 문화행사로 붐비던 광장이 오랜만에 한산한 분위기다. ⓒ 남경국


'광장' 취지에 맞게 시민에게 돌려줘야

이런 와중에 드디어 서울시가 나섰다. 이명박 정부의 구원투수를 자처했다. 그 꼼수가 "잔디 살리겠다"는 것이니, 당황스러운 것은 촛불을 든 서울시민 뿐만이 아니었다. 침묵을 지키던 종교계가 일제히 나섰다.

"촛불을 든 민심을 살리겠다"고 지금이라도 대통령 스스로 나서는 것도 늦었다 싶은 마당에 "잔디 살리겠다"는 일부 언론과 서울시 오세훈 시장의 태도가 더욱 촛불에 불을 지르는 형국이다.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코드를 맞추는 것에 시비걸 생각은 없다. 오세훈 시장이 정부의 압력을 받았는지, 아니면 서울광장 잔디를 걱정하는 언론들에 영향을 받았는지, 또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잔디 살리기 위해서 결단을 했는지는 알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명심하자. 인구 천만이 넘는 세계적 도시 서울시장이 공원에 깔 잔디를 광장에 깔아서 굳이 '광장'과 '공원'도 구별 못한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할 이유가 더이상 없다. 그것을 계속 방치한다면 엉뚱하게 서울시민들마저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된다.

지금이라도 서울시는 서울광장을 광장 본래의 취지에 맞게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다. "경제 살리겠다"는 구호는 그럴싸해 보이기라도 하지만, "잔디 살리겠다"는 외침은 생뚱맞기 그지 없다. 또 더이상 속을 사람도 없다.

덧붙이는 글 | 홰외에 거주하시는 분들 중에서 거주하는 곳의 광장 사진을 기사의 댓글에 간단한 설명과 함께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각 국의 광장사진 파도타기 한번 부탁드립니다.

아직도 광장과 공원도 구별 못하고 잔디보호한다는 생각에 집착해서 광장에 잔디 심고, 잔디 핑계로 평화적 집회를 막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합니다.



#서울광장 #잔디광장#공원#촛불집회#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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