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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자욱 눈 쌓이고 처음을 내 딛는 발자국. 그 기분은 겪어본 사람이면 공감할 수 있다. |
ⓒ 임준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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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립니다. 약간 내릴 줄 알았던 싸래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기어코 발목만큼 쌓였습니다.
집을 나서 걸어봅니다. 사진기를 한 손으로 그러잡고, 집 앞에서 천천히 걸어갑니다. 손이 시려 호호 불면서 둘러봅니다. 아직 침범당하지 않은 농로가 보여 그쪽으로 향합니다. 한 걸음씩 조심스레 걸어봅니다. 부츠는 내 발보다 더 큰 발자국을 남기고 눈을 발자국 주변으로 흩뿌립니다.
꽤 지저분해 보이던 집앞의 잡다한 것들이 눈에 가려 차분해 보입니다. 언제 지어진 지 모르는 화장실이 지금은 쓰이지 않은 채 시야의 가운데를 가립니다. 멀리 불을 때는 집도 보이고 교회의 십자가도 어렴풋이 보입니다.
70여 호의 작은 마을 입니다. 그 마을에 들어온지 2년이 다 되어가는 때에 저는 집을 짓고 있습니다. 이런 풍경이 좋아서 산골을 택했습니다. 다 좋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고즈넉한 아침의 경운기 소리도 좋고, 새벽에 들로 나가는 노인들의 정담이 창틈으로 들리는 이곳이 좋습니다. 새소리와 바람소리, 비오는날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맑은 공기와 훈훈한 인심.
지금 짓는 집도 보입니다. 날이 풀리면 어서 시작해야 하는데 마음만 급합니다. 벽체와 내부공사일정이 빡빡해서 올여름까지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춥게 느껴지는 것이 답답한 마음도 듭니다.
이곳은 겨울이 꽤 깁니다. 4월까지 서리가 내릴 정도니까요. 더구나 흙으로 벽을 바를 때는 얼면 안 되기에 일중 최저기온이 영상이 될 때를 기다려야 할 겁니다. 언제 다 한다지. 집에서 아기를 데리고 있는 아내 얼굴이 슬며시 떠오릅니다.
바람은 불고 가슴 한쪽이 허전합니다. 겨울에 할 일이 없어서 더 그런가요. 한가함을 즐기기에도 아직은 준비가 덜 된듯한 나를 보며 싱긋이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