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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낭만의 여정, 빈(Wien). 빈의 거리는 살아있는 예술 그 자체이고, 빈의 케른트너 거리(karntner Strasse)는 그 예술의 살아있는 집합체이다. 슈테판 대성당(Stephansdom)에서 국립 오페라 극장 부근의 케른트너 링에 이르는 약 600m 거리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화려하고 번화한 대로가 펼쳐지고 있다. 이 넓은 대로에 차는 전혀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이 케른트너 거리는 오스트리아 최고의 이름을 가진 문물을 감상하며 산책을 하기에 가장 좋은 거리이다.

케른트너 거리.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번화한 대로이다.
▲ 케른트너 거리.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번화한 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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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장 많은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는 슈테판 광장(Stephans platz)에서부터 이 거리를 답사했다. 슈테판 광장에서는 다양한 퍼포먼스와 거리의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 풍선을 파는 피에로, 중세의 복장을 입고 음악회 티켓을 파는 사람들, 주먹만한 공을 가지고 저글링 서커스를 하는 사람, 화폭 위에 입체로 표현한 그림을 파는 거리의 화가. 이들의 활발한 움직임들은 거리를 관통해서 도시를 풍요롭게 하고 있었다.

풍선을 파는 피에로. 전통복장을 입은 이들은 음악회 티켓을 팔고 있다.
▲ 풍선을 파는 피에로. 전통복장을 입은 이들은 음악회 티켓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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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심코 케른트너 거리를 걷다가 거리의 바닥에 무언가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대로 바닥에는 큰 별이 그려져 있고, 그 별 속에 음악사를 빛낸 사람들의 이름과 사인이 새겨져 있었다. 오스트리아와 빈의 음악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왜 이 케른트너 거리 바닥이 온통 음악가들의 사인으로 뒤덮여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대학시절, 유럽 음악사 한 과목을 수강했던 기억을 되살렸다. 나는 길바닥을 유심히 보며, 이 거리의 음악 스타들을 살펴보았다. 모차르트와 대립했던 것으로 알려진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불멸의 오페라 작품들을 남긴 지아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백조의 호수'를 남긴 러시아의 작곡가 페테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화려한 바이올린 연주로 유명했던 니콜로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 낭만파 음악의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그들은 현세를 떠났지만 이 거리에 그려진 별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나는 가끔 푸른 하늘을 한 번씩 쳐다보면서 천천히 산책을 했다. 이 거리의 세련된 쇼핑가에는 누구나 들어도 알 만한 세계적인 명품 가게들도 널려 있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지만 쇼윈도 너머의 예쁜 상품들을 보며 눈만 즐겁게 했다. 들어가서 직접 보고 싶은 특산품 가게들도 눈에 띄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거리의 중앙에 자리한 휴식 의자에서 다리를 쉬면서 이동을 했다. 일요일이지만 기념품 가게들은 문을 열었다. 역시 이곳에도 오스트리아 대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초콜릿 가게들이 눈에 띈다. 초콜릿들은 대부분 모차르트 초콜릿 일색이다. 슈테판 광장 근처에서 모차르트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는 이름부터 'Mostly Mozart'이다.

하스 하우스. 중세의 건축물들 사이에서 강렬한 새로움을 자랑한다.
▲ 하스 하우스. 중세의 건축물들 사이에서 강렬한 새로움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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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을 꼽으라면 그 것은 슈테판 성당 맞은편에 자리 잡은 하스 하우스(Haas Haus)이다. 1990년, 빈의 상징인 슈테판 광장 전면에 등장한 이 건물은 디자인이 대담하기 그지없다. 중세의 건축물이 가득 들어선 슈테판 광장에 현대 건축물의 진수인 전면 유리창이 강렬한 새로움을 뽐내고 있었다.

거대한 불투명의 검은 유리벽은 마치 거울과 같이, 빈의 푸른 하늘 뭉게구름과 슈테판 성당을 담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 하스 하우스 맨 위층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슈테판 광장을 구경할까 하다가 마음을 접었다. 빈의 문화를 담은 노천카페에서 마시는 커피가 더 맛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날씨는 푸른 하늘이 시릴 정도로 맑았고, 이런 날씨에 어울리는 노천카페들이 눈에 띄었다. 거리에 나와 있는 수많은 노천카페의 테이블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노천카페에 앉은 사람들은 커피도 마시고 와인도 마시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낮의 햇볕 속에서 여유를 즐기며 앉아 있는 모습이 운치가 있다.

