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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경우라도 용서할 수 없다. 이는 나의 작가생활 30년이 걸린 문제다. 아무리 이 세상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라지만 어찌 이런 오류가 벌어질 수가 있겠는가. 그것도 한국 출판계를 대표하는 문지(문학과 지성사)와 국립대 국문과 교수라는 사람이...  만약 명예훼손에 따른 소송비용을 마련치 못하면 1인 시위라도 해서 이에 대한 진실을 반드시 밝히고 말겠다."

1백만 부가 훨씬 넘게 팔린 장편소설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61)씨가 단단히 화가 났다. 창작과비평사와 더불어 한국문학 출판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문학과지성사(대표 채호기, 이하 문지)가 자신들이 펴낸 <한국문학선집 1900~2000 소설2>(이하 소설2)에서 김 작가의 이력과 작품을 잘못 평가하고도 용서를 빌기는커녕 오만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    

문지가 지난 해 11월 끝자락 펴낸 <소설2>(우찬제 김미현 엮음)에는 20세기 한국 소설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89명의 대표작 98편과 함께 작가 프로필, 평론가가 쓴 작품세계 및 작품해설 등이 실려 있다. 문제는 이 책에 실린 작가 김성동의 단편소설 '오막살이 집 한 채'와 작가에 대한 평가가 상식을 벗어나는 수준이라는 것.

작가 김성동을 추리작가 김성종으로 착각

문제가 된 소설2 이 책에 김성동의 '오막살이 집 한 채'가 실려 있다
▲ 문제가 된 소설2 이 책에 김성동의 '오막살이 집 한 채'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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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은 <만다라> 발표 이후 생계를 위해 문학의 순수성과 관련된 본격문학에 집중하기보다는 추리소설을 창작하거나 신문에 역사소설을 연재하였다. 그와 동시에 구도적인 경향을 종교에서 바둑으로 관심 영역을 확장하여 <국수>와 같은 작품을 창작하기도 하고, 사회적 관심을 보인 <영부인 마님 정말 너무해요>와 같은 작품 등을 발표하였다."-<소설2> 661쪽

작가는 이에 대해 "나는 추리소설을 쓰거나 신문에 역사소설을 연재한 적이 없다. 아마 나를 김성종으로 착각한 것 같다. <영부인 마님 정말 너무해요>도 여러 작가들이 함께 쓴 콩트집 제목이다. '오막살이 집 한 채'와 <국수>에 바둑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는 단지 소도구일 뿐 소설의 본질적 주제와 연관이 없다"(오마이뉴스 4월12일자 참조)고 못박은 바 있다.

'오막살이 집 한 채'에 대한 평자의 해설도 엉터리다. 평자는 이 작품을 "광주민주항쟁과 관련된 후일담 소설"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광주항쟁이 아니라 "굳이 시대적으로 분류하자면" 6.25전쟁 전후다. 이에 따라 작가는 지난 1월7일 문지 측에 장문의 편지를 보내 오류를 꼼꼼히 지적했다. 

하지만 문지 측은 작가에게 "있어서는 안 될 큰 실수였다. 2월 중순께 우찬제 교수의 해제를 받아 작가에게 보여드리고 재수록하겠다"는 짧은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4월 중순에 이르도록 그 어떤 답신도 보내지 않고 있다가 이 사실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기사화되자 지난 18일(금) 서둘러 작가를 찾아가 그동안의 경위를 설명하고 용서를 구했다.

이날 문지 측은 작가가 요구한 <소설2> 서점판매부수를 공개하고, 서점 측에 <소설2>의 제작상 오류가 있어 4월25일까지 <소설2> 반품을 요구하는 문안을 작가에게 보여줬다. 이와 함께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이번 사건에 따른 공식 사과문을 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작가 김성동은 이제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는 투다. 

작가 김성동, 문지에 7억2천만원 손해배상소송 청구

"3000부 찍었는데 지금까지 928부가 나갔지만 실제 판매부수는 700부라고 그러면서 용서를 구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용서하고 말고 할 게 아니고 <실천문학> 여름호에 이번 사건을 다룬 단편소설 '발괄하는 앵벌이'를 발표한 뒤에 법적 소송을 하겠다고 그랬지요."

