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조 출근을 위해 저녁에 일어나보니 아이들이 시끄럽다.
"아빠, 우리 내일 봄소풍 간다."
딸이 들뜬 음성으로 말했다. 탁자 위엔 내일 아침에 싸보낼 과자와 음료수가 놓여져 있었다. 또한, 아침에 쌀 초밥 재료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우리집 아이들은 초밥은 잘 먹는데 김밥은 잘 먹지 않는다. 그래서 아내는 김밥 대신 초밥을 준비한다.
봄소풍 간다는 아이들을 보니 문득 내 어린 시절 봄소풍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 잊어 버릴만도 한 추억이 송글송글 물 속에서 거품 올라오듯이 떠오르고 있다.
지금은 아내가 자식들에게 봄소풍 갈 준비를 해주고 있지만 내 어려선 엄마가 내게 봄소풍 갈 준비를 해주셨었다. 김보다 파래가 더 많은 싸구려 김으로 싼 김밥이었지만 소풍때만 먹어보는 특별식이라 그런지 참 맛있었다.
속이라고 해봐야 당근, 단무지, 오이, 계란말이가 전부였지만 지금은 그때 엄마가 소풍때마다 싸주셨던 그 김밥 맛을 느껴볼 수가 없다. 밥은 달라 붙지 말라고 식용유 조금 넣어 버무려 김밥을 쌌었다.
요즘이야 김밥집에다 주문만 하면 소풍용 김밥을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지만 그땐 그나마 귀할 때였다. 엄마는 김밥을 굵직굵직하게 썰어 양은 도시락에 가득 넣고 뚜껑을 닫은 후 신문지로 말아 주셨었다.
그렇게 싼 김밥이랑 과자, 음료수를 가방에 넣고 소풍을 간다. 봄 소풍은 언제나 가까운 야산으로 갔다. 새록새록 피어 오르는 연두색 나뭇잎과 연분홍색 예쁜 진달래가 많은 산이었다. 그곳에 가서 도시락 까먹고는 오후엔 장기자랑이나 글짓기 등도 하고 보물 찾기도 한다.
나는 그 보물찾기에 관심이 많았지만 번번히 한 개도 못찾을 때가 많았다. 어떤 친구는 서너개씩 찾아 끼리끼리 나눠 가지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난 보물찾기에 소질이 없었다. 어쩌다 나뭇가지 틈새에 숨겨놓은 종이 쪽지 하나를 찾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달랑 공책 한 권이었지만 기분이 참 좋았다.
소풍을 마치고 집에 올 때면 소풍가방 속에선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김밥 먹으라고 엄마가 작은 젓가락을 넣어 주셨고 그것이 빈 도시락 속에서 걸을 때마다 덜그럭 거리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친구들끼리 장난치며 마냥 즐거운 한때가 소풍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소풍의 풍습은 그대로인 거 같다. 내 나이 40이 넘었지만 그때 그 봄소풍 추억들은 교실에서 하는 수업보다 잊을 수가 없다. 다시 돌아가고픈 그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