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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이파리 없는 목련이 늘 그렇듯 성급하게 꽃망울부터 틔웠다. 산수유 노랗게 흩어진 자태 옆으론 나비들이 하늘거린다. 아랫녘의 요란한 소문과는 달리 성남시에 아직 벚꽃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완연한 봄이다.

저녁나절 동네 호프집엘 들어섰다. 한 낮의 따사로움에 시원한 생맥주 한잔이 하루 종일 그리웠다. 별 달리 눈에 뜨이지도 않는 그저 평범한 호프집이다. 몇 번을 와봤어도 항상 함빡 웃음으로 반기는 30대 후반의 호프집 주인 김봉래씨의 푸근한 인상 외에는 별 특징도 없는 내부다.

지난번에 지갑을 빠트리고 무작정 왔다가 계산대 앞에서 황당해하자 주인은 그 특유의 환한 웃음으로 말했었다.

“그 덕에 조만간에 다시 오셔야겠네요. 저로선 더 잘 됐죠 뭐.”

덕분에 나는 자존심을 크게 다치지 않으면서 그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당장 남은 것은 세상에 널려있는 호프집 중에서도 크게 남은 특별한 인상이었다. 일이 그리되다보니 주인에게 관심이 가지 않을 리가 없는 일.

 봉사활동이 없는 날은 주방에서 조리까지 직접한다.
 봉사활동이 없는 날은 주방에서 조리까지 직접한다.
ⓒ 우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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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부터 그 집엘 가게 되면 별로 인상 깊지 않은 내부라도 자꾸 훑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어떨 땐 주인이 보이지 않고 못 보던 여자들이 분주하게 가게 안을 누볐지만, 은근히 서운한 중에도 그의 부재이유에 대한 의문을 갖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하나, 먼지 쌓여 구석에 틀어박힌 작은 유리패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감사패였다.

‘귀하의 봉사정신’이 어쩌구 하는 내용이 희미하게 읽혀졌다. 그 옆에 검정 파일 같은 것이 몇 개 겹쳐져 있기에 펴 봤더니 각종 상장과 감사장 같은 것들이었다. 밑 부분의 수여 측을 보니 금광동 동사무소, 성남 중원 경찰서, 자율방법협회 등이었다. 그 중엔 경찰서에서 주관하는 ‘시민경찰’ 교육을 이수하고 받은 수료증과 이런 저런 위촉장도 있었다.

‘참 바쁘게 사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밀려오는 호기심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물어보니 구청에서 주관하는 시민 방범활동과 동사무소에서 주관하는 각종 시민봉사활동에 빠지지 않고 나간다고 했다.

각종 상장과 상패들 모두 먼지가 뒤집어 쓴채 주인에게서 냉대를 받고 있었다.
▲ 각종 상장과 상패들 모두 먼지가 뒤집어 쓴채 주인에게서 냉대를 받고 있었다.
ⓒ 우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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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집이란 통상적으로 오후 늦게 문을 열어 새벽까지 장사하는 곳이다. 그런데 다른 봉사활동은 몰라도 시민방범대원으로 활약하려면 밤 시간의 영업시간과 겹치지 않은가. 그럼 장사는 어떡하고?

마침 주인이 보이는 날,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밀려드는 손님을 접대하느라 분주했다. 어쩔 수 없이 탁자로 가져온 파일들을 다시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데 마침 옆에서 빙그레 웃으며 서있는 주인을 발견했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나가거든요. 오후 열시에서 새벽 세시까지 주로 다니는데, 제가 나갈 땐 집사람이 와서 가게를 도와줍니다.”

“그 시간이라면 호프집으로선 한창 손님이 붐빌 시간일 텐데 일주일에 세 번씩이나 자리를 비우면 장사에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별 문제 없어요. 그런 걱정까지 들면 이런 생활 못합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별 걱정 없이 나가죠.”

한창 붐비던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서야 겨우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시원하게 호프 한 잔을 들이키는 김봉래씨가 별 거 아니라는 듯 웃었다. 이런 자랑스러운 물건들을 왜 먼지 속에 틀어박아 놓느냐고 해도 별 의미 없다는 듯 그는 손사래를 쳤다.

“주니 어쩔 수 없이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어 그냥 놔둔 거예요. 제가 살아오면서 받은 도움에 비하면 이까짓 거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 낯간지럽게 모셔두기엔 양심이 찔려서 말이지요.”

그가 너털스럽게 웃었다. 하기야 인생을 어찌 나 혼자 살 수 있으랴. 살다보면 보이게 안 보이게 주위의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일들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더구나 꼭 되갚으려 노력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무얼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그래요?”

“강원도 영월에서 중학교 졸업한 직후에 성남으로 올라왔습니다. 구두 회사에 다니게 되면서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고, 그 이후 구두기술자로 살면서 이곳 금광동에 뿌리를 내렸습니다만, 구두산업이 여의치 않아 가락동 시장에서 장사를 몇 해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제가 신세 진 사람들이 트럭으로 몇 대는 될 겁니다.”

그런 경우에도 그 유명한 트럭 이야기를 갔다 붙일 수 있는 건가? 어쨌든 그는 불현듯 사회 봉사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단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당장 시간에 쫓겨 사는 가락동 시장생활이 맞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그 생활을 미련 없이 접고 자신을 키워준 성남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옛 모교인 금상초등학교(그 자리는 전에 ‘성남 서 고등학교’ 자리이며 김봉래씨가 그 학교 야간반을 다녔다.) 근처에 ‘예스치킨’이라는 호프집을 개업했다.

 가게 간판
 가게 간판
ⓒ 우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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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곧바로 시청과 구청, 동사무소와 경찰서 등을 막론하고 자신이 필요하다면 어느 봉사활동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연전에 전북의 눈사태 때 며칠 봉사를 다녀오고 강원도 물난리 때도 봉사에 참가했다. 태안해변의 기름제거 작업 역시 당연히 다녀왔다.

나중엔 아예 ‘시민경찰’ 교육을 정식으로 이수하고 구청에서 주관하는 ‘시민방범대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다 좋지만 그러면 가게 영업에 지장이 많지 않으냐고 물으니 그가 손을 내저었다.

“봉사활동을 한 이후로 제 자신 웃음이 많아졌습니다. 손님들 앞에서도 더 잘 웃게 됐죠. 그러니 손님들도 싫지 않겠지요. 그래서 더 많이 찾아와 주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저 모두가 다 고마운 일이지요.”

하긴 이것저것 다 먹고 나서 계산대 앞에 선 사람이 지갑이 없다는데도 웃음으로 보내줄 수 있는 힘은 그리 범상한 것이 아니다. 그다지 특징적이지는 않지만 왠지 모르게 가게 안을 흐르는 따사로운 분위기는 이제 막 피어오르는 봄을 닮았다. 그것은 그 집 주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매우 특징적인 분위기다.

“에이 제 가게에 뭘 쓸게 있다고 그래요?”

사진을 몇 장 찍자 그는 자신이 무슨 기사감이 될 수 있겠느냐며 그저 웃었다. 다시 보니 참 겸손한 웃음이었다.

 그의 웃음이 가게의 분위기를 푸근하게 유지시켜 준다.
 그의 웃음이 가게의 분위기를 푸근하게 유지시켜 준다.
ⓒ 우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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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우리 동네(학교) 맛집> 응모글



#김봉래씨의 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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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장편소설 (족장 세르멕, 상, 하 전 두권, 새움출판사)의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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