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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대필 작가들이 있다. 일명 '유령 작가'라고도 불리는 사람들, 그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스트 라이터>의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나'는 그렇고 그런 대필 작가다. 어느 정도의 이름은 알려졌지만, 그 분야에서 스타라고 불리기에는 아직 멀었다.

 

그런 때에 기회가 찾아온다. 전 영국 수상 애덤 랭의 자서전을 써주기로 한 것이다. 애덤 랭은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국제 외교에서 큰 활약을 펼치는 거물 정치인이다. 출판사가 그와 1천만 달러의 자서전 계약을 맺었다고 하니 그 주목도가 오죽하겠는가. 이런 사람의 자서전을 써준다면 그야말로 대박인데 그 기회가 오고 만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 영광이 '나'에게 온 것은 아니다. 이미 다른 대필 작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돌연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해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일까?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때마침 애덤 랭이 무리한 정치활동을 펼쳐 정치적 공세를 당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전 대필 작가의 죽음이 석연치 않기 때문일까? 이유는 모른다. '나'로서는 당장 경력과 돈이 필요할 뿐이기에 애덤 랭을 만날 뿐이다.

 

<폼페이>로 인기를 끌었던 로버트 해리스의 신작 <고스트 라이터>는 대필 작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쉽게 보기 어려웠던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필 작가만이 겪을 수 있는 그들만의 세계가 그려지는 것이다. 그 세계란 무엇인가? 그것을 위해서는 대필 작가라는 특수한 직업을 생각해봐야 한다.

 

대필 작가는 누군가의 것을 대신 써주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는 사람일까? 그들도 '작가'이기 때문에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 의뢰인을 구슬릴 줄 알아야 하고, 또한 의뢰인을 잘 유도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잘 돼서 의도하지 않은 것을 알아버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컨대 의뢰인의 거짓말 따위 같은 것 말이다.

 

<고스트 라이터>에서도 그런 일이 생긴다.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이 생긴다. 거짓말 같은 것은 애교(?)에 불과할 만한 일이다. 가령 범죄에 관한 것이면 어떨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는 다소 장난스러운 것이라면 대나무 숲 같은 곳에서 소리라도 지르면 된다. 그러나 사회를 놀라게 할 만큼 커다란 범죄라면 어떤가.

 

대필 작가가 그것을 알았을 때, 모른척 해야 할까? 아니면 진실을 폭로해야 할까? 폭로를 해도 문제다. 그걸 아는 사람은 ‘대필 작가’뿐이라는 것을 의뢰인과 대필 작가만이 알기 때문이다. 목숨에 위협을 느낄 만큼 위험한 일이다. 그러니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문제로 대필 작가라면 누구나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로버트 해리스는 얄미울 정도로 <고스트 라이터>에서 '나'를 몰아붙인다. 대필 작가로서 갈등해야 하는 것들을 최대한 부각시켜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데 그 덕분에 <고스트 라이터>는 그만의 즐거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소설 속의 '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의 고민과 갈등 덕분에 그 세계를 생생하게 엿보고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대필 작가로써 살아가는 어느 남자의 고뇌가 담긴 <고스트 라이터>, 건네는 이야기가 신선하며 그것을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이런 유령이라면 만나서 후회할 일은 없겠다.


고스트 라이터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3

로버트 해리스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2008)


태그:#로버트 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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