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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시위현장 7일 저녁과 8일 새벽까지 시위대는 게속됐다. 이날 경찰과 자진 실랑이로 부상자가 발생했고 연행자도 발생했다.
광화문 시위현장7일 저녁과 8일 새벽까지 시위대는 게속됐다. 이날 경찰과 자진 실랑이로 부상자가 발생했고 연행자도 발생했다. ⓒ 김철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시민들을 분노케 한 날이었다. 7일 저녁 촛불집회 및 거리대행진은 이명박 대통령과 불교 종단 지도자들과의 전날 발언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격앙됐다.

 

7일 저녁 8시 30분경 서울광장에서 ‘국민무시, 고시강행, 이명박 정부 심판 범국민대회 촛불집회’를 마친 20여 만명의 참석자들은 어김없이 거리 촛불평화대행진에 나섰다. 이날 거리행진을 시작한 한 시민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이명박 대통령에게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반드시 오늘 저녁은 청와대로 갈 것”이라고 비장각오를 밝혔다.

 

무대 앞과 프라자호텔 쪽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에서는 촛불이 없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촛불을 나눠주는 모습도 보였다. 참석자들은 전날과 같이 을지로->종로 ->광화문->청와대, 서울역 ->서대문->독립문->청와대, 소공동->명동->안국동->청와대 등 3군데 동선을 따라 청와대로 향했다.

 

지나가는 길에 많은 민주시민들이 동참했다. 거리촛불행진을 벌인 시위자들을 향해 지나가는 승용차들도 동참의 뜻에서 경적을 울리는 모습도 목격됐다. 하지만 3군데 다 청와대 진입에 실패해 사직터널과 안국동, 광화문 네거리에서 전경차와 전경들에 막혀 시위가 시작됐다. 밤 10시 20분경부터 이순신 동상을 앞에 두고 광화문에서는 경찰과 시위대 간의 순조롭지 않는 대치가 시작됐다.

 

광화문 네거리는 ‘폭력경찰 물러가라’, ‘평화시위 보장하라’, ‘연행자를 석방하라’, ‘이명박은 나와라’ 등을 외쳤고, 집회에 참석한 한 시민이 가로막고 있는 경찰차에 올라,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자 참석자들은 ‘내려와’ , ‘비폭력’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또 경찰을 향해 ‘차 빼라’ 등의 구호도 빗발쳤다. 경찰의 경고방송도 계속됐다. 경찰과 실랑이를 하면서도 전경들에게 장미꽃을 나눠주는 시민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님을 위한 행진곡’, ‘광야에서’ 등의 민중가요를 부르면서 결의를 다졌다. 밤  11시경부터 20~30분 동안 무슨 이유인지 5호선 지하철이 광화문역을 무정차 통과해 시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밤늦은 시간인데도 엄마와 아빠 손을 잡은 어린 아이,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 대학생, 백발의 노인, 청장년층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위자들은 8일 새벽 0시 10분경 경찰의 경찰차를 밀기 시작하면서 청와대 진입을 시도했다. 새벽 0시 30분경 시위대 간의 시위 방법론을 놓고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노래와 구호를 외치면서 순식간 언쟁은 정리됐다.

 

인터넷언론을 비롯해 지상파방송과 종이신문, 케이블 방송, 블로거 등 기자들의 취재 열기도 대단했다. 8일 0시 40분경 시위 참석자들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서 단결을 과시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연신 외쳤다.

 

마이크를 잡은 한 시민은 안국동과 사직터널 쪽도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정보를 전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찰과 경렬한 몸싸움이 계속됐다. 부상자도 속출했다. 이렇게 계속 시간은 흘러갔다.

 

5일 시작된 72시간 촛불릴레이 시위가 8일 아침 경찰의 강제 해산이 시작됐다. 시위대는 스크럼을 짜는 등 강력히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시간 연행자도 속출했고, 부상자도 속출했다. 강제 해산 후 끝나는 듯 했던 시위는 파이낸스 건물 앞에 다시 시위대가 모이면서 광우병쇠고기 수입 반대, 재협상 등의 자유 발언을 이어갔다.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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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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