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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문인과 한국 문인들 사이에 오간 글을 엮어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대화>를 펴낸 소설가 오수연
 팔레스타인 문인과 한국 문인들 사이에 오간 글을 엮어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대화>를 펴낸 소설가 오수연
ⓒ 오마이뉴스 천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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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 전 '소설 쓰는 오수연'(제목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에게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평소 가깝게 지내던 기자들에게 모두 보낸 듯 싶었다. 그녀는 이메일에서 자신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올해 초 펴낸 한 권의 책이 소리 소문 없이 묻히는 데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뒤늦게 오수연이 말한 책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대화(열림길, 이하 <대화>)>를 챙겨 읽었다. <대화>는 2006년 7월부터 2007년 5월까지 팔레스타인 문인들과 한국 문인들 사이에 오간 글들을 묶어 펴낸 책이다. 팔레스타인 쪽에선 자카리아 무함마드 시인 등 4명, 한국 쪽에선 소설가 현기영, 시인 신경림 등 22명의 작가들이 이 '대화'에 어울렸다.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대화>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대화>
ⓒ 열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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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이란 고유명사가 지니고 있는 무게에 비해 <대화>는 의외로(?) 쉽게 읽혔다. 특히, 팔레스타인에서 보내온 글들은 그 곳의 현실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듯 생생했다. 또한 행간에 피와 화약 냄새가 배어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인간 냄새가 훨씬 더 강하게 풍겼다.

<대화>에는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빗속을 우산 없이 걷고, "그래, 또 봐!"라고 헤어지면서도 또 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고, 그렇기에 다시 만났을 때 잘 지냈느냐는 인사 대신에 "아직 살아있었구나!"라고 말하며, 콘크리트 장벽에 갇혀 인생의 3분의 1을 이스라엘 군인이 지키는 검문소 앞에서 줄을 선 채 보내야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아슬아슬한 삶이 펼쳐져 있었다. 거기에는 또, 그럼에도 예술과 자연을 사랑하고,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들의 꿋꿋한 삶도 그려져 있었다.

책 속에서 소설가 김남일이 얘기했듯이 '팔레스타인' '아랍'하면, "폭도, 테러리스트, 원리주의자, 광신도, 악의 축, 이교도, 악마, 인질, 무지, 야만, 무질서, 폭력, 공포, 그리고 길바닥과 강과 사막에 널린 시체들!"을 먼저 머리에 떠올렸던 나로선,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면서 선입견이 깨져나가는 아픔이 오히려, 팔레스타인인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달콤하게까지 느껴졌다.

<대화>를 기획한 오수연을 직접 만나보고 싶어졌다. 전화를 하자 마침 그녀는 지난 12월부터 2월말까지 팔레스타인을 다녀왔다고 했다. 최근 팔레스타인 현지 사정도 귀동냥할 수 있을 듯싶었다. 4월 햇살이 따스한 어느 날 서울 홍대 앞 '창밖을 봐…'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마흔 중반의 나이에도 미소년 같은 얼굴에 목소리 역시 씩씩했다.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은 한반도의 분단장벽으로 이어진다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란?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예술가, 평화활동가, 시민들이 서로 문화와 예술을 교류함으로써 아름다운 세계로 함께 나아가기 위해 만든 모임. 국내에선 매월 모임을 열어 팔레스타인 영화·음악·문학 등을 소개하고 있다.

2005년 말 만들어졌으며 현재 회원수는 약 200명. 지난 4월 6일 총회를 열고, 비영리민간단체로서 공식적인 틀을 갖추기 위해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내년 '아랍문화제'를 열 계획도 세워나가고 있다. 홈페이지는 www.palbridge.org.
<대화>의 표지에는 기획·번역자 자리에 오수연이 참여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이하 '다리')'란 모임 이름이 올라있다. 물론 '다리' 회원들이 여러 도움을 줬다. 하지만 '대화'를 실제로 기획하고 청탁하고 번역하고, 자료를 찾고 설명을 다는 일의 대부분은 그녀가 맡았다. 기획을 위해 팔레스타인 문인들과 계속 이메일을 주고받았으며, 팔레스타인에서 글이 도착하면 그에 맞춰 한국 작가들에게 답글을 부탁했다. 21명의 작가가 그녀의 청탁에 흔쾌히 응했다.

