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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운영위원회는 학부모들이 학교운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사진은 서울 한 초등학교 모습.
학교운영위원회는 학부모들이 학교운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사진은 서울 한 초등학교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4월 15일 '학교 자율화 3단계 조치'가 발표되었다. 학교가 다양하고 질높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 운영에 관한 사항을 학교가 결정하고, 각 학교가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청의 직접 통제에서 벗어나 교사와 학부모, 지역인사가 참여하는 학교 단위의 자율 경영 구조를 갖추어 학교 중심의 실질적인 지방교육자치제가 정착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학교 운영의 자율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학교운영위원회의 의결 기능을 확대·강화하고,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집중적인 (학교운영위원) 연수를 실시한다고 한다. 지방 분권 자치 시대에 학교 단위의 자율경영 체제를 갖추자는 주장에 반대할 까닭은 없지만, 학교 행정을 총괄하는 학교장과 교육청 공무원, 그리고 이들을 지도 감독해야 하는 일부 교육위원들의 행태를 보면 학교 중심의 교육 자율화가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교육과학부의 자율화 3단계 조치가 발표되고 난 뒤인 4월 18일 오후 서울 지역 한 중학교 대강당에서는 교육청 주관으로 '2008학년 학교운영위원회 활성화를 위한 학부모 위원 연수'가 지역의 초, 중학교 학부모 위원 500여명을 대상으로 열렸다. 

 

학운위 의결기구화는 '잘못'... 자문 역할만 하라?


그런데 연수가 시작되자, 올해 7월 30일 주민 직선으로 뽑힐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 의사를 밝혔다는 서울시 교육위원회의 이모 교육위원이 인사말을 한다며 연단에 올라섰다.

 

그는 영국에서는 학교운영위가 자문 역할만을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도 그 방향으로 가야 하고, 학교운영위원회 운영위원들이 학교운영위원회를 의결기구로 해달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운영위원회의 본질은 학부모 위원들이 어떻게 하면 학교장을 도와 학교를 잘 운영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 학교 자율화 시대에 모든 권한이 학교에 내려오면 학교장들이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되는데, 학부모 운영위원들이 학교장을 잘 보좌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요약하자면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장을 돕는 보조기구"라는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가 법정기구이며 심의권과 발전기금 등의 주요 사항에 대한 의결권이 있음을 모를 리 없는 서울시 교육위원이 의도적으로 학교운영위원회를 폄하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이는 연간 6조가 넘는 예산에 대한 심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교육청 공무원들에 대한 행정사무 감사권을 가진 서울시 교육위원이 내뱉은 낯뜨거운 발언이다. 그의 발언은 참석한 학부모 위원들의 학교 자치에 대한 의욕을 꺾고, 학부모위원들의 귀한 연수 시간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와 같이 학교운영위원회를 무력화시키려는 발언이 어떻게 학교운영위원회 활성화를 위한 학부모 연수에서 나올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교육청과 학교장을 지도·감독하는 수도 서울의 교육위원 사고 수준이 이 정도이니, 학교 자율화가 어찌 제대로 진행되겠는가?


또다른 이모 교육위원도 2008 서울특별시 세입·세출안 예산 심의에서 학교운영위원장 연수 폐지를 주장하면서, 학교운영위원장 연수를 다녀오면 운영위원장끼리 모여서 나쁜 것 다 배워가지고 오며, 학교 일에 아주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던 사람이 완전 비판적으로 변한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 또한 무슨 해괴망측한 이야기인가? 학교운영위원회는 법률로 정한 기구이고, 학교장(집행기관)과 독립된 기구로서,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한 심의(실질적으로 의결)권을 갖는다. 교육과학기술부도 자율화 조치 성공을 위해 앞으로 학교운영위원회의 의결권을 더욱 확대, 강화하겠다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교육청 관료들과 교육위원, 일선 학교장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질 권한만을 생각하고 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학교 자율 권한을 주었을 때, 학교 현장은 혼란스러워질 것이고,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 지역 주민들이 지게 될 것이다.

 

 지난 2006년 1월 '사립학교법 개정과 부패사학 척결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회원 10여명이 사학법 개정에 반발해서 신입생 배정을 거부하는 사학재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을 앞두고 학교측이 교문을 닫았다.
지난 2006년 1월 '사립학교법 개정과 부패사학 척결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회원 10여명이 사학법 개정에 반발해서 신입생 배정을 거부하는 사학재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을 앞두고 학교측이 교문을 닫았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런 사람들에게 학교 자율권 준다니...


