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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노무현이 꿈꾸던 한국정치의 이상향은 무엇이었을까? 평가하는 이에 따라서 각기 다를 수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향점에 있어서는 대체로 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있다. 그 것은 바로 탈지역구도와 책임정치의 풍토정착이다. 이 두가지 과제는 한국의 정치가 지금의 저열한 수준을 넘어서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지역으로 대립하는 정치는 저질정치.

 

보통 민주국가의 정치는 각 정치세력이 정책적 지향을 놓고 경쟁한다. 세계 어느 곳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지역감정은 존재할 것이다. 다만 지역별 대립의 정도가 정치에 있어서의 핵심적 상수는 아니다. 각 정당마다 자신들의 강세지역이 있고, 약세지역이 있게 마련이지만 도저히 극복하지 못할 난공불락의 아성이 되지는 않는다. 정책이나 정치행태등에 따라서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정치에서의 지역구도는 이미 그런 차원을 훌쩍 넘어 버렸다. 영남과 호남의 지역정가를 살펴보면 그 심각한 현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광역단체장과 광역의회를 지역주의 정당이 독식하고 있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도 같다. 지역행정조직에 대하여 적절한 견제가 필요하지만 일당독식의 구도속에서는 그런 기능은 기대할 수가 없어진다. 서로 이권을 챙겨주고 부정한 방법으로 나누어 가지기에 바쁠 뿐이다.

 

중앙무대에서 활약하는 국회의원들도 모조리 특정지역에는 특정정당이 독식하고 있다. 또 그들은 지역정가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공천장사에 여념이 없다. 지역별로 독점하는 정치구도를 만들어놓고 깨끗한 정치를 원한다면 그런 국민은 매우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이 그러한 구도속에서 가장 먹을 것이 많다고 생각하고, 정치를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허물어지지 않도록 노력할 뿐이다.

 

특히 영남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정당의 경우 이러한 구도가 대단히 유리하다. 이렇게 거저 먹는 정치구도를 허물 이유가 없다. 다만 너무 그런 구도를 즐기는 모습으로 보이면 국민의 외면을 받을까 안그런 척할 뿐이다. 지역을 각기 대표하는 정당은 그러한 구도를 서로 고착화시키고, 다른 지역에서 좀 더 파이를 키우기 위해극심한 대립으로 날을 지샌다. 정상적인 정책경쟁은 매우 하찮고 의미없는 것이 되고만다. 결코 이러한 지역구도를 그대로 두고는 좋은 정치를 향유할 수 없다.

 

책임정치의 원리를 무력화하는 철새정치.

 

여의도는 철새도래지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의 정치인들이 그만큼 원칙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것보다 이리저리 이익을 쫓아 보따리를 싸들고 돌아다녔다는 것을 풍자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아서 공직에 당선되면 최선을 다해서 봉사하고, 그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순순히 받아들여야한다.

 

국민의 외면을 받았다면 더욱 노력해서 다음에는 다시 지지를 받도록 노력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약간의 유불리에 따라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철새정치인들은 국민을 속이고 책임정치의 원리를 무력화하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심지어 당내경선에서 패배한 후 탈당하고 독자출마를 하는 정치인들이 버젓이 국회의원이 돼서 여의도에 다시 나타나는 현상은 우리정치의 저열한 수준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이인제의원이다. 그는 야당인 통일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YS의 삼당야합에 아무런 이의없이 따라 나섰고, 민자당에서 정치를 했으며, 당명을 바꾼 신한국당에서 경기도 지사를 역임하였다. 다시 당명을 바꾼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하였다 낙선하고 탈당하였다. 국민신당을 스스로 만들어서 대선에 3위를 한 그는 새천년 민주당으로 보따리를 싸들고 들어갔다. 또 다시 2002년 경선에서 패배한 후 탈당해서 자민련으로 갔고, 다시 자민련을 나와서 국민중심당으로 갔다가 또 다시 민주당으로 유턴을 했다. 대선후보가 되었고, 0.7%라는 처참한 지지율을 얻었다. 그런 그가 여전히 국회의원이다.

 

그를 제외하고도 수도 없이 많은 정치인들이 보따리를 싸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다시 탈당해서 통합민주당으로 가더니 또 다시 탈당해서 대통합 민주신당에 합류한 일단의 정치세력이 있다. 그 들은 이제 또 다시 합당하여 통합 민주당의 소속이 되었다. 단순히 당적의 변경만을 문제삼자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한 때는 우군이라며 추켜세우던 대통령을 지지율이 떨어지자 모두 짖밟고 떠나버린 사람들도 있다. 항상 여당으로만 옮겨다닌 사람들도 있다.

 

국민이 정치적 판단으로 지지를 하거나, 심판하는 의미로 외면을 하는 것을 회피하는 정치행보는 반민주적인 것이다. 패배가 뻔한 길이라도 진득한 참을성으로 재기를 꿈꾸며 바른 길을 가는 정치인들이 많아야 책임정치가 가능해진다. 그렇게 외면을 받았다가도 다시 노력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더욱 좋은 정책을 제시하는 정치가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이며 정치발전인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국민의 심판을 회피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노무현의 꿈이 녹아있던 열린우리당.

 

민주당의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이었다. 구주류의 온갖 협잡과 반칙이 난무하는 가운데 어려운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대선후 곧장 당내 정치인들의 쟁투는 헤게머니 장악을 위한 이전투구로 변질되고 있었다. 노무현의 편에 섰던 정치인들은 당을 쪼갤 결심을 굳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은 분당에 반대하였다. 바로 책임정치의 원리를 스스로 허물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럴싸한 명분까지 내세우고 분당을 감행하였다. 지역구도의 극복을 지향하는 정당,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100년정당, 상향식 당내 민주주의를 채택하는 운영원리등이다. 당시의 한국정당들이 도저히 엄두를 못내는 중요한 명분들이 모두 거기에 담겨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의미있는 정당이 하나 탄생한 것이다.