"한국 작가들이나 팔레스타인 작가들이나 참 적극적이었어요. 제가 전화를 걸었을 때 바쁘니까 못하겠다는 둥,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둥 이런 사람이 한 분도 없었어요. 제가 이번 겨울에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도 그 곳 문화계 사람들이 다 알고 이 책 반응을 막 물어보는 거예요. 유럽과의 교류는 많았지만 이런 식의 기획은 없었던 거죠."

<대화>의 기획 의도를 묻자 2006년 펴낸 <팔레스타인의 눈물(도서출판 아시아·이하 <눈물>)> 얘기로부터 시작했다. <눈물>은 수아드 아미리 등 팔레스타인 작가 11명의 산문을 엮은 책으로 역시 그녀가 팔레스타인 작가와 함께 기획하고 번역했다.

"팔레스타인 얘기를 알리되 정보나 숫자보다는 마음을 움직이는 글로 해보자 해서 <눈물>을 묶어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그런데 팔레스타인 작가들 이름도 어렵고 조금 멀게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한국 작가들과 함께 좀 더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감성적인 에세이를, 또 일방적으로 팔레스타인 얘기만 듣는 게 아니라 한국 얘기도 하면서 풀어나가면, 작가들한테도 도움이 되고 독자들도 가깝게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해서 (<대화>를) 제안하게 된 거죠."

'대화'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을 뛰어넘어 서로가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자카리아 무함마드 시인이 팔레스타인의 선인장 꽃 그림을 얘기하자 소설가 전성태는 광주항쟁 때 계엄군의 총탄에 상처 입은 은행나무 얘기를 들려준다. 바쉬르 살라쉬 시인과 소설가 정도상의 글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과 한반도의 분단장벽은 하나의 장벽으로 이어진다.

또한 이스라엘 주민법에 따라 은밀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팔레스타인 가정에 대한 아다니아 쉬블리 작가의 얘기에서 김해자 시인은 20대 시절 위장취업 생활을 하면서 다락방에 수배자 선배를 숨겨줬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린다. 바쉬르 시인이 이스라엘이 '안보'를 이유로 팔레스타인 땅에서 4만 그루의 올리브 나무를 뽑아낸 사실을 고발하자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작가 최성각은 함께 분노하며 신개발주의자들의 대운하사업 등을 비판하기도 한다.

오수연도 책 서문에 <대화>는 "서로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신호 보내기"이자 "어깨 걸고 함께 버티기"였다고 적었다. 그에게 "한반도의 분단장벽과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은 실은 별개의 장벽이 아니며, 이스라엘 불도저에 4만 그루 올리브 나무가 밀리고 새만금에서 백합과 농발게가 사라진 것도 다른 사건이" 아니다. <대화>를 읽는 독자들에게 바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독자들로선) 간단하게, 저(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나처럼 상처받고 섬세하고 자유롭고 싶고 그런 사람들이구나, 이걸 느끼면 된다고 생각해요."

미국 때문에 팔레스타인에 갔는데...

오수연은 2003년 이라크전쟁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현재 한국작가회의)의 파견 작가이자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을 다녀왔다. 그때 체험을 2004년 보고문 <아부 알리, 죽지 마 - 이라크 전쟁의 기록>(향연)에 담았고, 지난해에는 그 체험을 바탕으로 연작소설집 <황금지붕(실천문학사)>을 펴냈다.

또한 팔레스타인에서 만났던 작가들을 한국에 초청하고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는 데 다리를 놓았으며, 앞서 얘기했듯이 2006년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산문을 묶어 <팔레스타인의 눈물>을 펴내기도 했다. 이같은 활동에 힘입어 2006년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젊은작가포럼이 선배 문인에게 주는 '아름다운 작가상'을 받았다. 선정 이유는 "두려움을 떨치고 작가의 존재이유를 보여주었다"는 것이었다.

