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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비에 물오른 나뭇가지들이 새순을 내놓고 있다.
▲ 단풍나무 봄비에 물오른 나뭇가지들이 새순을 내놓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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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있어 고마운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묵묵히 우리 곁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또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고마운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고마운 것에 대해 예의를 갖추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무. 우리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맑은 공기와 꽃과 열매뿐 아니라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존재입니다.

향이 좋은 나무, 모과나무도 하나 둘 새순을 내고 있다.
▲ 모과나무 향이 좋은 나무, 모과나무도 하나 둘 새순을 내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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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유난히도 자주 내리는 요즘입니다. 피어난 풀꽃들은 애써 단장한 빛깔을 봄비에 빼앗기기도 하지만 겨우내 비썩 말랐던 나무에게는 단비겠지요. 물오른 나무, 그들이 새순을 힘차게 내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연록의 색깔이 숲을 물들여가고, 채워가고 있습니다.

'이 나무들은 어떤 꽃을 피울까?'

하나 둘 상상을 하면서 나무의 마음을 읽어봅니다.

피어날 꽃을 준비하기 위해 새순을 냈다.
▲ 찔레 피어날 꽃을 준비하기 위해 새순을 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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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매일매일 변합니다. 오늘 보는 나무가 어제 보았던 그 나무는 아닙니다. 매일매일 조금씩 변하는 나무의 한해살이나 풀꽃들의 피고짐을 필름에 담아 고속으로 보면 그들이 살아 숨쉬고 있음이 실감나지요.

지구상의 식물 가운데 가장 천천히 자라고, 가장 천천히 변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나무입니다. 맨 처음 씨앗이 싹을 틔운 후 단 한 번도 그들은 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에게서 '쉼의 철학'을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걸음걸이에 있습니다.

아주 천천히 걸어가는 걸음걸이, 그 자체가 일이고 여행이고 삶이니 나무에게는 일하는 것과 쉬는 것의 경계가 없습니다.

줄기를 벗기면 하얀 국수발 같은 나뭇가지란다.
▲ 국수나무 줄기를 벗기면 하얀 국수발 같은 나뭇가지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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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한 번 뿌리를 내리면 그곳이 옥토든 척박한 곳이든 평생 그 곳에서 살아갑니다.

아무리 커다란 나무도 맨 처음 시작은 씨앗이었을 것입니다. 씨앗은 자신이 살아갈 곳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뿌리를 내릴 곳에 대한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위틈이건 절벽이라도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암벽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의 자태는 멋집니다. 암벽이라는 장소에서 감내해야만 했던 수많은 어려움들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어려움들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그렇게 멋진 나무가 될 수 없었겠지요.

향기가 참 좋은 꽃을 피운다. 열매가 쥐똥을 닮아 쥐똥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 쥐똥나무 향기가 참 좋은 꽃을 피운다. 열매가 쥐똥을 닮아 쥐똥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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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나무도 살아가면서 상처를 입습니다. 나뭇가지가 부러지기도 하고, 벌레의 습격을 받기도 하고, 병균이 침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 일들을 잘 극복해 낸 증거가 나무의 '옹이'입니다. 옹이는 나무의 향이 가장 깊은 곳이요, 가장 단단한 곳입니다.

나무는 아무리 힘든 일, 심지어 자신이 잘려나가는 일이 있어도 남은 밑둥에서 새로운 싹을 냅니다. 살아있는 한 포기하는 일이 없습니다. 잘려나가지 않은 다른 나무들을 보면서 신세한탄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기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합니다.

상처를 이겨낸 흔적이다.
▲ 나무의 옹이 상처를 이겨낸 흔적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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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아가면서 상처를 당하는 경험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받은 상처를 잘 극복해서 자신의 삶을 더욱 더 깊게 만듭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적개심을 키웁니다. 결국 그 적개심으로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에게까지도 치명적인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상처를 극복한 사람들과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구분이 가질 않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혹은 높은 위치에 올라가게 되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신은 우리에게 '견딜 만한 아픔' 외에는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내가 겪고 있는 아픔 혹은 상처, 그것은 이미 그 누군가가 넉넉하게 이겨냈던 아픔 혹은 상처입니다.

봄비 내리는 날, 물오는 나뭇가지에 새순이 터지고 있는 것을 바라봅니다. 참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저 나무가 있어 여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구나,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새순을 보며 새순 안에 담긴 꽃을 미리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나무, #M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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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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