노천카페. 노천카페에서 한 잔의 비엔나 커피를 마신다.
▲ 노천카페. 노천카페에서 한 잔의 비엔나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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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엔나 커피의 고향에서 비엔나 커피를 마셔보기로 하였다. 빈에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빈에는 정확히 '비엔나 커피'라는 이름의 커피는 없다. 나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한 노천카페에 들어섰다. 빈에서의 여행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나는 일부러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나는 비엔나 커피와 비슷한 모습을 가진 커피, '카페 멜랑쥐(melange)'를 주문했다. 갈색 커피의 거품이 커피 잔을 넘칠 정도로 가득 찬 멜랑쥐의 모습은 일품이었다. 커피와 항상 같이 나오는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멜랑쥐 한 잔의 그윽함을 음미해 본다. 커피에서는 초콜릿의 향취가 느껴지는 듯 했다. 그런데 나는 빨리 마시려는 욕심에 커피를 휘휘 저어버렸다.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이다.

아내는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라는 뜻을 가진 아인슈페너(Einspanner)를 주문했다. 아인슈페너는 커피 맛에 있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엔나 커피와 가장 비슷한 맛을 낸다. 짙은 검은색의 블랙커피 위에 옅은 갈색의 커피가 층을 이루고, 그 위에 흰 거품이 가득한 휘핑크림이 얹혀 나온다. 삼단을 이루는 색의 대비가 자극적일 정도로 강렬했다. 아내는 상당량의 블랙커피 원액 때문에 설탕을 넣어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커피를 즐기게 된 것은 삼백 여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1683년 오스만 투르크와 치열한 전쟁을 치렀고, 그 전쟁의 와중에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유럽 최초로 커피를 받아들이는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빈은 유럽에서도 커피의 향과 맛이 뛰어나고 커피의 종류도 가장 많은 것으로 이름나 있다.

타르트. 과일 타르트의 맛이 달고도 상큼하다.
▲ 타르트. 과일 타르트의 맛이 달고도 상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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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천카페의 전시장에 진열된 과일 타르트(tarte)를 주문해 보았다. 이 타르트는 둥근 모양의 작은 파이접시에 밀가루와 버터 반죽을 넣고, 과일로 속을 채운 후 구운 것이다.

타르트 오 폼(Tarte aux Pommes)의 밀가루 반죽 위로 보이는 재료는 사과였다.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먹는 애플파이의 가벼운 맛과는 달리 사과의 깊고 단 맛이 입속 가득히 전해졌다. 타르트 오 시트롱(Tarte au Citron)은 레몬을 넣고 구운 파이였다. 레몬을 넣은 이 파이는 맛이 상큼하면서도 개운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이 타르트를 비엔나가 아닌 다른 곳의 허름한 빵집에서 맛보았다면? 여행자들을 한없이 낭만적으로 만드는 도시 빈에서 맛본 타르트였기에 이렇게 맛있지 않을까? 나는 비엔나의 이 노천카페에 반해 타르트의 맛을 찬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타르트의 진짜 맛 위에 과장된 느낌이 덧씌워져 있지 않을까?

나는 눈을 감고 타르트를 다시 먹어 보았다. 역시 맛있었다. 내 입속에서는 살살 녹는 타르트 위에 멜랑쥐가 합쳐지고 있었다. 얄미울 정도로 커피와 파이는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빈의 여인.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지만 스타일이 살아 있다.
▲ 빈의 여인.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지만 스타일이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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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기에 노천카페 만한 곳이 없다. 나는 바람이 산들거리는 카페에 앉아 눈앞을 스치는 사람들을 구경하였다. 게르만족의 나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거리에는 튼튼하고 늘씬한 여인들이 경쾌한 걸음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들은 화려하게 차리지 않았지만, 스타일이 살아있었다. 단순하면서도 촌스럽지 않은 패션은 빈의 화려한 문화적 토대 위에서 이어져 왔을 것이다.

아내는 노천카페에서 나와 다시 길을 걸었고, 문 닫힌 가게 쇼윈도의 옷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빈#케른트너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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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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