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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각오가 필요했습니다. 지금껏 일주일에 한 번은 자전거 혹은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해 왔습니다. 스스로 강제 규정이라고 여기며 차량 5부제를 성실히 지켜온 겁니다.

어느 정도 몸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젠 일주일에 이틀, 사흘 늘려볼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동차를 종국에는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당장 교통카드가 필요했습니다.

이태 전 이곳 광주광역시에도 대중교통이 환승 체계로 개편되면서 자가용이나 택시 등 다른 교통수단 못지않게 빨라지고, 또 편리해졌다는 말을 종종 들었기 때문입니다. 노선이 직선화되다 보니 웬만한 곳은 환승을 하지 않으면 갈 수 없어, 결국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교통카드는 신분증 같은 존재입니다.

예전에 언뜻 듣기를 버스 정류장 근처 가게에서 팔고, 또 충전도 할 수 있다기에 퇴근 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차디찬 밤바람 맞아가며 자전거를 타고 버스 정류장마다 1시간 넘게 돌아다녔지만, 끝내 구할 수 없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어디 가면 살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학교 근처 문방구에 가면 구할 수 있을 거라고 귀띔해주었습니다. 통학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교통카드를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학교 앞 문방구와 서점을 뒤졌습니다. 귀띔해준 대로 있었습니다. 단지 학생용만! 주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어른용 교통카드는 취급하지 않느냐고. 인근 중고등학교 다섯 곳을 헤매 다녔는데, 마치 미리 입을 맞춘 듯 이유는 똑같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른들의 이용률이 학생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겁니다. 조금 과장이 섞인 푸념일 테지만, 언젠가는 한 달 간 충전하러 온 사람이 열 명도 안 되더랍니다. 교통카드에 대한 홍보가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충전하는 일이 번거로워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수요가 없으니 기계를 치우게 되었다는 겁니다.

나아가 꼼꼼하게 수치를 대며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마진이 달랑 0.5%인데, 솔직히 이런 귀찮은 일을 누가 하겠느냐는 겁니다. 더욱이 세금을 제하고 나면 순수하게 얻는 이득은 0.3% 남짓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만 원을 충전하면 달랑 30원을 벌게 되는 겁니다.

더욱이 충전용 기계를 구입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라고 합니다. 대당 가격이 160만 원을 넘는다고 하니, 앞서 말한 마진 가지고는 기계 값 뽑는 것조차 결코 쉽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임대와 같은 방식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게 가능했다면 누가 샀겠느냐고 반문하며, 이미 구입한 사람조차 손해를 감수하고 반납하는 실정이라고 했습니다.

인구 140만 명이 넘는 거대 도시, 광주광역시에서 판다고 ‘자신할 수’ 있는 곳은 도심 주변뿐이라며 그곳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도 아니면 이런 방법도 있다고 했습니다. 한 시중 은행에서 교통카드를 겸한 신용카드를 판매하고 있는데, 후불제이므로 충전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상대적으로 분실 위험이 적어 쓸 만하다는 겁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특정 은행과 거래해야 하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진 셈입니다.

광주광역시에서는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야심차게 버스 환승 체계를 갖췄고, 지하철 1호선에 이어 순환선 착공 계획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간선도로와 나란히 자전거 전용도로를 구상하는 등 이른바 대중교통의 수송 분담률을 높이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통카드 충전소를 확충하고 대중교통 이용자에 대해 혜택을 주는 등의 세심하고 다양한 후속 조처는 눈에 띄질 않습니다. 굵직굵직한 ‘하드웨어’에 대한 관심과 투자에 견준다면 그냥 손 놓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충전소의 마진을 현실에 맞게 올려주고, 교통카드 이용시 할인율을 높이기만 해도 효과가 있을 거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예산이 부족해서 당장 시행하기는 어렵다’고 말할 겁니다.”

익숙한 듯 공무원 흉내를 내며 어느 문방구 주인아저씨가 건넨 ‘유머’입니다. 걸핏하면 예산이 부족하다고 손사래를 치는 모습을 봐온 터라 틀림없이 그럴 거라 자신하기까지 했습니다.

“민자 도로의 적자를 보전해주기 위한 시의 예산이 만만치 않다는 거 들어보셨죠? 단순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만약 예산 부족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그 돈’은 있고, ‘이 돈’은 없다는 거잖아요.”

머지않아 차를 버릴 수 있을 거라는 큰 맘(?) 먹고 길을 나섰지만, 애꿎은 시간만 허비하고 돌아왔습니다. 당장 내일 아침 5부제에 걸린 탓에 버스를 타야하는데, 지갑을 열어보니 천 원짜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미리 껌 한 통 사서 잔돈으로 바꿔놓아야겠습니다.

‘번거롭기만 하고 누가 뭐랄 사람도 없는데, 내일 차 가지고 가버릴까?’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교통카드#광주광역시 대중교통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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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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