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장군의 전설이 깃든 한벽루
김장군의 전설이 깃든 한벽루 ⓒ 이승철

"저 한벽루 참 멋지고 운치 있는 건물이네요."
"그런데, 저 한벽루를 이곳으로 옮겨올 때 전설도 같이 따라왔는지 모르겠네요."

5월 23일, 충주호 상류인 충북 제천시 청풍면에 있는 '청풍문화재단지'를 둘러보다가 한벽루 앞에서 일행들이 하는 말이었다.

전설은 이랬다. 1593년, 선조 임금 때 이곳 청풍에는 왜병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김장군이란 의병장이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밤 김장군은 칼을 손에 잡은 채 잠깐 앉아 잠든 사이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는 백발노인이 나타나 김장군에게 간절한 청을 하는 것이었다.

자신은 이 남한강에서 백년을 살아온 이무기인데 이제 기한이 되어서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강 건너편 바위 동굴에 천년 묵은 지네가 살고 있어서 먼저 용이 되어 승천하려고 방해를 하는 통에 자신이 용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 그 지네를 제거해 달라는 것이었다.

노인의 청을 받고 꿈에서 깨어난 김장군은 꿈에 노인이 일러준 장소인 강가의 한벽루에서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밤이 깊어지자 노인의 말대로 커다란 지네 한 마리가 나타났다. 김장군은 칼을 뽑아 재빠르게 지네를 내리쳤다.

그 순간 천둥과 함께 벼락이라도 내리치는 듯한 엄청난 소리와 함께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김장군도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김장군이 깨어난 것은 이튿날 아침 부하 의병들에 의해서였다.

 배꼽처럼 생긴 호수 건너편의 산봉우리
배꼽처럼 생긴 호수 건너편의 산봉우리 ⓒ 이승철

 호수 주변의 유별난 계단풍경
호수 주변의 유별난 계단풍경 ⓒ 이승철

깨어난 김장군이 의병들과 함께 건너편의 바위동굴을 바라보니 커다란 지네의 꼬리부분이 잠깐 보이다가 사라졌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예의 그 백발노인이 다시 나타났다. 노인은 "장군께서 지네를 물리쳐주어서 이제 나는 용이 되어 승천하게 되어 고맙습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젯밤의 그 지네가 죽지 않고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반드시 앙갚음을 하려 할 것이니 조심하십시오" 하고 당부하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김장군은 이곳에 쳐들어온 왜군들과 싸우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그래서 의병들과 사람들은 김장군의 전사가 천년 묵은 지네의 앙갚음 때문이라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충주 댐으로 호수가 된 남한강 상류의 풍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청풍문화재단지는 5월의 신록 속에 싱그러움이 넘쳐나고 있었다. 청풍명월의 고장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단지는 물론 주변의 풍경도 호수와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벽루는 서기 1317년(고려 충숙왕 4년)에 당시 이곳 청풍현 출신 승려인 '청공'이 왕사(王師)가 되어 현이 군으로 승격된 것을 기념하여 서기 1408년(조선 태종6년)에 청풍군수 정수홍이 세운 누각이다.

단지 안에는 한벽루 외에도 많은 문화재급 유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유명한 누각으로 금남루와 팔영루도 있었다. 옛 고가 4개 동과 보물 2점, 지방 유형문화재 9점, 비지정문화재 42점, 생활유물 1900여점이 전시되어 있는 이 단지는 1983년에 충주 댐으로 수몰되는 지역에서 옮겨온 유적과 유물들을 망월산 자락인 이곳에 복원 전시한 것이다.

 금월봉 거북바위
금월봉 거북바위 ⓒ 이승철

 기묘한 바위봉우리 금월봉
기묘한 바위봉우리 금월봉 ⓒ 이승철

서울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들은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남원주 나들목에서 다시 중앙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남제천 나들목을 빠져나온 차는 금성과 청풍, 수산방향으로 조금 달리자 금월봉 휴게소가 나타났다.

금월봉은 1993년 한 시멘트 회사가 석회석 채취를 하다가 발견된 태생부터가 별난 산이다. 바위 봉우리에 덮여 있던 흙을 모두 걷어내자 지금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모양이 기묘하여 작은 금강산으로도 불리는 봉우리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우와! 저 봉우리 저거 더 작게 줄여서 수반 위에 올려놓고 수석으로 바라보면 정말 멋있겠다."

