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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횡성을 찾는 관광객들의 통역과 안내 업무를 하며 한국을 알리는 아델파 씨.
강원도 횡성을 찾는 관광객들의 통역과 안내 업무를 하며 한국을 알리는 아델파 씨. ⓒ 황원종

 

지난달 3일 SBS 주말드라마 <황금신부>가 막을 내렸다. 베트남 며느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드라마는 우리 사회 속의 외국인 며느리에 대한 편견을 씻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드라마 밖 우리 주위에도 이러한 편견을 넘어 함께 하는 이웃이 있다. 바로 필리핀에서 온 아델파 빌라도레스(43)씨가 그 주인공. 이제는 어엿한 세 딸의 어머니이자 관광객에게 강원도 횡성을 안내하는 문화 전도사 아델파씨를 지난 7일 만났다.

 

아델파씨가 하는 일은 먹거리단지 내 관광안내소에서 횡성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통역과 지역안내를 해주는 것이다. 그녀는 일주일에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까지 근무한다. 그녀의 안내를 받는 사람은 하루 평균 20명 정도.

 

그러나 이용객의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고 그도 지리를 묻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아델파 씨는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람, 걸려오는 한 통의 전화에도 성심껏 답변한다. 그녀는 "외국인들은 한우 축제 같이 큰 행사가 있을 때 많이 찾아온다"며 "한국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 지을 것이란 생각에 매사에 조심히, 그리고 성실히 대한다"고 말했다.

 

아델파씨가 지금의 관광객 안내 업무를 시작하게 된 것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동네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쳤는데 그때 한 수강생이 군청에서 안내 업무를 할 사람을 찾는다며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됐다.

 

아델파씨는 현재 남편과 은지(12), 은하(10), 은희(8) 세 딸을 키우며 살고 있다. 아이들 얘기가 나오자 그녀의 얼굴엔 환한 웃음이 감돌며 얘기가 그칠 줄을 몰랐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그렇듯 착하고,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딸들 자랑에 아델파씨는 조금은 상기된 모습을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지난 1996년 1월, 아델파씨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올해로 12년째다. 그녀는 고향에 있는 통일교회 목사의 주선으로 지금의 남편을 소개받았다. "실제로는 남편이 저보다 5살 많지만 처음 봤을 때는 제가 누나인줄 알았을 정도로 어려 보였어요"라며 "첫 느낌은 순수하고, 그냥 애기 같았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델파씨는 자신처럼 한국인 남성과 연을 맺은 250여 쌍의 커플들과 함께 마닐라에서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다행히 부모님도 남편을 맘에 들어 했기에 결혼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신혼의 단꿈에 빠지기도 전에 아델파씨와 남편은 헤어져야만 했다. 교회 규정상 남편은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아델파씨는 나중에야 한국에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는 아쉬움만 한껏 남긴 채 서로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러다 그 해 11월 달에 아델파 씨는 한국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한국에 왔다고 아델파씨가 바로 시댁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국제결혼의 특성상 서로 간의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 교회에서 40여 일간 생활하며 한국말과 요리 등 전반적인 한국 문화를 배워야만 했던 것이다.

 

"하루는 남편이 저를 데리고 잠깐 시댁에 갔는데 어머님이 저를 위해 음식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남편이 미리 얘길 해주지 않아 먼저 저녁을 먹은 바람에 음식을 많이 못 먹었어요. 어머님이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느냐고 물으셨죠. 그래서 솔직히 밥 먹고 왔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어머님이 오히려 솔직히 얘기해 주니 더 고맙다며 앞으로도 어려운 점 있으면 솔직하게 다 말하라고 하셨어요"라며 시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꺼내놓았다.

 

시부모님은 아델파씨가 타국에서 외롭지 않도록 딸처럼 지극히 대해주셨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난 2002년과 2003년,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차례대로 돌아가셨다. 아델파씨에게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아픔이었다. 또한 그럴수록 필리핀에 있는 부모님 생각이 커졌다. 하지만 아델파씨는 1996년 필리핀을 떠나와 지금껏 두 번 밖에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부모님은 한국에 한 번도 와보지 못했는데 좀 더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 한국으로 모시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그녀의 꿈은 나중에 고국으로 돌아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다. 아델파씨는 "아이들이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합기도도 열심히 배워 나중에 가능하다면 필리핀에 가 이웃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어요"라며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냈다.

 

아델파씨는 처음 한국으로 시집왔을 때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힘든 부분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주위의 도움으로 이제는 당당한 한국여성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됐고 그런 만큼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가끔 피부색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보단 잘해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 생활하는 데 크게 어려운 점이 없다"는 아델파씨의 말처럼 타향살이를 하는 외국인들에게 편견이 아닌 이해와 사랑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필리핀 며느리#국제결혼#아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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