학교운영위원회는 지난 1996년부터 법률에 따라 각급학교에 의무적으로 설치되어 학교운영과 관련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학교 규칙 및 규정 제정, 단위 학교 예, 결산 심의, 교과용 도서 선정, 수익자부담 사안 심의, 평생교육프로그램 설치 및 운영 등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한 제안 및 건의 사항 등을 심의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학교운영위원회는 학부모, 교원, 지역인사 등의 참여를 바탕으로 학교교육정책 결정의 민주성·합리성·투명성을 확보하고, 학교교육목표 달성을 위해 크게 기여하였다.


그간 많은 학교장들은 '자기사람 심기', '회의 횟수 줄이기', '우편으로 심의하기', '안건 줄이기', '위원 무투표 당선시키기', '소급해서 심의하기' 등의 방법으로 법정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를 끊임없이 무력화시키려고 하였다. 이는 명백한 불법 행위로서, 이런 수준의 학교장들이 학교 자율화 시대를 틈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된다고 하니, 학부모들은 그저 눈앞이 깜깜해질 뿐이다.

 

이러고도 학부모들에게 "공교육이 살아나고, 학교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단언컨대 이러한 학교장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없이 시행되는 교육과학부의 학교 중심의 교육 자율화 조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실패한 정책으로 판명날 것이다.


교육 당국에 의한 학교운영위원 연수가 얼마나 부실하였으면, 운영위원들이 자체적으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스스로 비용을 써가며 소모임을 만들겠는가? 그 동안 뜻있는 학부모위원들이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학교를,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들을 쏟아냈는가? 교육청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매년 표지만 다른 같은 내용의 학교운영위위원 연수 책자를 교육청별로 따로 예산 편성을 하여 혈세를 낭비하고, 담당자 해외 연수로 수천만원을 써 버리는 대담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가? 차라리 그럴 돈이 있으면 그 예산을 전국 1만여개 학교에 설치되어 있는 학교운영위원회 운영에 필요한 경비로 쓸 수 있게 하라. 그러면 학교운영위원들은 능히 단위 학교의 학교계획서를 놓고 토론하고 심의하여, 학교를 자율적인 배움터로 확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학교장 혼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학교를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 능력있는 학교장들은 학교운영위원회의 권한을 존중하고, 당연직 교원위원으로서 학교운영위위원회 심의 결과를 바탕으로 학교행정을 집행한다. 문제는 이런 학교장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연수가 필요한 건 학부모가 아니라 학교장들

 

이제라도 교육과학부나 교육청은 학부모위원 대상 연수 활성화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시급하게 학교장 대상 학교운영위원회 연수를 먼저 시행하여야 한다. 심의안 발의를 한 교원위원에게 학교장의 결재를 요구하는 학교장이 있는 한, 학교운영위원회를 학교장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채우기에 급급한 학교장이 있는 한, 학교 자율화는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 이는 학부모와 교원, 지역 주민을 들러리로 세우는 교육 자치로써 허울뿐이기 때문에, 학교 자율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도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일부 학교장들의 그릇된 사고방식은 시급히 고쳐져야 한다. 


학교장들은 이제 더 이상 학교운영위원회가 의결기구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지 말라. 또한 학교장에게 재심의권이 있다고 학부모위원들을 윽박지르지 말라. 교육청이 학교장에 대한 시정명령권이 있다는 것을 학부모위원들에게는 왜 감추려 하는가? 당연직 위원으로서 학교장이, 자신이 교원위원 자격으로 참여하여 심의하고 의결한 사안에 대해 재심의권을 행사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학교장들도 잘 알고 있다. 


학교장들은 학부모위원들을 결코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비록 학부모위원들이 아이를 학교에 볼모로 맡겨 두어, 권위적인 학교장의 부당한 요구를 뿌리치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학부모위원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학교는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삶의 터전이자, 배움의 터전이다. 학부모와 교사, 학생들은 이제 독단적인 학교장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난해 2월 인권연대 교육장에서 '학교운영위원회, '노하우'를 공유하자'라는 주제로 간담회가 열렸다
지난해 2월 인권연대 교육장에서 '학교운영위원회, '노하우'를 공유하자'라는 주제로 간담회가 열렸다 ⓒ 인권실천시민연대


#학교운영위원회#학교자율화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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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공동체가 주인되는 학교를 바르게 세우고 싶습니다. 교사,학부모,학생이 하나가 되어 신뢰를 바탕으로 학교를 자율적으로 즐거운 학교, 행복한 학교를 만들 수 있겠지요 ^^ 오마이뉴스의 건투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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