평소 수석을 좋아하여 수석 수집가이기도 한 일행이 누구보다 더 좋아한다. 금월봉에서 청풍문화재단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굽이굽이 호수를 돌고 돌아 문화재단지 정문 앞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섰다. 입장료는 1인당 3천 원씩이었다. 단지 안에는 충주 댐으로 인하여 수몰되는 지역에 있던 문화재들을 옮겨온 건물과 유물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 유물들을 모아 전시한 전시관도 있었고, 고인돌과 문인석들 그리고 석조여래입상도 보존되어 있었다. 옛 양반가와 일반 주택들도 옮겨다 놓아서 그 시절의 생활상을 엿볼 수도 있었다. 마침 단지 안에는 충주에서 초등학생들 수백 명이 봄 소풍을 왔는지 호기심 어린 눈길로 건물들과 유물들을 살펴보며 선생님의 안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네 죄를 네가 알겠지? 청풍관 풍경
네 죄를 네가 알겠지? 청풍관 풍경 ⓒ 이승철

 소풍 나온 어린이들
소풍 나온 어린이들 ⓒ 이승철

"어험!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겠지!"
"나리! 잘못 했사옵니다. 한 번만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크! 이게 무슨 소린가. 그런데 목소리가 앳된 것이 어린이들이 장난이라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다가가보니 옛 관아인 청풍관 앞이었다.

대청마루에는 근엄한 표정의 관장이 위엄 있게 앉아 있다. 그 앞 양 옆에 시립한 포졸들과 관장 앞에 오랏줄을 드린 죄인 둘이 꿇어 앉아 있었다. 죄인 옆에는 곤장을 치켜든 사령들의 모습도 보인다.

"저 무서운 곤장으로 매 많이 맞기 전에 네 죄를 숨김없이 말 하렸다."
"네! 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선생님의 말씀도 잘 듣지 않고, 부모님께 효도도 하지 못했습니다. 나리 다음부터는 잘할 것이니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헤헤헤…."
"우하하하하!"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래도 소풍 나온 어린이들이 옛 관청 앞에 만들어 세워 놓은 모형을 보며 이런 연출을 하는 것이 여간 재미있고 대견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어느 학교에서 온 누구냐고 묻자 녀석들은 우히히히 웃으며 저쪽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우르르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육각정을 지나 단지 안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망월산성 망월루로 오르는 길에는 소나무 가지가 서로 연결된 연리지가 정다운 모습이다. 호수와 건너편의 풍경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답다. 작은 봉우리를 석축으로 쌓아 두른 곳은 망월산성이었다.

 헛간과 생활도구들
헛간과 생활도구들 ⓒ 이승철

 열린 여닫이문과 툇마루
열린 여닫이문과 툇마루 ⓒ 이승철

"저 호수 건너편에 있는 산봉우리 좀 보세요? 꼭 배꼽처럼 생겼지요?"

그 위에 육각으로 지은 정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정자에 오르자 조망이 일품이다. 호수 건너편 산봉우리는 정말 사람의 배꼽처럼 생겼다. 발아래 호수의 풍경은 물론 옛 건물들과 유물들을 복원해 놓은 언덕과 그 너머로 바라보이는 사장교 공사장까지 시원하게 열려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야? 처음에 들어올 때부터 쿵짝짝 시끄러운 소리가 이곳까지 여전하네. 문화재단지가 이래서야, 이거 어디,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분위기가 영 엉망이잖아?"
"저쪽 후문 쪽 무슨 드라마 촬영장인가 있는 근처에서 들려오는 것 같던데요, 정말 너무 시끄럽지요?"

우리 일행이 시끄럽다고 투정을 하자 정자에서 쉬고 있던 아주머니들 두 사람이 맞장구를 친다. 정말 소음이 대단했다. 소음은 후문이 있는 아래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주로 옛 가요와 민요조의 노래들이었다.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산꼭대기까지 시끄럽게 뒤덮고 있었다.

잠깐 앉아 쉬는 동안 등에 흐르던 땀이 식는다. 높은 지역에 세워 놓은 정자여서 바람결이 여간 시원한 것이 아니었다. 아래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소음만 아니라면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사색하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엄마의 설명을 듣고 있는 어린이들
엄마의 설명을 듣고 있는 어린이들 ⓒ 이승철

바로 아래 선착장에서 떠나는 유람선을 바라보다가 후문 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목에 있는 청풍향교는 문이 굳게 잠긴 채 정적만 감돌고 있었다. 후문을 나오며 단지 직원에게 저 시끄러운 소음 좀 들리지 않게 할 수 없느냐고 물으니 개인 소유의 시설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승철#청풍문화재단지#금월봉#여닫이문#한벽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