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거짓말 같이 맑은 하늘이 드러나고, 소낙비에 제 모습을 찾은 만물들이 제 몸에 묻었던 먼지를 털어낸 기쁨을 만끽하듯 바람에 흔들거립니다. 맑은 하늘과 깨끗한 초록의 생명들을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집니다.
살다보면 이렇게 덤으로 얻는 기분좋은 날이 많아야 행복한데, 아무리 마음을 추스려보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게 요즘입니다.
살 맛이 나질 않으니 모든 일이 심드렁해집니다. 아무리 외쳐도 우이독경이요, 암암리에 분열을 조장하고, 아직도 좌파딱지만 붙이면 무조건 승리할 수 있는 위대한 대한민국의 현실이 마치 70년대 혹은 80년대로 회귀한 듯한 착각때문입니다. 국민의식은 21세기 첨단을 달려가는데 정치적으로는 20년 이상 후퇴한 듯하고, 경제적으로는 IMF를 방불케 합니다.
같은 입으로 두 말을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보수 언론들, 이제는 자신들이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간다 착각하며 사명감에 똘똘 뭉친 사이비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기형적인 것들을 척결하지 못한 지난 날이 부끄러워 살 맛이 나질 않았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정성은 보이지 않고 어떻게 하면 빌미를 잡고, 트집을 잡아 상황을 반전시킬까에만 몰두하는 것 같은 모습에도 진저리가 처집니다. 국민들은 이렇게 성숙했는데 정치와 언론과 교육은 아직도 유아기에 머물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옳은 것에 목숨을 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옳지 못한 일을 옳다 착각하고 목숨거는 이들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나마 그 꿀꿀한 마음을 소낙비 내린 후 연잎에 맺힌 빗방울이 풀어줍니다. 맑은 빗방울, 맑다는 것은 진실하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맑아서, 진실해서 그 작은 빗방울 속에 맑은 하늘을 담고, 초록의 빛깔을 담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실의 힘은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언가 많이 담겨져 있는 것 같은데 진실성이 없음으로 인해 들여다보면 썩은 냄새 밖에 나지 않는 것입니다.
작은 촛불들 속에서 나는 진실을 봅니다. 그 촛불을 끄려는 이들에게서 나는 거짓을 봅니다. 함께 그 자리에 있지 않아도 나는 진실이 들어있는 촛불을 응원합니다. 아직도 그들의 외침이 무엇인지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들, 보지 못하는 소경들의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 연잎과 빗방울과 개구리밥 이 모든 것이 어울려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그런 풍경같은 세상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