"2003년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만 해도 솔직히 너무 몰랐죠. 미국 때문에 간 거죠. '미국 해도 참 너무해' '가만히 앉아서 있을 수 없어' 해서 간 건데, 가니까 아랍이라는 거대한 세계가 있었던 거죠. 그 이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면서 사람도 만나고 책들도 보고 그러는데 거긴 정말 하나의 월드예요, 아랍권, 아랍월드죠.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자라면서 받아들인 문화가 미국 위주였기 때문에 가보면 우리가 얼마나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 알게 돼요."

2003년엔 "너무나 모르는 세계를 처음 접해서 어벙벙하고 사태를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제대로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지난해 12월 3일부터 올 2월 27일까지 3개월간 팔레스타인을 다시 다녀왔다.

 소설가 오수연은 바삐 산다. 인터뷰 중에도 계속 전화가 걸려 왔다.
 소설가 오수연은 바삐 산다. 인터뷰 중에도 계속 전화가 걸려 왔다.
ⓒ 오마이뉴스 천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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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갔을 때와는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던가요?

"상황이 더 안 좋아졌죠. 2003년은 한참 2차 인티파다('봉기'를 뜻하는 아랍어, 1987년 1차에 이어 2000년 9월 2차 저항운동을 일으켰다)로 살벌했던 때였죠. 언제 죽을지 몰랐고, 실제로 죽었죠. 저와 함께 '인간방패'를 하던 유럽 친구 한 명이 얼굴을 총에 맞았고, 또 한 달 뒤 다른 한 명이 총에 맞아 죽었죠. 외국인이 그 정도로 죽었으니 팔레스타인 사람은 얼마나 죽었겠어요. 아주 상황이 살벌했죠.

(지금은) 표면적으로 보면 그 때보다는 덜 살벌해요. 탱크·총알이 난무하고 그렇진 않아요. 이번에 갔을 때는 부시가 라말라(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청사가 있는 서안의 행정중심지)에 왔었잖아요. 그렇게 상황이 바뀐 거예요.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을 갈라놓는 거죠. 파타와 하마스의 갈등이 거의 내전을 우려할 정도예요. 내 앞에서 부부들끼리, 친구들끼리 싸운 경우도 많아요."

헛헛한 웃음을 띠며 그녀가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옛날엔 팔레스타인이란 우산 아래 다 같이 있었죠. 리버럴도 있고 공산당도 있고 정치적 성향은 다양하지만 그들간 연대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젠 없어졌죠.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이 추진하고 있는 게 2국가론이거든요.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대로,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대로. 현실론인데, 이게 쉽지가 않죠. 이런 식으로 중간에 낀 나라의 운명을 그 자신들이 결정하게 내버려둔 역사가 없잖아요. 파타와 하마스의 갈등을 자꾸 부추기는 거죠. 하마스가 2006년 총선에서 이겼지만 압바스는 하마스를 받아들이지 않고 내각을 단독으로 구성해버렸죠. 하마스도 압바스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고. 대표성도 인정받지 못하는 내각이 어떻게 평화회담을 하겠어요? 또 서안에서 평화회담을 하면서 그 순간 가자에서는 엄청나게 미사일을 퍼붓고 있는데."

"한국인들, 미국 때문에 참 안 됐다"

- 국내에 알려지기론 하마스는 무장단체 또는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무장을 왜 못해요? 가장 큰 테러를 하는 건 이스라엘이죠. 하마스가 무장했다는 것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날리는 사제폭탄이에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날아다니는 파이프'라고 비하해서 불러요. 그런데 이것에 대한 보복은 무인요격기예요. 하마스의 사제폭탄으로 키부츠에 봉사 왔던 에콰도르인 한 명이 죽고, 이스라엘 사람들 몇 명이 부상당했죠. 그런데 같은 시기에 가자에서 이스라엘 요격으로 죽은 사람은 115명이에요. 이건 싸움이 아니에요, 학살이지. 하마스가 잘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가자 봉쇄에 하마스가 명분을 주고 있어요. 누가 잘했냐 못했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마스를 명분으로 (가자를) 엄청나게 뚜드려 부수면서 이쪽(서안)에선 평화회담을 한다니까, 얘네(압바스 자치정부·파타)는 배신자가 되고 얘네(하마스)는 더 꼴통이 되는 거죠."

