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逆, 거스릴 역

 

한자 역(逆)의 뜻은 '거스르다' '거역하다'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거스르는가. 순리(順理)를 거스른다는 것인데, 순리란 '올바른 이치나 도리'를 뜻한다. 예컨데 채식동물인 소가 풀을 먹는 것이 순리라면, 그런 소에게 고기를 갈아 넣은 사료를 먹인 인간의 행위가 바로 역에 해당한다.

 

인간이 역을 추구하는 것은, 순리대로 갈 때에는 생각지 못하고 얻지도 못할 보다 많은 이익 또는 쾌락을 역발상, 역추진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경우이다. 결국 역이란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소 사육장에서 사료에 고기를 넣을 때에는 이를 통해 소가 보다 빨리 자라고 보다 체중이 불어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대운하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 정부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을 졸속으로 마무리 지으려 하고, 의료보험민영화를 추진하려 드는 등의 민의를 거스르면서 진행하고 있는 정책들도 역의 또 다른 예라 할 수 있다. 정부가 이러한 정책을 낸 배경에는 외교적으로는 미국과의 관계를 보다 긴밀히 하고, 경제적으로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사회적으로는 보다 많은 고용을 유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자리한다.

 

역의 마인드, 이명박

 

이명박 대통령의 별명이 불도저이다. 불도저는 순리에 따라 그대로 있는 것을 갈아엎고 밀어 붙여 변혁을 꾀하는 것으로, 이를 한자로 옮기면 그대로 역에 해당한다. 이러한 역의 마인드로 그는 사업에서 큰 성취를 이루어냈다. 현재 그는 역의 마인드를 정치에 접목해 국가를 융성케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그가 존경하는 외국 정상은 두바이의 모하메드 국왕이다. 모하메드 국왕은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섬을 만드는 등 나라 전체에 거대한 토목사업을 벌이고 있는 개발 지향의 지도자이다. 역시 역의 마인드를 지닌 사람이다.

 

역발상이라고 하는 것이 때로는 상당한 유익이 될 수 있다. 군사적으로 상대의 강함을 피하고 약함을 쳐 큰 승리를 이루어 낸 경우들, 블루 오션을 개척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은 경우, 또 여러가지 발명과 기술의 진보 등이 고정관념을 거스르는 역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러한 역이라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세상에 속한,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에 명과 암이 있듯 역이라는 것에도 어두운 면이 있다.

 

역의 함정

 

전국시대 법가로 유명한 한비(韓非)가 그의 저술 <설난(說難)>에서 이르기를

 

"용이라는 동물은 길들이면 사람이 탈 수 있을 정도로 순하다. 그런데 목줄기 밑에 직경 한 자나 되는 비늘이 거꾸로 나있어서, 이것을 건드리면 당장 물려 죽게 된다."

 

라고 하였다. 여기서 한비는 군왕제후가 군림하던 시기에 군주를 거스르지 않고 진언하는 어려움을 말하며 이같은 이야기를 적고 있는데, 한비의 비유를 좀 더 확대 적용해 보면 세상 만사가 그와 같음을 알 수 있다.

 

소를 좀 더 빨리, 좀 더 체중이 많이 나가게끔 기르기 위해 소에게 줄 사료에 고기를 섞는 행위는 순리를 거스른 역으로, 말하자면 역린을 건드린 것과 같다. 그 결과가 광우병이라는 재앙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국민은 지난 대선에서 도덕적으로나 경제적 마인드와 같은 부분에서 많은 문제점과 위태로운 부분들을 갖고 있음이 드러났고, 한반도 대운하와 같은 무모한 정책을 내세웠던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순리대로라면 그와 같이 문제가 있는 사람을 뽑아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한국민은 경제가 나아지고 살림 살이가 좀 더 나아지겠거니 하는 막연한 기대로 순리를 거스르고 문제가 있는 사람을 뽑았다. 그 결과가 오늘날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또 예를 들어보자. 전국 시대 상앙의 변법과 20세기 스탈린의 철권통치는 서로 대단히 유사한 면이 있다. 둘 다 오로지 국가와 효율만을 강조하고 이러한 목적에 복무하기 위해 개인이나 인간의 여러 자연스러운 본성들을 억눌렀다. 이러한 통치에 따르지 않거나 정책을 비판하는 자들은 즉시 처단됐다. 사람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했으며, 처벌은 개인에서 그치지 않고 연좌제에 따라 가족이나 집단 전체에 가해졌다.

