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8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졸업식.
2008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졸업식. ⓒ 한나영

미국은 요즘 고등학교 졸업 시즌이다. 지난 6일, 7일과 14일에 이곳 버지니아 주 해리슨버그시와 라킹햄 카운티에 있는 모든 고등학교들은 졸업식을 마쳤다.

학교 강당이나 교실에서 조촐하게 치러지는 한국 졸업식과 달리 미국 고등학교의 졸업식은 가족, 친지를 비롯하여 많은 축하객들이 참석하는 가족 행사로 치러진다. 그래서 이런 많은 축하객들을 수용하기 위해 풋볼 경기장이나 인근 대학 강당, 체육관 등에서 성대한 졸업식을 치르는 게 보통이다.

한국에서는 상을 받는 우수 졸업생 중심으로 졸업식이 진행되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졸업생이 박수와 환호를 받는 즐거운 졸업식이 치러진다.

먼저, 졸업생들은 학교 밴드가 연주하는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들으며 입장한다. 그러면 먼저 와서 자리하고 있던 선생님과 축하객들이 일어나 박수를 보낸다. 일부 가족들의 열광적인 환호와 호루라기 소리는 그곳이 마치 록 콘서트장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졸업생을 위한 '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하는 학교 밴드.
졸업생을 위한 '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하는 학교 밴드. ⓒ 한나영

 선생님과 축하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는 졸업생.
선생님과 축하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는 졸업생. ⓒ 한나영

그리고 이어지는 졸업생 대표 연설과 졸업장 수여. 장내는 다시 소란스러워진다. 왜냐하면 교장 선생님이 수여하는 졸업장을 받기 위해 졸업생이 한 명씩 단상에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이어지는 카메라 플래시. 일부 축하객들은 졸업생 이름을 연호하거나 박수를 치며 자신만의 독특한 몸짓으로 축하를 보내기도 한다.

한마디로 미국 고등학교 졸업식엔 볼거리가 많다. 졸업생들은 청바지나 반바지 대신 드레스나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졸업식 복장 규정이 있지만 파격적인 의상을 선보이며 이를 어기는 용감한(?) 졸업생들도 드문드문 눈에 뜨인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 공립학교엔 등록금이 없다. 학교에 내는 돈은 실험실습비와 워크북 책값, 라커 사용료가 고작이다. 그리고 그런 돈이라고 해 봐야 일 년에 100달러도 채 안 된다. 그러니 학교는 그저 공짜로 다니는 셈인데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돈이 안 드는 것일까.

입장은 '위풍당당'하게... 모든 졸업생이 단상에 오르는 미국 졸업식

 졸업반 시니어들이 1년 동안 쓰는 경비가 얼마나 되는가를 보도한 학교 신문 <뉴스스트릭>.
졸업반 시니어들이 1년 동안 쓰는 경비가 얼마나 되는가를 보도한 학교 신문 <뉴스스트릭>. ⓒ <뉴스스트릭>
천만의 말씀!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신문인 <뉴스스트릭> 18호는 '2008 졸업생'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이들 졸업생들이 지난 1년 동안 시니어(12학년) 시절을 보내면서 얼마만큼의 돈을 썼는지를 상세하게 보도했다.

▲ 졸업식 가운과 모자 : 18달러

▲ 기념 반지 : 380달러
올리비아 콰 - "시니어 시절을 기억하고 싶어서 샀다. 값이 꽤 나가지만 반지에 박힌 파란 보석이 마음에 들었다. 파란색은 내 탄생석이기도 하고 우리 학교 상징색이기도 하니까."

▲ 졸업 사진 : 500달러
스튜얼 수랏 - "지갑 크기의 사진만 사는 데도 64달러 들었다."

▲ AP(고등학교에서 미리 수강하는 대학 학과목) 시험
에릭 리 - "AP 물리, AP 미적분, AP 중국어, 이렇게 세 과목을 듣는 데 261달러 들었다. 내가 돈을 벌고 있지 않아서 부모님이 다 내셨다."

▲ 졸업 여행 : 75달러
제시 루블리 - "좀 비싼 것 같지만 사실은 최근에 오른 기름 값 때문이다. 그래도 단체로 가니까 싼 편이다."

▲ 또래 여행 : 300달러
낸 터너 - "친구들과 해수욕장에 가기로 했다. 몹시 흥분된다. 집을 떠나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한 주를 보낸다니 환상적이다. 일주일 방값과 보증금, 식료품비를 사람 수로 나누고 보니 총 300달러였다. 기름 값을 줄이기 위해 차는 세 대만 가져갈 것이다."

▲ 대학 전형료
매러벨 카스타네다 - "여섯 군데 대학에 원서를 냈는데 250달러 정도 들었다. 대학 전형료는 평균 30달러에서 60달러다. 이번에 내가 가게 되는 VT(버지니아 공과대학) 지원비는 30달러였다."

 이제 시니어가 되는 딸아이도 미리 졸업 사진을 찍었는데 그 비용이 만만찮다.
이제 시니어가 되는 딸아이도 미리 졸업 사진을 찍었는데 그 비용이 만만찮다. ⓒ 한나영
▲ 시니어 티셔츠 : 10달러

▲ 프롬(졸업 파티) : 610달러
케이티 우드 - "프롬에 가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 드레스가 500달러였는데 잡지 <틴 보그>를 통해 주문했다. 조금 부담이 되긴 했지만 2년 동안 간절히 원해온 드레스였기에 돈을 들였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페디큐어와 액세서리, 구두를 사는 데 돈이 들었다.