그녀는 부시 미 대통령이 라말라를 방문하던 날 목격했던 장면도 들려줬다. "그날 온 도시가 꽁꽁 얼어붙었어요. 부시 방문 반대 시위를 벌이던 사람들을 압바스 정부 보안대원들이 두드려 패고 막 끌고 가고 그랬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호랑이 대신 여우가 머리 위에 앉았다고 그래요."

-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한국 상황에 대해) 잘 알아요. 자카리아 무함마드 선생 같은 경우 평생 겪은 전쟁이 10번이래요. 그 전쟁이 국지전이 아니잖아요, 세계전쟁이지. 그러니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세계정세를 잘 알아요. '한국인들은 나쁜 놈'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미국 때문에 참 안됐다'고 생각하죠. 그러면서 '그러는 게 장기적으로 안 좋다는 걸 알아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하죠. 팔레스타인은 우리가 돕고 동정할 대상이 아니에요. 지금으로선 오히려 우리가 팔레스타인에서 배워야 할 게 참 많은 거 같아요."

- 어떤 점을 배워야 한다는 얘기인지?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이래로) 올해가 딱 60년인데, 하루도 편할 날 없이 그렇게 당하면서도 버텨낸 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쇠가 아니잖아요. 그러면서도 이 사람들은  희망에 대해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요. 우리에게는 희망이 고리타분하다든지 낭만적이라든지 사치스런 말처럼 들리잖아요. 근데 이 사람들은 정말 희망 없이는 살 수 없어요. 오늘 하루를 희망 없이는 버텨낼 수가 없어요. 그럼 나는 희망 없이는 살 수 있는가, 전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그런 질문을 유예하면서, (희망이) 없어도 될 것처럼 말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게 문학"

그럼 팔레스타인의 체험이 그녀의 작품 활동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녀는 "엄청나게 영향을 미쳤다"면서 '문학을 왜 하는가'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처음부터 다시 고민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펴낸 <황금지붕>도 그 같은 고민의 결과물이다.

문학평론가 황광수는 <황금지붕>에 대해 "지상에서 가장 참혹한 상태에 있는 지역들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할 수 있는 감수성의 진경을 보여주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황금지붕>은 낯선 형식으로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간과 장소가 분명하지 않고, 그 시공간마저 뭉그러지고 뒤섞여 나타난다. 또한 작품 속 인물의 이름도 없고 개성도 뚜렷하지 않다.

"왜 그렇게 됐냐면, 이라크 파병을 보더라도 누가 좋아서 군대를 보내겠어요, 어쩔 수 없으니까 보내지. '우리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어'라는 논리죠. 정당한 거 같죠? 그런데 그게 남을 죽이는 게 된단 말이죠. 여기가 살기 위해선 저기가 죽어야 된다는 게 현실론이란 이름으로 받아들여지고 승인되잖아요. 그걸 어떻게 뒤집을까 생각하고, 공간문제로 접근한 거죠. 현실에선 내 땅 아니면 네 땅, 이런 식으로 돼 있는데 저는 그걸 접어서 다른 것을 만들어보려고 했던 거예요. 땅을, 공간을, 경계를 없애려고 한 거죠. 소설에는 그곳이 이라크인지 팔레스타인인지 그런 말이 없어요. 사람들의 이름도, 얼굴도 없어요. 개성 있는 인물이 나오지 않아요. 왜냐면 어떤 누구를 그 상황에 갖다 놔도 그렇게 되는 상황 자체에 대해 고민했기 때문이에요."

 소설가 오수연
 소설가 오수연
ⓒ 오마이뉴스 천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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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체험이 문학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는데 답은 찾았나요?

