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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인물 김태수가 말을 타고 찾아간 무절경의 절경 서호
▲ 항주 교외에 있는 서호 이 소설의 인물 김태수가 말을 타고 찾아간 무절경의 절경 서호
ⓒ 김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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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식은 독립운동을 하러 찾아오는 젊은이들을 위해 학교가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한국 젊은이들의 교육을 더 이상 중국 학교에 위탁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동지들과 상의했다. 얼마 후 그는 프랑스 조계 명덕리에 박달학원을 설립했다. 박달학원에서는 영어, 중국어, 역사, 지리, 수학 등을 주요 과목으로 가르치기로 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수진이었다. 박은식과 신채호와 문일평과 정인보와 홍명희는 쟁쟁한 국내 학자였다. 그리고 중국 혁명의 선구자 농죽과 화교 학자 모대위를 초빙하기도 했다. 그는 영어 강습소 재학생을 우선 박달학원에 입학시켰다. 여기를 마친 젊은이 중에서 우수한 자를 차출하여 중국이나 구미로 유학을 보내는 청사진까지 작성했다. 이리하여 신규식은 3기에 걸쳐 중국과 구미의 대학에 100여명의 유학을 주선하는 성과를 내게 된다.

신규식은 청년들의 군사 교육에도 학과 교육과 대등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중국 각지의 군사 실력자 10여 명과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모두가 신해혁명에 참여해 목숨 걸고 싸워준 대가였다.

그는 중국 혁명 군부의 당계요, 이열균, 유영건, 상문율, 정잠, 노영상, 하순봉 왕탁부 등의 협조를 구하여 보정군관학교, 천진군수학교, 남경해군학교, 오송상선학교, 운남군관학교, 항주체육학교 등에서 100여 명의 한국인 졸업생을 배출시켰다.

“배우기 위해서는 훈련장 철봉에서 떨어져 죽든, 강의실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죽든 두려워하지 말라. 다만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만을 목표로 하라. 그대들은 모름지기 나라 잃은 삼천만 겨레를 위해 싸워야 할 사람들이다. 여러분의 영광은 겨레의 영광이다. 모든 힘을 다해 다오.”

신규식은 학생들의 유학 주선은 물론, 숙식, 학비, 여비, 여권 등 일체의 편리를 제공했다. 그는 상해와 남경과 천진과 항주 등을 사흘이 멀다고 찾아갔는데 이것이 모두 학생 유학과 면학 독려를 위한 것이었다. 그는 한국 학생의 공부를 위해서라면 누구나 영접하고 전송했으며, 어디나 찾아가서 인사하고 부탁했다. 그의 교육 사업 열정은 독립운동 못지않게 뜨거웠다.

신규식은 틈나는 대로 한시 창작에도 몰두했다. 그는 민영환과 안중근을 기리는 칠언절구를 지어 보았다.
     
       통곡, 민충정공

유례없는 충정은 일월과 다투었고
한평생의 큰 뜻은 역사를 아울렀다.
통한은 여전한데 몸이 먼저 죽으니
산 사람은 두고두고 피눈물을 적신다.

        하얼빈 거사(擧事)

푸른 하늘 대낮에 총성 네 발 울리자
지구인들 간담이 싸늘하게 식었다.
영웅 한 번 성 내자 간웅 심장 터지고
독립만세 삼세번 조국이 살아났다.

그는 상해에 오기 전 들렀던 북경 중심가에 있던 대한제국 공사관 자리에 프랑스 은행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고 비애를 느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한동안 말없이 서서 우울하고 허탈한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다음 날 신규식은 독립운동의 의지를 시로 써서 남기기도 했다.

  스스로 기도하며 쓴 시

삶은 결코 우연한 게 아니라는
옛사람의 말은 언제나 정당하다
이 세상에 발 딛고 살아 있는 한
모든 일을 두 어깨로 짊어져야 한다.
모름지기 스스로 세월을 사랑하려고
한밤에 일어나 글이라도 써 본다.
봄기운은 미세하게 느껴지지만
달은 아직 하늘에 차오르지 않았다.