하지만 외식은 하지 않았다. 대신 각자 음식을 준비해 와서 야외에서 먹었다. 프롬 비용으로 모두 610달러 들었다. 부모님한테 손 벌리지 않고 모두 내가 냈다. 좀 비쌌지만 이건 내 평생에 단 한 번 있는 시니어 프롬이니까!"

▲ 졸업 패키지 : 250달러
미란다 아믹 - "모자, 가운과 졸업식 초청장, 후드 티, '시니어'라고 쓰인 티셔츠 등을 포함한 패키지가 250달러. 사실 패키지를 살 생각은 없었는데 오히려 부모님이 더 원하셨다. 돈은 부모님과 내가 반반씩 냈다. 패키지 가운데 모자와 가운이 최고다. 왜냐하면 내가 졸업한다는 것을 실감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졸업 파티-여행, 기념 반지... 등록금 없는 공립학교에서도 돈 드는 곳 많아

졸업식과 관련성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시니어 생활 동안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도 있다.

▲ 기름 값
카일 뱅스 - "미친 기름 값 때문에 내 차를 가득 채우는 데 보통 52달러가 든다. 매주 평균 기름 값으로 20~30달러를 쓰고 있다. 너무 비싸다. 학교 다닐 때 대부분 카풀을 했는데 이젠 기름 값이 비싸서 재미로 여기저기 다니는 운전은 피하고 있다. 여름방학과 학기 초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기름 값을 댔지만 학기 중에는 부모님이 돈을 내셨다."

▲ 댄스파티
드류 시스 - "할로윈 파티와 가을에 있었던 스패니시 파티를 제외한 댄스파티에 모두 갔다. 졸업 파티인 프롬을 제외하고 65달러 들었다."

▲ 커피
애나 세인아월스 - "지난 고교 4년 동안, 총 624달러 정도를 커피 값으로 썼다. 맥도날드 냉커피를 좋아하는데, 커피를 마시는 건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졸지 않기 위해 마시는 경우도 있다."

▲ 학교에 내는 기타 돈 : 150달러
재시 머린 - "등록비로 많은 돈을 썼다. 대학에 보내는 성적 증명서 10달러, 도서관 연체료, 물리 실험 실습비, 라커비, 졸업사진 값 등등. 학교에 내는 돈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실망스럽다. 이런 비용으로 총 150달러 들었다."

▲ 음식값
하퍼 로렌키 - "반항하고 싶을 때나 수업하기 싫을 때 밖으로 나가서 보통 10달러에서 20달러 하는 점심을 사 먹었다. 가장 많이 썼을 때 20달러 들었다. '미스터 제이스 베이글'이나 '엘차로' 같은 멕시칸 식당에 갔다. 최근에는 친구 미란다 아믹과 함께 피자집 '시로'에 갔다. XL 치즈피자가 8달러 75센트로 싸니까. 지난 한 달 동안 피자 4판을 먹었다."

역시 최고의 졸업 선물은 현금?

이처럼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니어 시절을 마치고 대학이나 사회로 나가는 졸업생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뭘까. 아이팟? 노트북 컴퓨터? 최신 휴대폰? 그런 비싼 거 말고 부담이 덜 되는 작은 졸업 선물로는 현금이 최고?

지난 7일, 브로드웨이 하이스쿨을 졸업한 크리스타 타운젠드는 졸업식이 끝난 뒤 자신의 집에서 졸업 파티를 열었다. 이날 파티에는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뉴저지에서 온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하여 뉴욕에서 온 고모와 고모부. 버지니아 다른 지역에서 온 친척과 친지들 30여 명이 모였다. (고등학교 졸업하는 손녀, 조카를 위해 멀리서 많은 친척들과 손님들이 온 것이 기자에게는 상당히 이례적으로 느껴졌다.)

축하객들은 이날 졸업한 크리스타에게 준비해 온 선물을 건넸고 크리스타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선물을 개봉하고 카드를 읽었다. 그런데 선물 가운데는 현금도 꽤 있었다. 기프트 카드가 아니라 직접 돈을 넣은 현금이. '아, 미국에도 현금 선물이 있구나.'

 크리스타 졸업 파티에 온 친척과 손님들이 졸업 선물을 개봉하고 카드를 읽는 크리스타 주변에 모였다.
크리스타 졸업 파티에 온 친척과 손님들이 졸업 선물을 개봉하고 카드를 읽는 크리스타 주변에 모였다. ⓒ 한나영

학교 신문이 보도한 졸업반 1년 경비 5338달러(약 550만원) 중엔 사실 우리에게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학교생활에 공부만 있는 게 아니고 이처럼 갖가지 파티와 여행도 포함되어 있는 만큼 그 경비는 수월찮게 들어갈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는 다르게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시니어들이 많은 만큼 오른 기름 값까지 감안한다면 이렇게 많은 돈이 들 것이다. 그나저나 미국 학생들은 이런 비용을 대부분 본인의 아르바이트를 통해 부담하고 있는 만큼 미국에서 학생 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졸업 파티에 온 사람들이 아이스크림 디저트를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졸업 파티에 온 사람들이 아이스크림 디저트를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한나영


#졸업식#위풍당당 행진곡#엘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