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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선생의 대표작들을 많이 들어는 왔으나 정작 제대로 읽은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수많은 동화들을 이제부터라도 찬찬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다.

 

동화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글이지만 어른들도 동화를 통해 마음을 정화할 필요가 있다. 세파에 눌려 살다보면 동심을 잊고 살게 마련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동심과 마주할 때 얼마나 깊은 감동을 받게 되는지.

 

이 책은 선생의 산문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전쟁으로 황폐화된 조국으로 건너와 야만적인 시대를 온몸으로 견디며 힘겹게 살아온 삶의 이력이 켜켜이 녹아 있었다.

 

평생을 낡고 허름한 공간에서 몸의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도 그토록 아름다운 동화를 쓸 수 있다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돈을 잔뜩 벌어 남을 구제한다는 마음보다 내가 좀더 가난하게 덜 차지하기만 해도 그게 바로 이웃을 위하는 일인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이런 물질의 평등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함께 있는 사회구조로서는 절대 민주주의가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부자는 그 부를 지키기 위해 권력과 결탁을 할 테고 가난한 사람은 굶어죽을 수 없으니 자연히 권력에 맞서 싸워야 하니까요. 가난한 사람들의 목숨도 목숨입니다. 살기 위하여서는 누군들 자기 몫을 찾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 <우리들의 하느님> 70쪽

 

텔레비전이나 지면을 통해 우리는 '부자'라는 말, '재테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직장인들의 소망을 들어보면 대게 '잘 먹고 잘 사는 거'다. 넓고 좋은 집에 살며, 비싸고 고급인 차를 가지면 잘 사는 걸까? 겉으로 보기에는 잘 사는 게 맞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 잘 사는 게 아니지 않은가? 우리 마음속을 잘 들여다보면 그런 행복은 아주 잠깐 느끼는 희열일 뿐이다. 그 이면에는 '공허'가 자리하고 있다.

 

'공허'를 이기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선생의 수많은 저작을 통해 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법정 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와 <무소유> 같은 책이 떠올랐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공통된 것은 청빈한 삶이다. 우리가 성직자처럼 살 수 는 없지만 그들이 사는 모습의 얼마만이라도 닮고자 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산과 바다는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그들은 수세식변소도 없고, 일류 패션디자이너도 없고, 화장품도 없는데도 어째서 그토록 깨끗하고 아름다울까? 물 한 방울, 공기 한줌도 그들은 더럽히지 않는다. 수천만 원씩 들여 음악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그저 그날 살아갈 만큼 먹으면 되고 조그만 둥지만 있으면 편히 잠을 잔다. 절대로 쩨쩨하게 수십 채의 집을 가지거나 수천만 원짜리 보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부처님께 찾아가 빌지 않아도, 예배당에 가서 헌금을 바치고 설교를 듣지 않아도 절대 죄짓지 않고 풍요롭게 산다.

- <우리들의 하느님> 80쪽

 

선생은 평생을 산골에서 소박하게 살며 수십억에 이르는 재산을 북한 어린이와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아시아의 어린이에게 모두 기부했다고 한다. 이 책은 풍요로운 시대에 결핍을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새겨야 할 책이다. 진리를 이토록 쉽고 감동적으로 쓸 수 있는 게 참 놀랍다. 더 많이 가지지 못해 마음이 괴로운 사람들이나 욕심이 자꾸 늘어간다고 생각이 될 때, 불평 불만이 쌓여갈 때 우리 영혼을 자유롭게 만들어 줄 책이다.


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녹색평론사(2008)


#권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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