사랑

김태수는 또다시 백주원을 연구하고 있었다. 조선에서도 무수히 해 본 추리를 그는 반복하고 있었다. 일단 그녀는 일본인은 아니라고 생각 들었다. 그녀가 경무총장의 비서 비슷한 일을 했다고 해서 일본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는 거였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인이라는 증거도 없었다. 있다면 백주원이라는 한국식 이름 석 자인데, 이름이야 얼마든지 바꿔 쓸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태수는 왠지 그녀가 조선인이라는 확신을 굳히고 있었다. 그녀의 이미지는 일본 여자하고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김태수는 그녀가 오히려 중국 여자일 수는 있어도 일본 여자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그녀의 직업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그녀가 총독부 경무총장의 신임 받는 비서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한 달도 안 돼, 일본 정보 기관원인 듯해 보이는 자들에게 체포될 뻔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진짜로 하는 일은 따로 있다고 봐야 했다.

범죄를 저질러 발각되었거나 아니면 조선 독립군 밀정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태수는 그렇게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을 범죄자나 독립군 밀정과 일치시킬 수가 없었다. 차라리 중국을 오가는 무역상의 딸이라고 하면 어울릴 듯싶었다.

또한 궁금한 것은 그녀의 신상이었다. 먼저 그녀는 기혼녀인지 미혼녀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미혼녀라 하더라도 남자가 있는 여잔지 아닌지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기혼녀더라도 남편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태수는 그녀에게 남자는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었다. ‘당신의 눈빛을 황홀하게 느꼈다’는 편지의 짤막한 한 구절에서 김태수는 그런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녀는 거짓말을 할 성싶지 않아 보이는 여자였다. 차라리 김태수의 아내 최도애에게 남자가 있었다면 모를까 백주원에게 남자는 없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김태수는 그녀가 자신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걱정되었다. 그녀는 항주에 당분간 있겠다고 했으니 꽤 시일이 흐른 지금은 다른 데로 옮겨 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를 찾으려면 항주에 오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녀가 떠나며 자신의 행선지를 알려 준 것은 최소한 찾아와도 무방하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라고 김태수는 생각하고 있었다. 

항주에 여장을 푼 김태수는 즉각 백주원 찾기에 나섰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사서 일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다섯 명의 용역을 사서 풀었다. 가장 빨리 알아오는 자에게는 포상금까지 걸어 놓았다. 그러니 이제는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그는 도시를 유람하기로 했다.

그는 황강을 타고 객사를 나섰다. 그는 아주 한가하고 태평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보았다.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지상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

이 말은 뭇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그만큼 소주와 항주는 풍경이 아름답고 미인이 많다고 했다.

조선의 문학 작품에도 소주와 항주는 자주 등장했다.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미인 많은) 소주에서 태어나, (풍광 좋은) 항주에서 살고, 광주에서 (광동 요리를) 먹고, 유주 (의 좋은 나무 관에) 들어가 죽는 게 소원이라는 말을 한다고 했다.

객사에 돌아 온 김태수에게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밀정들에게서는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도 그렇게 빨리 연락이 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3일이 지나고 닷새가 되어도 누구 하나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김태수는 마음을 여유 있게 먹기로 했다. 조선에서 기다린 1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음 날 그는 익히 이름을 들어 알고 있는 서호 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는 다시 한 번 마음을 여유 있게 먹어야 한다고 자신을 달래 보았다.

항주의 아름다움을 배가시키는 것은 교외에 있는 서호였다. 서호는 중국 역사상 독보적 미인이었던 서시(西施)에 비견되었을 정도로 아름다운 호수였다. 얼핏 보면 낮은 산들과 평범해 보이는 수목으로 감싸진 호수는 별게 아니라는 첫인상을 주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김태수는 물과 산이 아주 단순한 자연 그대로 제 자리에 있는 호수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무기교의 기교라는 말이 있을 수 있다면, 무절경의 절경도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말이었다. 그는 서호의 풍광에 아예 넋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덧붙이는 글 | 제국주의에 도전하는 한국인들의 이야기입니다.



태그:#박달학원, #서호, #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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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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