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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제3의 눈 (1∼8)

- 그림 : 하야세 준 / 글 : 야지마 마사오

- 펴낸곳 : 닉스미디어(2001∼2002)

 

요 몇 달 사이 일요일 아침마다 성당에 나들이를 갑니다. 옆지기가 세례를 받으라며 손을 붙잡고 이끌기도 했지만, 이보다는 ‘예비자 교리 공부’가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들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얼마 뒤, 신부님이 보시기에 ‘젊은 사람이 어르신들 틈에 있기보다는 따로 하는 편이 낫겠다’면서 저와 젊은 아가씨 한 사람을 수녀님하고 1:1로 배우도록 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 옆에 앉아서 책을 읽어 드리는 일도 재미있었는데, 젊은내기만 쏙 빠지니 퍽 미안합디다. 그러나 어르신들도 ‘당신들 느끼기에 이게 낫겠다’고 생각하시는 듯.

 

한편, 수녀님한테 따로 배우는 일이 적이 짐스러웠지만 한 주 두 주 지나는 가운데 ‘남들은 못 받는 선물’을 받는 셈이더군요. 그리고 천주교라는 종교를 놓고 궁금했던 대목을 마구마구는 아니지만 속시원히 여쭙고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가 일요일 이른아침에 작은 책 하나 가방에 넣고 사진기는 어깨에 걸친 채 성당까지 골목길 마실을 하는 셈입니다.

 

조금 일찍 집에서 나와 아직 동이 트지 않은 골목길을 누비며 사진을 찍는다든지,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겨울 햇살이 살며시 드리우는 골목집 담벼락과 꽃그릇과 지붕 들을 사진으로 찍는다든지 하면 즐겁습니다.

 

오늘은 ‘미나리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골목을 걸으면서 ‘서른 해는 훌쩍 넘겼으리라 느껴지는 녹슬은 쇠창살 담장을 감고 자랐으나 겨울이 되어 말라죽은 덩굴풀’ 사진을 몇 장 담습니다. 사진으로 찍기 앞서, 또 사진으로 담은 뒤 속으로 ‘이야! 이야!’ 하는 짧은 외침이 끊이지 않습니다.
 
문득, 이 골목집, 또 골목길 들은 오랜 세월 이 한 곳에서 고즈넉히 버티어 왔기 때문에 고마운 사진감이 되는구나 싶어요. 서른 해 세월을 묵은 집은 서른 해 세월대로, 쉰 해 세월을 묵은 집은 쉰 해 세월을 묵은 대로, 예순 해 세월이나 일흔 해 세월을 묵은 집은 또 그만한 세월대로 사진기 구멍에서 반짝반짝 빛나 보입니다.

 

가만히 보면, 하루하루 다 다른 골목길이요 골목집입니다. 새벽과 아침이 다르고, 어스름과 땅거미가 다릅니다. 낮과 저녁이 다르고 구름 낀 날과 쨍쨍한 날이 다릅니다. 비오는 날과 눈오는 날만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옆지기 말을 안 듣고 성당 나들이를 안 했다면 이 온갖 모습을 몸으로 깊숙이 못 느꼈을 테고, 사진으로도 못 담았을 테지요.

 

만화책 <제3의 눈>을 보면서 이런 느낌이 끊이지 않습니다. 주간잡지사 사진기자로 뛰는 이들한테는 주마다 특종을 건져내어 잡지 부수를 한껏 드높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들 말하는데, 특종이란 하늘에서 툭 하고 떨어지지 않아요. 우리 삶이 바로 특종입니다.

 

만드는 특종이 있으나 이루어지는 특종이 있습니다. 비행기가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다고 해도 그 둘레를 지나가다가 보아야 찍지, ‘어디로 비행기가 떨어진다더라’ 하는 소식이 먼저 알려질 수 없습니다. 길을 걷다가 넘어지며 장바구니를 길바닥에 쏟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려 해도 억지로 꾸밀 수 없어요. 우리가 그 자리에서 살아가야, 더욱이 늘 사진기를 손에 쥐고 찍을 준비가 되어 있은 다음에야 찍습니다.

 

 종군 사진기자는 싸움터를 자기 삶터로 여깁니다. 정치부 사진기자는 국회를 자기 삶터로 여깁니다. 주간잡지사 특종 캐는 사진기자는 삶터가 어디일까요. 바로 길입니다. 우리 도시이거나 시골입니다. 우리 동네이거나 마을입니다. 머나먼 나라가 아니라 바로 우리 둘레입니다. 낯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서 숨쉬고 살아 있는 이웃입니다.

 

삶이 배이니 특종 한 건으로 그치지 않고 잇따르는 특종이 됩니다. 이름값 키우는 특종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으니 주간잡지는 나날이 독자들한테 사랑을 받으면서 스스로 사진힘을 얻습니다. 우리들한테 콧물눈물 질질 흘리게 하거나 웃음 한 바가지 선사하는 훌륭한 소설은 책상머리에서 얻을 수 없습니다. 소설꾼이 온몸과 온마음으로 자기 삶터에서 무엇인가 부대끼고 염통까지 다 들어내고 뽑아내는 피울음이 있을 때 비로소 얻습니다.

 

누군가는 ‘기다리는 아름다움’이라 했지만, ‘살아내는 빛남’을 바탕에 깐 기다림이 아닌 바에야 특종은 못 나오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자전거를 안 타고 두 다리로 걷지 않는 국회의원이 서민 삶을 알 턱이 없고 서민 경제를 북돋울 수 없지요? 자전거를 안 타거나 두 다리로 걷지 않는 사진기자, 또는 사진작가는 그럴싸한 작품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우리 가슴에 깊이깊이 물결치는 아름다움을 베풀어 줄 수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사진잡지 <포토넷>에 함께 싣습니다.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책+헌책방+우리 말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제3의 눈 7

마사오 야지마, JUN HAYASE 지음, 닉스미디어(2002)


#절판#제3의 눈#사진#사진책#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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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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