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수입은 민간업자 몫, 먹고 안 먹고는 소비자 몫, 유해성과 검역 후속절차는 범국민기구 몫이라면 대한민국은 '무정부 국가'란 말인가?" - 차영 통합민주당 대변인

 

청와대가 한미 쇠고기 협상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월령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문제는 민간업자들이 안 하면 그만"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 야당에서 나온 반응이다. '광우병 논란'이 확산되자, 협상을 체결한 정권이 민간 수입업체에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 문제에 대해서도 "충분한 여론 수렴을 거쳐 1년 뒤에 공사를 하겠다"고 했다가, 논란이 일자 "민간자본으로 추진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정부 스케줄은 없다"고 말을 뒤집은 바 있다.

 

'사고'는 정부가 치고, 그에 따른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 정부는 뒤로 빠진 채 민간을 앞세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운하, 100% 민간 건설사의 몫"

 

지난 1월 이명박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 "민간자본으로 추진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정부 스케줄은 없다"고 말했다. "100% 민자사업이기 때문에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일은 없다"는 게 이 대통령의 주장이다.

 

이 대통령은 1년 후 착공 여부에 관한 질문에도 "현재 정부가 갖고 있는 스케줄은 없다"며 "민자사업이기 때문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당장 나올지, 3년 후에 나올지 알 수 없고, 국내외 투자자들이 검토해 제안이 나오면 그 때 정부가 사업타당성이나, 환경영향평가 등을 완벽하게 만들어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인수위 당시 장석효 한반도대운하TF팀장도 "이제 공은 민자 건설사로 넘어갔다, 그 쪽에 물어봐라, 경부운하는 민자로 만든다"며 "투자금도 모두 민간자본이기 때문에 당연히 경제적 타당성도 민자 건설사가 계산할 몫"이라고 주장했다. "운하가 수익이 난다고 판단하면 그 곳에서 사업제안서가 들어올 것이다, 누가 밑지고 장사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결국 대운하 사업을 추진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선택 권한을 모두 민자 건설사 컨소시엄으로 넘긴 형국이 됐다.

 

이에 대해 야당에서는 "민간사업임을 강조하며 본질을 회피하고 의견수렴의 형식적 절차를 강조하면서 국민의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민간사업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은 속임수에 불과할 뿐 개발이익만을 쫓는 기업을 방패삼아서 대운하를 밀어붙이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야당이 공개한 '한반도 대운하 비밀추진계획서'에 따르면 1조6000억원의 토지보상비와 10년간 인프라 구축비 등 무려 291조원의 돈이 필요하다. 반면 이명박 정부측은 공식적으로 16조원 정도가 건설비로 소요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대운하 건설에 따른 모든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민간기업에게 떠넘겨질 수밖에 없다.

 

현대건설·대우건설·삼성물산 건설부문·GS건설·대림산업 등 건설 도급순위 1~5위 건설사가 모여 만든 '한반도운하 공동협의체 TF'는 서울 강남 모처에 사무실을 두고 일주일에 2~3회씩 모여 의견을 조율하고 사업제안서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수익성이다.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사조직이자 한반도대운하의 얼개를 짠 한반도운하연구회(회장 장석효)의 계산대로라면 골재 판매액, 운하변 공간개선 수익, 용수공급 수익 등 여타 수익을 합쳐도 건설비용의 70%인 11조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향후 바지선의 갑문 통과료와 컨테이너 선적비용 수익이 예상되지만, 이 마저도 정확한 통계치를 내기 어려워 민자 컨소시엄의 자금난은 불가피하다.

 

결국 건설사들은 부족한 돈을 금융권에서 차입하거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운하 주변에 '기업형 도시'를 개발하고 그 개발권을 보장받는 등의 이권과 특혜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한반도 대운하 대책 특별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민간 건설사에 개발권 등의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마치 민간주도 사업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며 대운하 건설사업의 전면 백지화를 거듭 촉구했다.

 

"광우병도 민간 수입업체의 몫?"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이 최종 타결된 것은 지난달 18일. 뼈를 포함한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도 수입이 가능하도록 개정된 고시는 입안예고 뒤 20일 후인 오는 15일이면 최종고시가 이뤄진다.

 

이를 앞두고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연일 수만명이 참석하고, 야당의 재협상 촉구가 빗발치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월령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수입하느냐 마느냐는 민간 수입업자들이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광우병 우려를 민간 차원에서 해소할 수 있다는 안이한 시각을 여과없이 드러낸 셈이다. 민간 건설사들에게 대운하 책임을 떠넘긴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이 관계자는 "수입업자들 차원에서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는 수입하지 않겠다는 입장 표명이 있을 것으로 안다"며 "지금과 같은 여론 속에서 (민간업자들이) 자율적으로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민동석 농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도 "우리가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를 수입하느냐, 마느냐는 것은 정부가 관여할 수 없고 민간 차원의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방미 중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고기를 사는 입장이니까 맘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되는 것 아니냐, 강제로 공급하는 것도 아니다"면서 소비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또 "도시 근로자들이 질좋은 고기를 값싸게 먹도록 한다는 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부유층에 비해 선택권이 없는 도시 근로자들은 값싼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은 반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물론 민간 수입업체들은 국민들의 거부감을 고려해 광우병 우려가 큰 30개월 이상 소의 수입을 꺼릴 것으로 예상된다. 익명을 요구한 모 수입업체 대표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연령에 상관없이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된다고 해도 30개월 이상 소의 수입 물량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정부 간에 맺은 협약이 있는데, 민간 수입업체들끼리 모여서 30개월 이상 소를 수입하지 않기로 할 수 있겠느냐"며 "그런 논의를 한 적이 없다"고 말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발언을 부정했다.

 

이 대표는 특히 "미국에서 큰 공장은 하루에 4000~5000마리, 작은 공장도 하루에 1000마리 이상 도축한다"며 "도축 시스템 자체가 30개월 이상 소 1~2마리만을 골라낼 수 없기 때문에 30개월 이상 소를 수입하지 않겠다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민간 차원에서 30개월 이상 소를 자발적으로 수입하지 않겠다고 했느냐 여부가 아니라, 또 다시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려는 정부의 태도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7일 논평을 내고 "검역주권과 생명안보를 포기한 쇠고기 협상의 뒷설거지를 민간에게 떠넘겼다"며 "이는 통치권의 포기"라고 성토했다.

 

박 대변인은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 '위험하면 안 먹으면 된다'는 무책임한 발언과 같은 맥락"이라며 "이같은 무책임한 발언 때문에 국민들이 청와대와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고 갈수록 불안과 불만이 증폭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든 문제를 시장경제 논리로 해결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입장이 갈수록 난처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광우병 논란#한반도 대운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