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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은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일어난 지 꼭 백일째 되는 날입니다. 진태구 태안군수가 검은 기름 덩어리와 싸우며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보냈던 날들을 회고하는 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말]
지난해 12월 7일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 유출 사고가 15일로 100일째를 맞는다. 100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의 노력으로 태안 해변가는 빠른 속도로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100일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꿈을 꾸다 방금 깨어난 듯하다. 

태안을 덮친 '검은 괴물'... 우리는 이겨냈다 

기름에 찌든 철새 2007년 12월 검은 괴물이 태안 바다를 덮쳤다.
기름에 찌든 철새2007년 12월 검은 괴물이 태안 바다를 덮쳤다. ⓒ 신문웅

사고 발생 당시에는 피해가 이렇게까지 클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해상에서 사고가 일어난 데다 풍랑이 높아 현장에 접근할 엄두를 낼 수 없어 사고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튿날 떠밀려 오는 기름 덩어리는 말그대로 '검은 괴물'이었다. 몇 날 며칠을 치워도 줄지 않는 기름띠. 원상태로 회복이 불가능할 것 같은 바다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청년 시절 월남전에 참전해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기도 했지만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끔찍한 재앙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전국에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물밀 듯이 달려와 '인간띠'의 기적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와 눈발이 날리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돌 틈에 낀 단 한 방울의 기름이라도 제거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부산에서 꼬박 12시간을 달려왔지만 작업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쉬운 발길을 돌리기도 했던 사람들. 이들의 힘이 바로 대한민국의 저력이고 태안의 기적을 만들어낸 주인공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의 활동 내용도 다양했다. 고사리 손으로 쓴 격려 편지부터 시각 장애인들의 안마봉사, 태안으로 신혼 여행을 와 봉사활동을 하던 신혼부부, 천 마리 종이학을 접어 보낸 일본 유학생들, 교도소에서 복역수가 보내온 성금 등. 어느 하나 감사하지 않은 손길이 없어 고마운 마음에 눈시울이 붉혀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이처럼 각계각층의 잇따른 봉사와 태안을 응원하는 목소리는 주민들의 시름을 달래는 보약이 됐다.

태안특별법 제정은 한편의 드라마

 전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 절망에 빠진 태안에 큰 힘이 됐다.
전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 절망에 빠진 태안에 큰 힘이 됐다. ⓒ 정대희
그러나 가슴 아픈 일도 많았다. 태안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의 반입이 금지되고 멀쩡한 농산물도 소비자에게 외면을 당했다. 또 연말 성수기 펜션과 횟집 등 관광업종의 예약이 완전 취소되는가 하면 그 이후로도 업소에는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까지 이르렀다. 누군가의 말처럼 태안은 핵폭탄을 맞은 것보다 더 처참한 도시로 변했다.

주민들은 삶이 힘들어 세 명이나 고귀한 생명을 끊었다. 지금도 대다수의 주민들은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태안 현장을 찾아오는 정부 관료와 정당인 등 고위층 인사들을 붙잡고 "태안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특히 피해구제에 관한 특별법 제정은 한편의 극적인 드라마였다. 50여차례의 건의와 17대 마지막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배수의 진을 친 결과 2월 22일 법률안이 통과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현재 태안군민들의 고통은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실의에 빠져있는 주민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국민들이 방제작업에서 보여주었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이다. 지속적으로 주민들의 상처와 상실감을 어루만져 주었으면 한다.

국민에게 진 빚, 꼭 갚겠습니다

최근 많은 분들이 태안 경제살리기 운동에 참여하고 있고, 관광객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태안에서 잡히는 수산물도 안전성검사를 거쳐 판매되기 때문에 아무 문제없이 먹을 수 있다.

끝으로 유류유출 사고 100일에 즈음하여 13일 내일 태안군 전공무원과 군의원, 자원봉사자 등이 한 장소에 모여 방제작업을 실시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려 한다. 희망을 잃지 않고 일어서겠다는 의지다. 앞으로 우리는 재해·재난현장 어느 곳이든지 단숨에 달려가서 국민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제 태안반도는 빠르게 예전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거쳐간 해변마다 검은 모래, 검은 자갈이 하얗게 바뀌고 있다. 절망의 검은 바다를 희망의 바다로 바꿔놓고 있는 현장을 보면서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정말 '사람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이번 기름유출 사고를 통해 깨달았다.

고맙습니다. 국민여러분! 그리고 태안을 찾아주신 100만 자원봉사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태안반도기름유출#진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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