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명박 대통령이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28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28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서울시장과 대통령 후보 시절, 광주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을 자주 만나 훈수를 받았던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정통성이 '광주 항쟁'인지 '광주 학살'인지 도통 헷갈려 몇 자 적어봅니다.

 

제28회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TV중계를 통해 봤습니다. 참석 여부를 놓고 말이 많던 이명박 대통령 얼굴이 보여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해지는 마음을 달랠 수 없었습니다.

 

기념식은 국민의례에 이어 애국가제창,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및 5·18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 대통령 헌화와 분향, 5·18민주화운동 경과보고, 기념공연에 이어 대통령의 기념사, 기념노래 제창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회 신경진 회장의 경과보고가 끝나고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를 추모하고 나라 발전을 기원하는 기념공연이 있었습니다.

 

광주시립 국악관현악단과 합창단, 인천 오페라 합창단, 광주 시립 무용단의 무용 공연이 있었는데, 정치군인들의 총칼에 희생된 영혼을 달래고, 굴욕적인 쇠고기 협상 반대 시위를 문화제로 승화시키는 민중들에게 용기를 넣어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연 도중 어느 순간에는 시야에서 춤이 사라진 듯도 했는데, 그 순간 폭발하기 직전의 고요를 보았고, 아늑한 민주 성지에 잠들어 있는 5·18 민주열사 영혼들이 공중에서 바라보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땅, 망월동에 28년째 잠들어 있는 민주 열사들이 원하는 세상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대동세상, 즉 민중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완성일 것입니다. 

 

모순투성이인 대통령 기념사

 

이명박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28년 전 오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숨져간 민주 영령들 앞에 온 국민과 함께 고개 숙여 명복을 빕니다"라며 "그 날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시는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께도 충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5·18 유공자와 유가족에게 드리는 위로가 충심이라면, 대통령 후보시절 '일해공원 조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반대의 뜻을 분명하게 밝혔어야 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을 찾아가 훈수를 받으며 조아리지 말았어야 합니다.  

 

이 대통령은 "역사는 지금 우리에게 산업화·민주화를 거쳐 선진화를 이뤄내라고 요구하고 있다"라며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은 나라들의 실패를 거울삼아 선진국의 꿈을 반드시 실현해야 합니다"라고 했는데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10년을 실패로 규정했으면서 어떻게 '선진국 문턱'을 운운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대통령 주장대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가 실패했다면 그런 내용을 삽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미국에서 50만 톤의 쌀을 원조받기로 합의해놓고 "남쪽에서 주면 받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먼저 달라고 손을 내밀지 않겠다"라고 큰소리치고 있는데 이 대통령은 광주에 가서도 '북한이 변하면 앞장서서 도울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참배객을 범죄 용의자 다루듯 했던 경호

 

이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당시 우중에도 유세를 들으며 박수를 보내준 광주 시민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며 2013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 등 광주와 전남 발전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도 행사장 분위기는 꽁꽁 얼어 있더군요.

 

기념식이 끝나고 조금 있으니까 답답하고 우울한 소식만 들렸습니다. 휴일을 맞아 가족끼리 연인끼리 추모하러 오는 시민과 학생들을 범죄 용의자 대하듯 하는 검문 검색과 과잉통제로 논란이 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줘 고맙게 생각하는 광주 시민과 500만 표 이상 차이로 당선시켜준 국민을 취임 이후 처음 만나러 가면서, 경호를 왜 그리도 삼엄하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기념사 첫머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과 중간의 '사랑하는 국민여러분'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으니까요.

 

5·18 기념식장 주변은 물론 광주시 전역에 사상 최대규모의 경찰력을 동원했다는데, 불신을 자초하고 있는 것 같아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닙니다. 표리부동(表裏不同)한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농민과 노동자들의 기습시위를 예상하고 했다고 하지만, 국민과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니만큼 계란 세례를 받더라도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베짱과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참으로 유감입니다.       

 

금속탐지기와 경찰견, 물대포까지 동원하는 등 사상최대의 경찰 인력을 동원하면서 이 대통령이 공항에서 기념식장으로 이동하는 주요도로 길목에 사복경찰을 50m 간격으로 배치했다는 대목에서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호남을 방문했을 때도 철길 주변에 200m 간격으로 경찰과 사복형사들이 잠복근무한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50m 간격으로 배치했다니 유신 시절보다 더한 것 같아 입이 벌어질 따름입니다.

 

DJ 경호와 교통 통제

 

87년 대선 때 대구 유세에서 돌팔매 세례를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2년 전 다시 방문했을 때 동대구역에서 숙소까지 누가 어떻게 경호했고 교통 통제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아봅니다.

 

김 전 대통령은 2006년 3월 20일 '영남대'와 '평화통일대구 시민연대' 초청으로 대구를 방문해서 경호나 교통통제 요청을 하지 않고, 동대구역에서 숙소인 그랜드호텔까지 일반 승용차들 틈에 끼어 이동했습니다.  

 

그해 6월에 북한 방문이 예정돼 있었고, 정치판은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혼탁해 있었으며, '안티DJ' 세력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동교동 자택 앞에서 '방북 반대' 시위를 할 때인데도 경호나 교통 통제를 요청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몇 차례 초청 끝에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혹시 '돌발상황'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동대구역에 도착한 김 전 대통령은 대구시민들에게 환영을 받았고 손을 흔들어 답례했습니다.   

 

국민과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국민을 불신하고 두려워하면 국정을 올바르게 이끌어나갈 수 없다고 생각되기에 작은 것 하나라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차원에서 김 전 대통령의 예를 들어봤습니다. 

 

이 대통령을 맞이하는 광주 하늘이 잔뜩 찌푸리거나 눈물로 맞이할 것 같아 사진이나 찍으러 가려면 청소년들을 거리의 전사로 만든 쇠고기 조공협상을 반성하며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현실로 나타나다니,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닙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필통(http://blog.hani.co.kr/chongan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5.18기념행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