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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종사
 수종사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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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종사에 오르는 길은 잘 포장이 되어 있긴 한데 무척이나 가파릅니다. 걸어 올라가다가 멈춰 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경사가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어쩐지 숨이 가쁘더라니,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지요. 그런 길을 2㎞ 남짓 올라가야 수종사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가파른 그 길을 사람들만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도 올라가더군요. 마른 먼지를 풀썩이며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자동차들이 반갑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마른 먼지를 마시면서 걸어야 했으니까요. 해서 중간에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역시나 콘크리트길보다 흙길이 훨씬 부드럽고 걷기에 편안했습니다. 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면서 이따금 부는 바람에 땀을 식히니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20일, '인도행' 회원들을 따라 진중삼거리(남양주시)에서 수종사를 거쳐 두물머리까지 걸었습니다. '인도행'은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을 줄인 말로 도보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번 도보여행에는 걷기 외에도 한 가지가 더 덧붙여졌습니다. 바로 수종사 삼정헌에서 차 마시기입니다. 삼정헌의 차 맛이 특별하다지만 차 맛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차 맛이 거기서 거기지, 하는 분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삼정헌에 일단 들어가 다탁 앞에 앉는다면 사람들이 삼정헌을 찾는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탁 트인 유리창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한강의 멋진 풍경은 순간적으로 말을 잊게 하니까요. 신선놀음이 따로 없습니다.

수종사 삼정헌으로 차 마시러 갑니다

수종사를 향해 출발.
 수종사를 향해 출발.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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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도보여행을 시작합니다. 출발지는 덕소역입니다. 용산에서 팔당까지 이어진 중앙선 전철은 봄나들이를 편하게 해주네요. 10시 30분에 덕소역 앞에서 8번 버스를 타고 20분 남짓 달려 진중삼거리에서 내렸습니다. 수종사가 목적지라면 수종사 입구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 되지만 도보여행이 목적인지라 미리 내린 것이지요. 버스에서 내리면 남양주종합촬영소 표지판이 보입니다. 진중1리 표지석도 보이구요.

갓길이 없는 2차선 도로 위를 걸어갑니다. 춘천 방향입니다. 교통표지판을 길잡이 삼아 가면 됩니다. 길옆에는 들꽃들이 무더기로 피어있고, 자동차들이 도로 위를 쌩쌩 달립니다. 자동차가 달릴 길은 있는데 걷는 사람들을 위한 길이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조금 걷다보니 한창 공사 중인 다리가 보입니다. 도로는 늘 쉴 새 없이 만들어지고 놓여집니다.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고, 강 위에는 다리를 놓습니다. 그런데도 속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늘 자동차를 위한 도로가 모자란다고 아우성이지요. 기름값이 올라도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수는 줄지 않습니다.

조안면 체육공원으로 들어섭니다. 공원을 조성한 지 얼마 안 된 듯 합니다. 너른 부지 한 쪽에 새로 지은 복지회관 건물이 있고, 옮겨 심은 작은 나무들은 길 양 옆에 늘어서 있습니다. 저 나무들이 뿌리를 든든하게 내리고 가지마다 푸른 잎을 풍성하게 달려면 족히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하며 그 길을 지나갑니다.

누군가 길 옆의 웅덩이에서 올챙이 무리를 발견하고 탄성을 지릅니다. 어, 올챙이가 검은색이네. 두꺼비의 올챙이라고 하네요. 몇 사람이 가던 길을 멈추고 올챙이들을 내려다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라더니 올챙이들도 꼬물거리면서 존재를 알리는군요.

장승부부
 장승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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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깎은 장승부부가 하얀 이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서 있습니다. 장승은 적당히 빛 바래보여야 제격인데 새것인 티가 너무 나니 어색해 보이네요.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 썰렁해 뵈기도 합니다.

운길산 수종사 표지판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2㎞만 가면 수종사가 나옵니다. 걷기에 이력이 난 사람들에게는 2Km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닙니다만 수종사의 가파른 오르막길은 그리 만만치 않지요. 그렇다고 미리부터 겁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수종사 가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길

수종사 가는 길에는 유난히 돌미나리 밭과 부추 밭이 많았습니다. 미나리를 다듬고 있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보입니다. 돌미나리를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내놨습니다. 우리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팔기 위한 것이지요. 미나리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고추장에 무치면 맛이 일품입니다.

운길산과 예봉산 등산안내도가 보입니다. 휴일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운길산과 예봉산을 찾는답니다. 팔당역에서 내리면 예봉산에 가기 쉽다네요.

자, 가파른 오르막길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절에 오르는 길은 보통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번갈아 나오기 마련인데 수종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한한 인내를 갖고 올라가야 하는 오르막길뿐입니다.

뽀얀 먼지를 풀썩이며 오르내리는 자동차들을 피해 산길로 접어듭니다. 부드러운 흙길이 반갑습니다. 같은 오르막길이더라도 흙길은 걷는 느낌은 전혀 다릅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천천히 걷습니다. 더운 날이지만 산은 잊지 않고 시원한 바람을 선사해 땀을 식힐 기회를 줍니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저 멀리 한강이 보입니다. 강 뒤로 늘어선 능선들이 강을 품어 안은 것 같습니다.