 

극히 비인간적인 공포정치로 진나라와 소련은 단기간에 급격한 국력 신장을 이루었고, 그 국력을 바탕으로 나라의 영토를 크게 늘렸으며, 열국 가운데 위세를 떨치게 된다. 그러나 국가가 그와 같이 부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나라의 국민은 늘 고통에 신음했고, 처벌에 대한 두려움에 떨어야 했으며, 서로에 대한 감시와 고발, 피의 숙청이 계속됐다.

 

상앙과 스탈린은 부국강병이라는 목적 아래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거스르는 역의 방법을 택했고, 그 결과 진나라와 소련은 지상의 지옥이 되었다.

 

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도 자기 욕망과 천하제패라는 목적을 위해 무수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반론을 차단하는 등 철저히 역의 마인드로 국정을 도모한 인물이었다. 그는 전국시대를 끝내고 천하통일을 이루어 내지만, 역의 마인드와 역의 방법들로 통일된 진나라는 11년 만에 망하게 되고, 시황제의 일족은 멸문의 화를 입는다.

 

역이라는 것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그것, 그 욕망은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순리에 순응하는 창조적 역이 되어야

 

순리에 대한 역을 논리학 기호로 표기하면 "~순리"가 된다. ~는 부정 기호로, "~순리"는 순리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좋은 결과를 이루어 내는 역발상은 사실 순리에 대한 역("~순리")이기 보다 역("~순리")에 대한 역("~~순리")인 경우가 많다. "~~순리"는 곧 "순리"라는 의미이다.

 

예컨데 전쟁터에서 많은 지도자들이 힘으로 힘에 맞서고 강함으로 강함에 맞서곤 했다.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서부전선의 지휘관들을 비롯해, 게티스버그에서의 리 장군 등 이런 경우는 무수히 많다. 이들은 강력하며 준비된 적을 향해 군대를 전진시켰다.

 

이들이 그와 같은 방법을 택했던 것은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힘에 힘으로 맞서고 강함에 강함으로 맞서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순리로 여겼으나, 실제로 그런 고정관념은 순리를 거스르는 역이었다. 역의 방식으로 억지로 밀어붙인 결과는 참담했다. 막대한 희생을 초래했고, 그러고도 작전은 곧잘 실패로 돌아가곤 했다.

 

순리대로라면 부드러움(융통성)으로 강직함(경직)에 맞서야 하고, 강한 부분을 피해 약한 부분을 쳐야 한다. 이와 같은 전장에서의 순리를 가르치는 것이 바로 '손자병법'과 바실 리델하트의 '전략론'이다.

 

블루오션 전략도 마찬가지이다. 블루오션 전략은 모방, 경쟁 등의 방식으로 물고 물리는 싸움을 벌이는 것이 경영의 순리라 여기던 고정관념이야말로 실은 순리를 거스르는 역이라고 본다. 경영의 순리는 창의력과 아이디어로 아직 선발주자도 경쟁도 없는 새로운 사업, 새로운 시장, 새로운 상품을 개척하고 개발하는 것이라는 게 블루오션 전략의 핵심이다.

 

역을 순리로 잘못 아는 고정관념에 매여 순리를 거스르던 데서 나와, 그 고정관념을 깨고 순리에 순응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고정관념에 대한 역, 순리에 순응하는 창조적 역이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역이다.

 

선택 가능한 대안은 무수히 많아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극단적인 양자택일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을까? 아니다. 분노와 복수라는 감정과 욕망을 내려놓고 수도자가 되는 수도 있었고, 다른 나라로 떠나는 방법도 있었다. 이와 같이 실제로는 무수한 대안이 있음에도 햄릿은 극단적인 양자택일만을 가정하고 거기에 자신과 자기 운명을 맞추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모습이 현정부에서도 발견된다.

