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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상추를 씻다가 "어머" 하고 감탄사를 뱉는다. 달팽이 한 마리가 떨어질세라 상추 뒷면을 꼭 붙잡고 있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감탄스러운 것은 냉장고에서 하루를 지냈다는 대견함이다. 그는 자신이 '이팽달'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5월 19일 멀리 경상도에 있는 처가 텃밭에서 출향(出鄕)한 이팽달씨는 새마을호 기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그리고 20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서 발견됐다. 이 후 일주일 동안 한 집에서 같이 생활하던 차, 그의 태생과 거취가 궁금해졌다.

 사과껍질 위에서 인터뷰 중인 이팽달 씨
사과껍질 위에서 인터뷰 중인 이팽달 씨 ⓒ 유성호


이팽달씨에게 물었다. 한국 사람들이 처음 만났을 때 하는 일명 '호구조사'를 한 것이다. 

"이팽달씨는 고향이 어디십니까?"
"에헴. 알면서 왜 묻소. 그러니까 경북 구미시 선산읍 이문동 댁의 처가 텃밭이라오."
"어떻게 서울까지 오시게 됐는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왔소. 언젠가 한 번 오긴 오려고 했는데……."

이팽달씨는 이 부분에서 입맛을 쩝쩝 다시며 혀도 끌끌 차댔다. 혼자 오려고 작심했는데 남의 도움을 받은 것이 내심 못마땅했던 것이다.

"이팽달씨는 본관이 어딥니까?"
"명주 이가외다."

명주 이씨, 즉 명주달팽이라고 밝힌 이팽달씨의 목소리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힘의 이면에는 자부심이 깔려 있었다. 그럴만한 것이 명주 이씨는 우리나라 전역에 살고 있는 대표적인 달팽이이기 때문이다.          

 서울 나들이가 싫지만 않다는 이팽달 씨. 그러나 그는 헤어진 부모와 형제들을 그리워 하고 있었다.
서울 나들이가 싫지만 않다는 이팽달 씨. 그러나 그는 헤어진 부모와 형제들을 그리워 하고 있었다. ⓒ 유성호

안 좋은 답이 나올 것이란 지레짐작으로 그간 서울살이에 대해 물었다. 이팽달씨는 도르르 몸을 말아 껍질로 숨었다. 지긋지긋하단 신체언어로 해석했다. 그러나 이내 몸을 쏙 빼고  눈을 껌뻑이면서 나쁘진 않다고 했다.

이유는 상추만 먹다가 오이, 사과, 양배추 등 다양한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물론 고향처럼 신선한 공기와 친환경 유기농 먹을거리는 아니지만 썩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 나들이가 쉽지 않은데 그 꿈을 빨리 이뤘다는 데 위안을 받는다고 했다. 

여기서 이팽달씨는 식도락가임을 알 수 있었다. 또 원대한 꿈을 가진 달팽이란 것을 알았다. 이팽달씨의 식성은 정평이 나 있다. 각종 농작물을 닥치는 대로 먹기 유명하다. 그가 지나간 자리는 점액이 말라붙어 있어 햇빛에 하얗게 반사되기 때문에 다녀갔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가족에 대해 물었다. 가족 이야기를 꺼내자 이팽달씨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곤 고개를 떨궜다. 동시에 눈물 한 방울이 사과 껍질 위로 떨어졌다.

"우린 암수가 한 몸이니 부모 역시 한 분이오. 한 부모님 밑에서 약 일백형제가 생겨나 가을까지 산다오."

'가을까지'란 말을 할 때 이팽달씨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가을이 오기 전 부모님과 형제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함을 읽을 수 있었다. 이팽달씨는 인터뷰를 더 이상 못하겠다며 몸을 말아 칩거에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는 그의 어깨가 한껏 처져 있었다.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이팽달 씨는 몸을 말아 칩거에 들어갔다.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이팽달 씨는 몸을 말아 칩거에 들어갔다. ⓒ 유성호


이팽달씨의 수구초심을 들은 후 양육권을 가진 우리집 아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팽달씨를 고향으로 돌려보내자고. 아이들은 진짜 외가로 다시 보낼 것이냐고 되물었다. 예서 고향이란 의미는 '자연'이라고 아이들을 이해시켰다. 가까운 산 속 음지에 놓아주자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아이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완강히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여름방학이 자신들이 직접 외가로의 귀향을 돕겠다는 것이다. 그 사이 자신들이 책임지고 키우겠다는 의욕도 보였다.

그러나 아이들의 관심과 돌봄은 그리 오래지 않다는 것을 우린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양육권을 물리적으로 뺏을 경우 야기되는 후폭풍은 '감당이 불감당'이란 것을 잘 알기에 이팽달씨에게 이렇게 전했다.

"이팽달씨, 두 달 정도만 잘 버텨 봅시다. 귀거래사 부르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날이 있을 겁니다."


#명주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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