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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정문(자료 사진).
서울대 정문(자료 사진). ⓒ 권우성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때였으니 2003년 2월이었을 거다. 입학예정이었던 학교에서 사전과제를 줬었다. EBS 문제집을 풀어오라는 것과 <수학 정석> '10-가'를 어디까지 풀어오라는 것 등. 나는 집에서 쉬며 간간히 과제나 하며 입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도 집에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학교였다. 입학 성적순 30명 정도를 대상으로 특별 보충수업을 시작하니 준비를 해오라는 것.

 

수업은 2월 중순에 시작했다. 국어·영어·수학을 중심으로 공부했고 그 해 서울대에 입학하는 선배의 특강도 있었다. 늘 중상위권에 머물던 나는 어쩌다가 고입 시험에서 고득점을 했다. 그 덕에 턱걸이로나마 특별 보충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중상위권인 나, 어쩌다가 상위권 집단에 들어갔지만

 

학교로부터 특별 관리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고 뿌듯함과 함께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이했다. 특별보충반(친구들은 줄여서 특보반이라고 불렀다)은 입학 후에도 계속 되었다. 수업 시작 시간은 8시쯤이었고 흔히 말하는 0교시였다.

 

나는 수학을 못했다. 응용 능력이 떨어져 공부하다 울었던 적도 많다. 수학 1 문제집의 지수함수 단원에 남겨진 선명한 눈물자국을 보면 지금도 슬프다. 이런 나에게 특보반은 상위권들이 주로 푸는 수학 문제집을 내밀었다. 진도도 빨랐다.

 

점점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다. 결국 나는 1학기가 끝나기 전에 특보반을 그만 두었다. 같은 반에는 함께 특별 보충을 받던 친구들이 3명 정도 더 있었다. 그 중에서 나 혼자만 그만 두는 바람에 '내가 실패한 건가' 하는 패배감이 들기도 했다.

 

다음 해에도 특보반이 구성되었다. 친구들 중에는 여전히 특보반 애들이 많이 있었다. 2학년 때는 야간자율시간에 따로 빈 교실을 잡아 보충 수업을 진행했다. 단짝친구 중 그 수업을 받는 친구가 있어 특보반의 사정을 잘 알 수 있었다.

 

대신 열등감은 있었다. 한 때 그 곳의 일원이었지만 바깥에서 볼 때는 좋은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성적으로 등급이 매겨져 차별대우 받고 있다는 느낌이었으니까.

 

우리학교 수상한 반 편성, 수리영역이 기준이긴 한데...

 

 열등반 친구들은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
열등반 친구들은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 ⓒ 청소년위원회

3학년 때는 다시 특보반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3학년만 따로 쓰던 건물에 기숙사가 있었는데 그 자리를 개조해서 독서실을 만들었다. 2학년 말에 학교에서 독서실 입실 신청을 받았는데 이것도 성적순으로 뽑았다.

 

나는 또 턱걸이로 들어갔지만 대입을 앞두고 좋은 징조라고 여겼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특보반을 보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던 내가 다시 그 일원이 된 것이다.

 

실컷 욕하다가도 다시 받아주니 자연스럽게 뿌듯함이 생겼다. 대신 다른 친구들과 약간의 벽이 생기는 걸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애초에 성적순으로 모인 집단이어서 그런지 내부에서도 은근히 서열을 느꼈다. 나 같은 경우, 간신히 들어갔기에 '여기서 제일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어 수험생활 내내 기분이 꿀꿀하기도 했다. 

 

그 해에는 반 편성 결과도 학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많았다. 7차 교육과정이었던 우리는 문과에서 반을 나눌 때 '수리영역 시험을 보나, 안 보나'가 기준이었다. 사회탐구 과목도 기준에 있었지만 큰 잣대는 수리영역이었다. 문과생에게 수리영역은 선택이었지만 명문대 입학에서는 필수였다.

 

그래서인지 공부 꽤나 한다는 학생들이 4·5반에 몰리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 사이에서는 "4반이 서울대반이고 5반이 연·고대반이다"는 우스갯소리도 돌았다.

 

서울대나 연·고대에 입학한 친구들은 없었지만 1년 내내 서로에게서 우열의식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우리 반에서는 10등이지만 다른 반으로 가면 1등인데, 아깝다"는 식의 말도 들렸다. "이 반은 공부 좀 잘한다면서요?"하고 묻는 선생님도 있었다.

 

"몇 반 됐어?"라고 묻는 게 '벽'이었다

 

특보반도 그랬지만 이런 반 편성 결과로 인해 학생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던 건 사실이었다. "몇 반 됐어?"라고 물어봄으로써 친구의 성적을 헤아릴 수 있었던 그 해의 반 편성은 최악이었다.

 

내가 3학년일 때 같은 학교 1학년이었던 친척동생과 수다를 떨다가 마침 특보반 얘기가 나왔다.

 

"그거 아직도 있어?"

"있지. 근데 걔네들 맘에 안 들어."

"왜?"

"중간·기말 볼 때 선생들이 따로 문제를 찍어줬다나."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우열반#특별보충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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