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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최서남단에 있는 가거도초등학교의 '나홀로 입학생' 문지오 어린이(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같은 교실을 쓰고 있는 2학년 누나들과 교문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국토 최서남단에 있는 가거도초등학교의 '나홀로 입학생' 문지오 어린이(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같은 교실을 쓰고 있는 2학년 누나들과 교문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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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았다. 변덕이 심한 해상 날씨 탓에 툭하면 여객선 운항이 중단되기 일쑤란다. 어렵사리 여객선이 출항해도 평균 3m안팎을 넘나드는 파도에 멀미를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란다.

목포에서 136km나 떨어진 국토 최서남단 가거도를 찾아가는 길은 그렇게 험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험한 뱃길을 평균 파고 1.5m로 기분 좋게 흔들리며 갔으니 운이 좋다고 할 수밖에.

그래도 명색이 국토 서남쪽 끝 가거도다. 아무리 운이 좋다고는 하지만 목포에서 하루 한 번 오가는 쾌속선을 타고도 무려 네 시간이 넘게 걸리는 뱃길을 간다는 것은 섬에서 자란 내게도 곤혹스런 일이었다.

가거도의 본섬인 흑산도에서 나를 낳아 기른 아버지조차 내가 가거도 간다는 말에 “칠십 평생 넘게 살면서 나도 한번 못 가본 곳인데…, 거긴 먼 바다라 파도가 굉장히 심해”라고 염려할 정도였다.

늙은 애비의 염려와 '섬놈' 출신으로서의 곤혹을 이겨내면서 가거도까지 간 까닭은 문지오 어린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전교생이 21명에 불과한 가거도초등학교. 지오(8) 어린이는 그곳 국토 최서남단 가거도초등학교의 ‘나홀로 입학생’이다.

지오 어린이의 지금 꿈은 요리사다. 하지만 수학을 좋아하는 지오 어린이의 꿈이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
 지오 어린이의 지금 꿈은 요리사다. 하지만 수학을 좋아하는 지오 어린이의 꿈이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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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오 어린이가 2학년 누나들과 함께 탐 만들기 공부를 하고 있다.
 문지오 어린이가 2학년 누나들과 함께 탐 만들기 공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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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 시가 다 돼 가는데 지오 어린이는 2학년 누나들과 함께 탑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었다. 1학년이 혼자뿐인 지오 어린이는 2학년 누나 5명과 함께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지오 어린이의 꿈은 요리사. "엄마랑 맛있는 음식 해먹을 수가 있어서 좋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 꿈은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 왜냐면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선생님이 물어보니까 생각난 꿈"이기 때문이다. "유치원 때부터 수학이 좋았다"고 하니 수학박사로 바뀔지도 모르겠고, "축구만 빼고 운동은 다 좋다"니 야구선수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섬 머스마답게 거침없이 활달하게 얘기하던 지오 어린이가 갑자기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3년 동안 유치원을 같이 다닌 김동진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요. 아주 먼 데로 이사 가서 슬펐어요. 멀리 있으니까 볼 수도 없고…. 동진이는 참 좋겠어요. 친구(전학 간 학교의 급우를 지칭하는 듯 했다 -기자 주)가 40명이어서요….”

얘기를 듣고 있던 2학년 누나들이 와 지오 어린이를 토닥였다. 금세 얼굴이 환하게 바뀌며 지오 어린이가 하는 말,

"그래도 누나들이 잘해주니까 좋아요!"

지오 어린이의 담임교사인 유혜숙 선생님은 "지오가 책을 아주 많이 읽어서 그런지 발표력과 표현력이 매우 좋다"고 칭찬했다. 유 선생님에 따르면 지오가 주로 읽는 책은 과학상식과 관련된 책들. 유 선생님은 "때 묻지 않고 순수한 것이 좋다"며 지오 어린이를 따뜻하게 바라봤다.

한 교실을 쓰고 있는 2학년 최지혜·임이슬·임어진 어린이는 한 목소리로 "지오가 재미있는 얘기하고 웃을 때 모습이 좋아요"한다. 박나리·손다영 어린이는 "지오가 훌륭하고 씩씩하고 착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하고 기원한다.

지오 어린이가 집 앞에서 엄마와 누나, 동생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장난을 치고 있다. 담장 너머로 가거도 먼 바다가 보인다.
 지오 어린이가 집 앞에서 엄마와 누나, 동생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장난을 치고 있다. 담장 너머로 가거도 먼 바다가 보인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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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 어린이 엄마 한희숙(37)씨는 "지오가 공부 잘해서 박사나 변호사 되는 것도 좋지만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면서 "이곳은 바다와 산 등 자연이 친구고, 누나·형들이 친구니까 자연스럽게 배우지 않겠냐"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씨 역시 지오의 외로운 모습을 볼 때는 마음이 '짠'(전라도에서 '안쓰럽고 가여운'의 뜻으로 쓰는 말 - 기자 주)하다고.

"운동회나 소풍 갔을 때 지오가 짝꿍이 없이 혼자 외롭게 있는 모습을 보면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아 짠하죠. 그래서 이번에 <오마이뉴스>가 주최하는 나홀로 입학생들 친구학교에 지오가 꼭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지오 엄마 한씨의 기대는 컸다. 지오 어린이도 오는 7월에 다른 지역에 사는 '나홀로 입학생'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했다.

"한 명만 와도 좋아요. 같이 친구해서 우리 집 소개도 하고 같이 놀고 싶어요."

지오 어린이는 아빠(문용신·37)와 엄마, 누나(은실·4학년)와 동생(은지·네 살)과 함께 살고 있다. 지오 어린이가 누나와 함께 쓰는 공부방엔 두 개의 창이 열려있었다. 첫 번째 창은 바다로 향해 열려 있는 유리창이었고, 두 번째 창은 인터넷 홈페이지 열린 창이었다.

지오 어린이는 유리창 너머 바다를 보면 "거북이나 수컷 꽃게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오 어린이 앞에 열려있는 인터넷 홈페이지 창은 또 어떤 꿈을 키워갈 수 있게 해줄까.

지오 어린이의 공부방엔 두 개의 창이 열려있었다. 첫 번째 창은 바다로 향해 열려 있는 유리창이었고, 두 번째 열린 창은 인터넷 홈페이지 창이었다.
 지오 어린이의 공부방엔 두 개의 창이 열려있었다. 첫 번째 창은 바다로 향해 열려 있는 유리창이었고, 두 번째 열린 창은 인터넷 홈페이지 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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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가거도초등학교, #문지오, #나홀로 입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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