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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전령사... 광양 매화마을의 활짝핀 매화 봄을 알리는 것은 식물 뿐만이 아닙니다.
▲ 봄의 전령사... 광양 매화마을의 활짝핀 매화 봄을 알리는 것은 식물 뿐만이 아닙니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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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는 단연 '꽃'입니다. 저 먼 남도의 동백의 붉은 기운을 시작으로 하얀색 흩날리는 매화, 아늑한 노란색의 산수유. 그리고 파란하늘과 어울리는 벚꽃까지…. 단지 이러한 꽃들 뿐 아니라 얼었던 대지가 녹으면서 자그마한 생명을 틔우면서 봄은 시작됩니다. 땅에서는 꽃과 나무들의 봄의 전령사 역할을 했다면 하늘에서는 어떤 것들이 전령사 역할을 했을까요?

증도에서 만난 제비 전기줄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 증도에서 만난 제비 전기줄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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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도시사람들에게는 잊혀져버린 바로 제비가 아닌가 합니다. 이제 대도시 뿐 아니라 여느 웬만한 농촌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희귀종이 돼버린 제비. 제비는 오래전부터 강남으로 불리는 남쪽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대표적인 여름 철새 중 하나였습니다. 아마도 참새만큼이나 많았던 새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참새도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제비는 바로 흥부전에 나오는 제비입니다. 박씨를 물고 돌아온 제비, 착한 흥부를 부자로 만들어주고, 악한 놀부를 패가망신케 했던 바로 그 제비는 권선징악의 대표적인 상징물이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적 따뜻한 봄날 바깥에서 들려오는 제비의 조잘거리는 목소리를 들을라치면 마치 반가운 손님이 집으로 찾아온 듯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진흙을 물어다가 처마에 집을 짓기 시작하면 마음 좋은 어르신들은 제비집이 부서질세라 나무로 만든 받침대를 제비집 밑에 대어주시기도 했습니다.

제비가 알을 낳고, 알에서 새끼들이 태어나면 더욱 더 분주해지는 제비들은 연신 먹이를 나르느라 더욱 더 잽싼 날갯짓을 했습니다. 제비가 먹이를 물어오면 잠잠했던 둥지 속에서 노란 부리를 연신 벌리며 제 달라며 아우성치는 제비들을 볼라치면 정말 생명의 신비감에 젖어 들기도 했습니다.

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먹고 훌쩍 커버린 제비는 금세 몸을 불려서 자기 세상인양 날갯짓을 하고 둥지를 나섭니다. 그동안 둥지에 머물렀던 제비들이나 이웃 제비들이 빨랫줄에 나란히 앉아 "지지베베" 하며 재잘재잘 거리는 소리는 그렇게 정겨울 수 없었습니다.

이토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제비의 모습이 깊게 자리 잡고 있지만, 사람들은 각박한 생활 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서서히 지워내고야 말았습니다. 모두 어디로 사라진건, 이제는 저 먼 남쪽지방의 인적 드문 곳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존재가 돼버렸습니다. 급속한 산업발전과 도시화, 그리고 농촌의 생산성 향상 등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익을 위해 제비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그리고 사람도 모르게 희생양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요?

처마에만 집을 짓던 제비들은 날로 늘어가는 성냥갑 모양의 집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주거공간을 잃어갔을 테고, 제비가 물어오는 진흙이나 곤충들은 다량으로 사용된 농약으로 오염된 것들을 물어왔을 테니 어미든 새끼든 간에 치명적인 해를 입었을 게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떳떳하게 잘 살고 있지만, 제비들은 터전을 잃고, 개체수도 현격히 감소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제비는 그렇게 반가울 수 없습니다. 제비를 만나는데서 오는 반가움도 있지만, 그들을 통해 '이곳이 때 묻지 않은 깨끗한 곳이 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4일 전남 신안군 증도에 여행 갔다가 한 마을에서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있는 제비들, 민가 처마 밑에 만들어 놓은 제비집, 그 제비집 속에서 어미가 모이를 가져다주길 기다리는 어린 새끼 제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반가움에 녀석들을 한번 찍어보려고 한동안 고개 빳빳하게 쳐들고 서 있었습니다.