 

문제는 참여했던 정치인들이 어려움을 진득하게 참고 견딜 역량이 없는 인사들이었다는 점이다. 탄핵에 힘입어 국회과반 의석을 차지하였지만 그들은 계파를 만들어서 다투기에 바빴다. 누가 차기 대권주자가 될 것인지, 누가 당권을 장악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지를 다투는 일에 몰두하였다. 창당시 내세웠던 명분도 약속도 모두 헌신짝처럼 내다 버리기에 바빴다.

 

선거마다 연전연패를 거듭할 뿐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파악조차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지지율이 낮아지면서 모든 문제를 대통령에게 뒤집어 씌우고, 당을 열심히 돕던 당원들을 원망하기 바빴던 것이다. 자신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며 발뺌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결국 탈지역주의도, 책임정치도, 상향식 민주주의도 모두 불편한 허울로 여겨졌던 것이다.

 

스스로 과거로 회귀를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다 죽어가던 호남지역당과 합당을 운운하며 그 들을 부활시키고 말았다. 그 것은 호남의 몰표라는 꿀단지를 그리워하는 어린아이들의 모습과도 흡사할 정도로 유치하기 그지없는 짓이었다. 갈수록 지지율은 낮아지고 그 것에 더욱 불안을 느낀 그들은 점차 자신들의 당을 허물어가는데 노력하고 있었다. 결국 다시 지역구도를 복원하고, 집단철새가 되어 책임정치를 절단내고 만 것이다.

 

아직도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모르고 있다. 지금 통합 민주당의 지지율은 최악의 상황이던 과거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에 비해서 절반도 안되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탈지역구도와 책임정치의 원리를 무력화한 대가를 다 치르려면 아직도 멀었다. 그렇게 과거로 회귀한 철새집단이 다시 국민의 신뢰를 받고 정치권에 우뚝 서게 된다면 한국정치는 다시 20년전으로 퇴보하는 것이다.

 

노무현의 정치적 절망.

 

이제 대통령을 역임하고 퇴임하였으니 직접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일은 그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던 탈지역구도와 책임정치라는 중요한 원리마저 모조리 무너져버린 것은 그에게 커다란 절망을 안겨줬을 것이다. 스스로 열린우리당이 무너지던 때가 탄핵을 당하던 때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한 바가 있다. 또 외부의 적보다 내부에서의 분열이 더 무섭다고도 하였다.

 

스스로 정치인생 전체를 통해서 주장하고 추구하던 지향이 무너진 것에 대하여 절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미 대통령을 역임한 그가 이미 무너진 토대를 다시 쌓고 복원을 꿈꿀 수도 없고 난감함이 느껴질 것이다. 누가 그의 꿈을 이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허물었던 것일까?

 

첫째, 스스로의 불찰이다. 사실 당정분리와 공천불개입과 같은 것이 열린우리당의 계파간 과열경쟁을 촉발한 측면이 있다. 물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욕심이 과도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열린우리당의 내부 구성원의 한계를 파악하지 못한 채 공천권을 모두 맡기고, 당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 소극적이었던 점이 실수였던 것이다. 물론 스스로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을 유지하지 못한 책임도 있다.

 

둘째, 자신들의 당권장악과 대권경쟁을 위해서 원칙없이 욕심부린 정동영과 김근태의 잘못이 매우 크다. 그 들은 분명 당내지분이 가장 컸던 계파의 수장들이었다. 당의 창당명분에는 아무런 신경도 기울인 일이 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서 공동운명체인 대통령을 공격하고 차별화했으며, 심지어 든든한 지지세력이었던 당원들마저 몰아내기에 급급하였다. 결국 그럴싸한 명분을 가진 당을 허물어 버리고 보따리싸들고 철새정치를 실현하고 말았다.

 

셋째, 대의가 없는 일에 대세를 따랐던 이해찬과 유시민의 잘못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래 주장하던 열린우리당의 지향에 대한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을 했어야한다. 열린우리당이 분당으로 지리멸렬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뿌리나마 보전하는 데 모든 노력을 경주했어야한다. 대통합 민주신당에 참여해서 또 다른 보따리 장사가 돼 버린 일에 처절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노무현이 꿈꾸던 정치는 결국 절망으로 남아있는 상태이다. 정치적 근거도 상당부분 이미 상실한 상황이다. 이제 정치권에 친노세력은 눈을 씻고 찾아도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인적 친소에 의한 친노가 아니라 가치지향의 측면에서 친노는 거의 괴멸된 것이다. 남은 것은 그나마 시민사회속에서 정치개혁을 갈망하는 세력 일부에 불과하다.

 

지역구도를 극복하려는 정치세력이 정치권에 이제는 없다. 철새정치를 배격하고 진정한 책임정치를 묵묵히 구현해 나가는 정치세력도 없다. 그리고 노무현은 이미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 누군가 다시 정치권에 나타나서 탈지역구도를 외치며,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100년 정당을 꿈꾸는 때가 다시 올 수 있을까? 기대할 일은 아닌 것같다. 여전히 국민은 지역을 투표에 있어서 최우선의 변수로 여기고 있다. 철새정치인들의 행각에 정확히 철퇴를 가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여기서 더 발전시키는 일은 지역구도의 극복과 책임정치 구현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물러난 정치인 노무현의 꿈은 여전히 우리의 미래과제인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절망적이라도 반드시 그 불씨를 다시 살려내야만 한국정치의 미래가 열린다. 누가 앞장설 것인가?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노무현#탈지역구도#책임정치#철새정치#100년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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