오늘날 국제정치를 주도하는 미국과 가까워지는 것은 그 자체로는 순리에 맞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도 그것이 순리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쇠고기 협상을 그들 입맛에 맞게 맞춰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미국과 친밀해야 한다는 순리에 순응하기 위해 쇠고기 협상에서 미국에 양보해야만 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친밀함과 협상은 별개다. 더군다나 국민의 안전, 생명이 달린 문제를 졸속으로 처리할 이유는 전혀 없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정직하게 국민의 권익을 지켜내는 것이 순리이다. 이때 협상에서 순리대로 행하는 것이야말로 장기적으로 미국과 친밀하고도 건전한 동반자 관계를 이루는 데 기여한다. 반대로 협상에서 역을 택하게 되면 미국과의 관계에도 역 즉 거스름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민의 행정부이다. 이명박은 한국민이 선출한 한국민의 대통령이다. 이들에게는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고, 국민의 권익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순리가 된다.

 

미국과의 밀접한 관계도 순리이고, 국민의 안전과 안심하고 생활할 권리를 지키는 것도 순리이다. 주한미군을 예로 들어보면 이는 미국과의 밀접한 관계라는 순리, 국민의 안전과 안심하고 생활할 권리라는 순리 모두에 부합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만일 그 두가지 순리가 공존할 수가 없고, 서로 충돌하는 사안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에 정부는 어느쪽을 우선시 해야 할지를(우선순위의 문제) 명확하게 알고, 우선되는 부분을 먼저 지켜야 한다.

 

바로 이번 쇠고기 협상 문제가 그러한 경우인데, 이 경우 행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시해야만 하고 그와 같이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들은 한국민의 행정부이며, 이 나라 국민에 복무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미 쇠고기 협상에서 국민의 안전을 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당연한 것을 취하는 것을 부당하다 할 수는 없으므로 미국도 여기에 대해서는 불만을 갖을 수 없다. 나아가 미국에게는 안보적으로 보다 긴밀한 관계를 맺는 등의 다른 방법을 통해 얼마든 관계의 긴밀함을 추구할 수 있다. 쇠고기 협상에서 간과 쓸개를 모두 내어주는 방법이 아니더라도 미국과의 밀접한 관계를 추구할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순리를 거스르는 역으로 순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모순

 

오늘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대미 쇠고기 협상에 대한 태도는 한마디로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험으로 내모는 국민에 대한 역으로 미국과의 친밀한 관계라는 순리를 추구하고자 한다는 것인데. 그런데 미국과의 친밀한 관계라는 것이 왜 필요한가?

 

결국은 국민의 안전과 권익을 위한 것이다. 초강대국 미국과 견고한 관계맺음을 통해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의 안전과 미국과의 관계 중 보다 우선이고 보다 큰 것은 국민의 안전이며, 미국과의 관계는 국민의 안전에 복무하는 것으로, 그 두가지는 서로 주종관계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행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권익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국민의 안전을 버리면서까지 외교적 실리를 추구하려 든다 것은 정말이지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 혹 이명박 정부는 자신이 누구이며 누구에게 복무해야 하는지를 잊은 것은 아닌가. 자신이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해야 하는지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국민을 위험 앞에 내모는 쇠고기 협상으로 민심을 거스르며 미국과의 관계를 추구할 경우, 민심은 현정부와 미국을 향해 강한 반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 결과 현정부는 행정부의 힘이 가장 강력해야 할 시점인 신정부 초기에 이미 국민의 지지를 잃을 것이며, 이는 곧 행정부가 힘을 상실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므로 이후 정책추진하는 데 있어 커다란 어려움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정부가 쇠고기 협상 문제로 공연히 국민에게 반미감정을 심고 이를 부추기는 것이 한미관계에 득이 될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협상에서 필요 이상의 양보를 할 경우, 미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 한국은 '우스꽝스러운' 협상 대상이라는 인식을 심게 된다.

 

이는 향후 교역과 관련해 양자간에 어떤 쟁점을 두고 협상을 벌일 때마다 상대국이 불합리한 요구를 하고 이를 관철하려 들게끔 만드는 하나의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야 말로 바람직하고 건전한 한미 동반자 관계를 깨고, 나라를 어려움으로 몰아넣는 역선택임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기억과 망각이라고 하는 갈림길이 현정부 앞에 놓여있다. 이 갈림길에서 국민이 살고 나라가 살고 이명박 행정부가 살 길은 하나다.

 

나라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행정부의 힘도 국민의 지지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정부는 국민을 지키고 그 생명과 안전을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며 그것이 본연의 의무이고 책임임을 기억하는 것. 기억하고 그리고 순리를 따르는 것. 그것뿐이다.


태그:#순리, #국민, #이명박, #정부,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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