작가 김성동은 "도시노동자 최저생계비가 월 200만원이니 1년이면 2400만원"이라며 "여기에 작가생활 30년을 보태면 7억2천만원이 나오니까 7억2천만원을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하겠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소송비용도 만만치 않다. 작가는 이에 대해 "가난한 작가에게 무슨 돈이 있겠느냐? 뜻있는 변호사가 이번 사건을 맡아 소송비용을 먼저 내주면 승소한 뒤에 돌려주면 되지 않겠느냐"며 "저를 도와줄 후원인이나 변호사를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 김성동(좌 3번째) 작가 김성동의 지인들이 문지 김성동 해설오류사건에 대해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작가 김성동(좌 3번째) 작가 김성동의 지인들이 문지 김성동 해설오류사건에 대해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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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제 작품을 잘못 평가한 이익성 교수는 지금까지도 아무 말이 없다. 사과 전화나 편지 한 통 오지 않았다. 문제의 당사자가 제게 직접 찾아와서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느냐. 굉장히 괘씸하다. 우리나라 문학작품과 작가들의 올바른 평가를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문단권력으로 치부되는 대형 출판사와 평자들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겠다."    

이 사실이 문단에 전해지자 평소 작가 김성동과 친분이 두터운 문인들을 중심으로  <작가 김성동을 사랑하는 모임>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모임 관계자는 "작가 김성동의 소송비용 마련은 물론 작가를 돕기 위한 모금, 변호사 선임 등 다각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문지 측은 시인 윤중호 유고시집을 낼 때에도 문학평론가 김종철(녹색평론) 대표의 해설을 평자의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고쳐 시집을 출간해 김 대표로부터 시집 전량회수와 해설을 원본 그대로 싣도록 하라는 항의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시집을 새로 찍은 것은 확인했으나 전량 회수는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학권력과 출판권력이 낳은 웃지 못할 에피소드

작가와 문학평론가, 출판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왜냐하면 작가가 글을 쓰면 출판사가 펴내는 문예지를 통해 발표하거나 아니면 단행본으로 출간, 서점에 진열하게 된다. 이때 작가와 작품을 평가하는 사람이 문학평론가다. 따라서 작가의 글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문학평론가(편집기획위원)의 좋은 평가와 더불어 출판사의 편집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신인, 작가는 이름 있는 문학평론가와 유명한 출판사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자칫 밑보여 눈엣가시라도 되면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해도 이름 있는 문학평론가와 유명한 출판사의 뒷전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때문에 문학평론가와 출판사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끔 작품의 일부를 고치게 하기도 하고, 작가의 허락을 얻어 일부 고치기도 한다. 

이때 생겨나는 것이 문학권력과 출판권력이다. 이름 있는 문학평론가일수록 유명한 출판사일수록 이 문학권력과 출판권력이 드세다. 이 양대 권력이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작가와 작품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면서 나중에는 무시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문지의 작가 김성동 해설 오류사건도 문학권력과 출판권력이 낳은 웃지 못할 에피소드라 할 수 있다.

작가 김성동  공화랑에서 만난 작가 김성동
▲ 작가 김성동 공화랑에서 만난 작가 김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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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성동은 1947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1965년 서라벌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입산했다. 1975년 <주간종교> 종교소설 현상 공모에 단편 '목탁조'가 당선되었으나, 불교계를 비방하고 승려들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있지도 않았던 승적을 박탈당한 뒤 1976년 늦가을에 하산했다.

1978년 <한국문학신인상>에 중편 '만다라'가 당선되었으며, 1979년 <만다라>를 장편으로 개작 출간해 100만부가 넘게 팔리는 등 문단과 출판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98년에는 <시와 함께>에 '중생' 외 10편을 발표하며 시작(詩作)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소설집으로 <피안의 새> <오막살이 집 한 채> <붉은 단추>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길> <집> <국수(國手)> <꿈> 등을 펴냈다. 산문집으로는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 <생명기행> 등이 있다. 지금은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의 산자락에 자리 잡은 암자에 기거하면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작가 김성동#만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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