증도에서 만난 제비들 새끼 제비들이 둥지에서 먹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증도에서 만난 제비들 새끼 제비들이 둥지에서 먹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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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증도의 벽돌집 처마에 제비가 집을 지었습니다. 좁은 둥지안에 네 마리의 새끼제비가 머리를 나란히 하고 어미가 먹이를 물어다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망울도 똘망똘망하니 귀엽지요?

증도에서 만난 제비들 먹이를 물고 날아든 어미제비와  일제히 주둥이를 벌린 새끼 제비들
▲ 증도에서 만난 제비들 먹이를 물고 날아든 어미제비와 일제히 주둥이를 벌린 새끼 제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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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새끼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쳐들고 꼭 다문 주둥이를 쫙 펼치는 순간 어디선가 어미 제비가 바람같이 날아들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네 마리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다섯 마리입니다. 아마도 맨 뒤에 있는 녀석은 막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훨씬 커버린 큰 녀석들에 비해 힘에 밀려 아마도 많이 못 얻어먹고 발육이 부진한 것 같습니다.

증도에서 만난 제비들 먹이를 물고온 어미제비를 애타게 불러봅니다.
▲ 증도에서 만난 제비들 먹이를 물고온 어미제비를 애타게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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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왼쪽에 있는 녀석이 크기로 보아선 첫째인것 같습니다. 첫째와 둘째가 어미를 향해 연신 노란 주둥이를 벌립니다. 첫째가 자기 차례가 돌아올 줄 알았나 봅니다. 주둥이를 더 크게 벌립니다. '나 여기 있어요. 밥 주세요'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어미가 왼쪽의 큰 녀석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은 모양입니다.

증도에서 만난 제비들 어미 제비를 향해 더 크게 입을 벌리는 새끼 제비
▲ 증도에서 만난 제비들 어미 제비를 향해 더 크게 입을 벌리는 새끼 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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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왼쪽의 녀석을 조금 확대해 봤습니다. 똘망똘망한 눈빛, 자기 머리만한 주둥이의 모습에서 먹이를 달라는 애절함이 절로 느껴집니다.

증도에서 만난 제비들 결국 먹이는 안쪽에 있는 새끼 제비에게로 갑니다.
▲ 증도에서 만난 제비들 결국 먹이는 안쪽에 있는 새끼 제비에게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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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먹이는 발육이 부족한 어린 새끼들에게 돌아가고, 큰 두 녀석들은 이제 애걸복걸하기 시작합니다. 표정이 더욱 간절해지고 있네요. 저러다 떨어지겠습니다. 몸이 둥지밖으로 반쯤 튀어나왔습니다.

증도에서 만난 제비들 나를 쳐다보는 어미 제비와 계속 먹이를 달라고 입벌리고 있는 새끼 제비
▲ 증도에서 만난 제비들 나를 쳐다보는 어미 제비와 계속 먹이를 달라고 입벌리고 있는 새끼 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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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제비가  뒤통수가 따가웠는지 자꾸 제 쪽을 쳐다봅니다. 제일 큰 첫째 녀석은 이제 절규에 가까운 표정이군요.

증도에서 만난 제비들 어미 제비가 둥지를 떠났습니다.
▲ 증도에서 만난 제비들 어미 제비가 둥지를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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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는 또 다시 먹이를 잡으러 둥지를 박차고 떠났습니다. 떠나가는 어미의 뒷모습을 보고 첫째 녀석은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증도에서 만난 제비들 새끼 제비의 얼굴에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 증도에서 만난 제비들 새끼 제비의 얼굴에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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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시죠? 저 첫째 녀석의 아쉬운 표정. 정말 일품입니다. 어미 제비가 몇 차례를 들락달락해야 자기 차례가 올지 알고는 있을까요?

새끼 제비가 태어나면 3주 이내에 몸집을 10배 이상 불려야 하기 때문에 부모 제비는 하루에 200마리 이상의 벌레를 물어 와야 한다고 합니다. 들판에서 보는 날렵한 제비의 모습은 자신의 날렵함을 과시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새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증도#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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