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외국인 100만 명의 시대. 외국인 노동자 70만 명의 시대. 그리고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져 언제 어디에서 또다시 ‘국가적 위기’가 불어 닥칠지도 모르는 한반도의 남쪽. 그러나 급격한 포스트모더니즘(나는 이 어휘를 후기모더니즘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해체주의’로 해독한다)의 팽창으로, 대한민국은 지금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에 휩싸여있다.

 

바로 이러한 때, 서울 한복판에서 중국대학생들의 난동이 벌어졌다. 정말 아찔하고, 앞날이 심히 걱정되는 개탄스러운 사건이 그들 대학생들로서는 아주 기세등등하게, 인해전술(?)로 저질러진 것이다.

  올림픽 성화봉송에 반대하는, 티베트 자유와 평화를 외치는 소수의 한국인 시위자들을 향해 다수의 중국인 대학생들이 폭력을 휘둘렀다. 마치 대장정에 나선 붉은 군대처럼 ‘오성기’를 휘두르며 돌맹이, 각목, 파이프, 쇠절단기로 오늘날 중국의 위대함(?)을 자랑했다.

 

  중국의 이러한 국가주의는 더 멀리 올라갈 필요도 없다. 대장정을 끝낸 마오쩌뚱(모택동)이 1949년 현대중국을 건설한 이후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통치에 만전(?)을 기한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거대 중국의 지도자 마오의 이 유화정책의 뒤에는, 그들의 ‘문화혁명’ 당시에서 짚어볼 수 있듯이 중국 내 소수민족을 압살하는 대목도 많았음을 또한 잊어서는 안 될 대목이다.

 

문화혁명 당시 특히 중국의 동북삼성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이 상당수 희생되었다는 것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개방 이후, 주변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무뢰한 행동은 세계평화를 갈망하는 지구상의 수많은 양심들을 걱정스럽게 만든다. 한반도를 겨냥하여 ‘동북공정’을 들고 나온 것부터가 심상치 않은 대목 중의 하나이다.

 

  아무튼 이번 올림픽성화봉송에서 비롯된 대한민국 거주 중국인 유학생들의 무식과 무지와 배짱과 폭력사건은 그들의 ‘대국주의’를 여지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 사건에 불과하다. ‘노동자계층’도 아니고 이성을 중시여기는 그 나라의 ‘지식계층’에 속한다는 학생들이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유린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중국인 유학생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과 중국 두 나라의 앞날을 함께 걱정하고 함께 우호를 증진케 하는 ‘공식적인 사과’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물론 가해 학생들을 대거 서울로 불러들인 중국 당국에도 일정 부문 책임이 있음을 묵인할 수 없다.

 정작,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부터다. 나는 한국의 신문방송, 인터넷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들이 민족주의와 쇼비니즘 혹은 국가파시즘, 국가주의를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걱정스럽다.

 

먼저 민족주의를 말하면 공격적 민족주의와 방어적 민족주의가 있다. 공격적 민족주의(쇼비니즘 혹은 국가파시즘)는 제2차 세계대전(자본주의를 확대재생산한 전쟁)을 발발케 한 장본인 중의 한 사람인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를 떠올리면 된다. 반대로 침공을 받았을 때 여기에 대적한 폴란드 국민들이 바로 방어적 민족주의를 대변한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천황주의’를 ‘일본민족주의’로 한국의 언론인들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틀린 말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천황주의는 일본민족주의(Japanese Nationalism)가 아니라 일본국가주의(Japanese Stateism)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일제강점기와 태평양전쟁 당시만을 떠올려보아도 ‘천황=국가’ 이것은 다름 아닌 공격적 국가주의다. 그래서 일본의 경우 민족주의를 가져다 붙이는 복합명사 ‘일본민족주의’가 틀린 말이고 또한 국가통치체제 안에서 소수민족을 크게 인정하지 않는(?) 중국 역시도 중화민족주의 혹은 중국민족주의가 아니라 ‘중국국가주의(Chinese Stateism'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도 마찬가지로 아메리카 국가주의(America Stateism)로 풀이하고 들여다봤을 때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엄격히 말해서 21세기는 거대강국의 국가주의와 제3세계권의 민족주의의 대결에서 비롯한 불행한 사건들이 지구촌 도처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리즘이라는 초국가주의(사실은 미국국가주의)로 세계자본시장의 목울대를 잡고 있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일정한 유통과정을 받지 않고 세계시장의 상거래질서를 교란시키며  대량생산(mass-production) 저가 품목을 홍수처럼 쏟아내는 중국의 ‘신종자본주의’는 한국 같은 나라에는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세계는 거대강국의 국가주의와 약소국가의 민족주의 간의 대결이 벌어지는 장이 되었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15개 나라들도 러시아의 모스크바 정권과 일련의 치열한 생존싸움 혹은 전쟁을 하고 있다.

 이번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올림픽 성황봉송 사태’는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작은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또 어떠한 ‘큰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그 어떤 불운한 예감마저 드는 것이 어찌 이 글을 쓰는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우리의 젊은이들이 맹목적으로 세계주의의 노예가 되지 말고 스스로 자신의 살과 배꼽을 만지면서 현실은 물론 앞날을 내다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격적 민족주의, 공격적 국가주의 앞에서 적어도 우리의 경우 ‘방어적 민족주의’를 다시 추슬러서 이 땅을 안전하게 다져나가야 할 것이라고 감히 목소리를 높여본다.

 

단순한 국수주의(쇼비니즘)가 아닌 세계평화와 안녕과 행복에 기여하는 우리민족만의 정체성, 우리민족만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배양시키는 일이야말로 바로 지구촌 여러 나라의 앞날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덧붙이는 글 | 김준태/1948년 생. 시인이며 현재 조선대 인문대 초빙교수. 


태그:#국제문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