산 속에 연등이 매달려 있다.
 산 속에 연등이 매달려 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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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따라 갖가지 색깔의 연등들이 매달려 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가볍게 흔들립니다. 그러고 보니 초파일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석가탄신일을 공휴일로만 기억하다가 연등을 보니 느낌이 새롭습니다. 나도, 수종사에 예쁜 연등 하나 달아볼까나.

아, 드디어 수종사입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기와불사 접수를 받는 곳이 나옵니다. 산길을 따라온 덕분에 일주문을 통하지 않고 샛길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절에 왔으니 절 구경은 해야겠지요. 대웅보전에는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사람이 있네요. 오층석탑도 보고, 해태상도 보고, 산신각도 봅니다.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절 구경과 더불어 사람구경도 합니다.

초파일 연등이 산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네

수종사에도 오래 묵은 은행나무가 있답니다. 525년이나 되었다네요. 오래 묵은 나무를 보면 말을 걸고 싶어집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면서 긴 세월동안 그 자리를 지켰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말을 걸어도 나무는 묵묵히 서 있을 따름입니다. 고작 백년도 못 사는 사람들의 아귀다툼을 말없이 보고 들을 뿐 이야기를 전하지는 않습니다. 

둘레가 7m나 되는 은행나무를 작은 돌무더기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돌이 길바닥에 구르면 한낱 돌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들이 모이면 전혀 다른 존재가 됩니다. 돌을 쌓은 사람들의 마음이 돌에 담기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영가천도장'이 보입니다. 문에 검은 그을음이 잔뜩 묻어 있군요. 죽은 자가 남기고 간 미련이 그을음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해봅니다.

절 구경을 다 했으니 이제 삼정헌에서 차를 마셔야겠지요. 삼정헌의 툇마루에 앉아 차를 마실 순서를 기다립니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자리는 금방 납니다. 운이 좋게도 한강이 잘 내려다보이는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삼정헌은 아주 자리를 잘 잡은 것 같습니다. 전망이 끝내줍니다. 구름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삼정헌에서 차를 마시다.
 삼정헌에서 차를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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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정헌에서는 누구나 차를 마실 수 있습니다. 다 아시는 것처럼 찻값은 받지 않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한강의 풍광을 보고 있으려니 일어나고 싶지 않네요. 그래서 차를 마시고 또 마십니다. 차를 마시는 것인지 아름다운 경치를 마시는 것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음 사람을 위해 자리를 비워줘야겠지요.

수종사 일주문 옆에는 국수집이 있습니다. 잔치국수가 일품이랍니다. 수종사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야 없겠지요.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허기가 진 탓인지 잔치국수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국물까지 싹싹 다 마시고나서도 입맛이 다셔집니다. 묵은 김치 맛 또한 일품이네요. 내키면 파전에 탁주를 한 잔씩 걸칠 수도 있습니다.

수종사에서 내려가는 길은 올라갈 때와 달리 가파른 내리막길이 되었습니다. 같은 길이 오르막이 되기도 하고 내리막이 되기도 하고, 가는 길이 되기도 하고 오는 길이 되기도 하는군요.

도보여행 예정은 여기까지였습니다만 해가 중천에 떠 있는 터라 좀더 걷기로 합니다. 덤으로 두물머리 산책로를 걷고 수생식물원 세미원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두물머리를 향해 걷기 시작합니다. 남한강과 북한강 물이 만나는 곳이 두물머리(兩水里)지요.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꽉 차 있습니다. 걷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양수대교를 건너 조금 걸으니 두물머리 산책로가 나오네요.

남한강과 북한강 물이 만나는 곳, 두물머리

두물머리
 두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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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길옆 밭에 사람들이 여럿 들어가 무언가를 캐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살폈더니 연근입니다. 이 일대가 연 밭인가 봅니다. 꽤 넓습니다. 6월에 연꽃이 핀다고 하니 연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보러오면 좋겠지요. 

연 밭 끄트머리에서 죽은 물고기 여러 마리를 보았습니다. 연근을 캐려고 물을 뺐기 때문에 물고기들이 죽었나 봅니다. 죽은 목숨이 마음을 짠하게 합니다. 두물머리 산책로 끝에는 황포돛대 모형이 놓여 있고, 고인돌도 있습니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 강물을 봅니다. 물은 늘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요? 흐르는 물은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 법. 강물에 마음을 띄우려다보니 마음을 삼정헌에 두고 왔다는 생각이 불쑥 듭니다. 그만큼 삼정헌은 긴 여운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이 날의 도보여행은 세미원을 가볍게 둘러보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이제는 걸어온 길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길에서 길을 찾기 위해 나섰다 해도 길을 떠돌며 살 수는 없는 법니까요.

아, 수생식물원 세미원은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 번 찾아가시길 권합니다. 연꽃 피는 계절이 최고랍니다. 입장은 무료이나,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해야 들어갈 수 있답니다.

덧붙이는 글 | [걸은 길] 진중삼거리 - 수종사 - 두물머리 - 세미원
팔당역이나 덕소역까지 전철타고 가서 역 앞에서 8번 버스나 2000-1번 버스 타고 진중삼거리에서 하차.



태그:#도보여행, #수종사, #삼정헌, #두물머리, #세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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