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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여러 군데에 입사지원서를 내 보았지만 전부 쓴잔을 마셨다. 다른 이들이 이야기하는 스펙을 맞추기 위해서 자격증도 따고, 토익공부도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지금처럼 집에 있으면서 보고 싶은 책들을 맘껏 보고, 듣고 싶은 음악을 맘껏 듣고, 쓰고 싶은 글을 맘껏 쓰는 것이지만, 25세의 백조에게 이것은 한낱 꿈일 뿐이었다.

 

부모님의 따가운 눈총에 몇 날 며칠 밤을 울면서 지새우고, 취업을 하거나 대학원을 다니면서 자신의 길을 찾은 친구들 앞에서 내가 작아보이는 게 너무 싫어서 약속도 거의 잡지 않고 집에만 있다 보니 어느새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몸은 운동을 하면 회복된다고 하지만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 번 지치면 끝도 없이 지치는 게 마음이었다.

 

<하악하악>,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한 권의 책

 

그런 내 눈에 책 한 권이 들어왔다. <하악하악>. '이외수의 생존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단어인 '하악하악'을 가지고 도대체 무슨 소설을 썼는가 궁금하기도 했고, 독특하다고 소문이 난 그가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했을지 의문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책을 펼친 나는 두 가지 사실에 뒤통수를 맞았다. 하나는 이 책 안의 내용이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소설가라고 해서 당연히 소설책을 낼 것이라는 내 생각은 무참히 깨졌다. 또 하나는 소설은 아니라고 쳐도, 260개의 짧은 글들과 65가지의 물고기 그림(물총새, 쏘가리뼈 포함)이 덩그러니 책 한 장 한 장을 차지하고 있는 이 책의 주제가 도저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들은 책을 읽으면서 바로 사라져버렸다.

 

짧으면 한 줄, 길면 대여섯 줄 정도 되는 글 안에는 정말 여러 가지 말들이 담겨 있다. 사람들의 외로운 모습들을 그리는 '외롭지 시리즈', 인간의 추한 모습을 그리는 '인간반성' 등의 소제목이 붙은 글들도 있고, 소제목은 없어도 감성마을에서의 외로움, 지난날의 힘들었던 시간들, 악플러들에 대한 경고 등등 하나의 주제로는 도저히 묶일 수 없는 글들이 책 전체를 채우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도대체 '하악하악'이라는 이 책 제목이 뭘 의미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몇 번 글을 읽으면서, '하악하악'이 인터넷 유행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지만 그래도 팔팔하게 살고 싶다는 느낌의 숨소리,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숨소리, 책 속에 팔딱팔딱 살아 움직일 듯한 모습으로 함께 그려져 있는 물고기들의 숨소리, 그것이 바로 '하악하악'이었다.

 

'포기하지 말라. 절망의 이빨에 심장을 물어뜯겨본 자만이 희망을 사냥할 자격이 있다.'

- 73쪽, 62번 글

 

살기 어려운 지금, 숨 한 번 크게 쉬어 보자

 

요즘은 정말 사는 게 쉽지 않다. 아침에 눈을 뜨기가 겁이 날 때도 있다. 광우병 쇠고기, 의료보험 민영화, 수도 민영화, 대운화, 치솟는 기름값, 물가 폭등, 취업난 등등…. 신문과 방송에서 좋은 이야기를 듣기가 쉽지 않은 게 요즘이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 살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 이 책을 읽으며 잠깐이라도 숨 한 번 크게 쉬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을 읽으며 잠깐이라도 책 속 감성마을에서 저자와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울고 웃는 건 어떨까.

 

마지막으로, 책에 현 시대에 딱 맞는 글이 하나 있어 여기 옮겨본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이 부분이라도 읽고 잠시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손이 두 개다. 오드리 햅번의 말처럼 한 손으로는 자신을 보살피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남을 보살피라는 뜻이다. 그럼 다리가 두 개인 이유는 무엇일까. 한 다리로는 자신을 지탱하고 다른 한 다리로는 나쁜 놈들을 조낸 걷어차주라는 뜻이다. 아놔, 자비심. 나쁜 놈들에게는 때로 발길질도 자비요 축복이다. - 46쪽. 36번 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 'Review Blog - What I Enjoyed(http://blog.yes24.com/existsea)'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하악하악> 이외수 글, 정태련 그림 / 해냄출판사 - 12,800원

* 이외수 홈페이지 http://www.oisoo.co.kr


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 해냄(2008)


태그:#하악하악,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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