"그걸 어떻게 한마디로 해요(웃음). 하나 느끼는 건, 99%의 그 모든 상당히 합당한 이유로 포기가 되는 거 있잖아요. 정의, 인간의 권리 같이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 아주 합당한 이유로 포기가 되잖아요. 그걸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게 제겐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 팔레스타인 문학의 수준은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어느 정도인가요?
"저는 (수준이) 높다고 생각해요. 고통을 겪더라도 징징 짜면서 '나 괴로워' 이러면 안 들어주잖아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서 고통을 얘기하는 법을 알아 왔어요. 고통을 외면하거나 우회하지 않으면서도 전달하는 법을 알아요. 독자가 볼 때는 서정적으로 '참 좋구나' 그러는데, 작가로서 고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알고 있어요. 그 점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안 고통스럽나요? 그런데 우리는 '인간의 근본적인 소외' 같은 식으로 (고통을) 대면하지 않고 피해가려 한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 다음 작품도 팔레스타인을 배경으로 하게 되나요?
"<황금지붕> 이전 작품이 <부엌>(이룸·2001, 2006년 강출판사에서 개정판을 냈다)인데, <부엌>은 인도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죠. 배경이 어딘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부엌>도 그렇고, <황금지붕>도 그렇고, 다 한국사회에 대한 성찰이에요. 다만 한국사회를 이미, 더 이상, 한국사회 틀 안에서는 성찰할 수 없단 말이죠. 이라크에 한국군대가 파병 가는 판인데. 그리고 '세계화'라고 하는데, 저는 실질적 세계화는 우리 마음의 세계화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어디 있건 무슨 상관이에요. 우리 사회를 성찰하기 위해서, 저에겐 그런 경험이 필요했던 거죠."

그리고는 자신은 "한국어로 글을 쓰는 한국 작가"라고 밝혔다.

'사랑의 힘'과 '힘에 대한 사랑'

대화를 마무리할 때가 됐다. 과연 이런 질문을 그녀에게 하는 게 합당한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지만, 답답한 심정에 그녀에게 물었다.

-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아마 오래 걸릴 거 같아요, 아주 아주 오래. 우리나라의 통일보다 더 오래 걸릴 거 같은데, 해결돼야 되는 건 맞아요. 미래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니까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죠."

- <대화>를 보면 '사랑의 힘과 힘에 대한 사랑' 얘기가 나옵니다. '사랑의 힘'이 '힘에 대한 사랑'을 이길 것이라고 믿나요?
"전 그 길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힘에 대한 사랑의 결과를 지금 보고 있잖아요. 이제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갈 데가 없는 거 아닌가요?"

다시 한 번 '믿느냐'고 물었다. 그 역시 다시 한 번 "그 길밖에 없다"고 받았다. 그리고 덧붙였다. "살고 싶으면…. 죽어도 상관없다, 이러면 할 말 없고(웃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 그렇다면 우리 개개인은 '그 길'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개인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아주 추상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데요. 자신의 삶에 대해 좀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팔레스타인에서 보이콧 운동에 대한 메일이 종종 날아와요. 이스라엘 정책을 지지하는 ○○○○(그녀는 세계적인 커피전문점 이름을 얘기했다) 불매운동 합시다, 이런 게 계속 날아오거든요. 아무 의식 없이 당신이 사 먹는 커피가 총알이 돼 날아간다는 것이죠.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파고들면 어려운 얘기긴 해요. 그런데 그런 일들이 많거든요. 아주 쉽게는 그런 일부터 시작해서 우리 사회가 호전적이고 물질적인 사회가 되는 걸 막아야죠. 시민으로서 이라크 파병 막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새만금 개발 막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런 걸 추진하는 사람들 지지하지 말아야 하고 뽑지 말아야 하고, 가만 놔두면 미친 듯이 폭발하는 개발, 폭력적인 움직임들을 뒤로 끌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려면 아파트 물을 탁 틀면 뜨거운 물이 촥 나올 때 이게 누구의 눈물이고, 누구의 피인지, 그런 자각들이 필요해요. 그 물이 새만금 백합들의 피일 수도 있고, 팔레스타인 사람의 피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대화

신경림 외 지음,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옮김, 열린길(2007)


#팔레스타인#팔레스타인과 한국의 대화#오수연#팔레스타인의 눈물#황금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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