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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과 비이슬 동백의 낙화, 수선화의 이파리에 맺힌 비이슬에 다시 피어났다.
동백과 비이슬동백의 낙화, 수선화의 이파리에 맺힌 비이슬에 다시 피어났다. ⓒ 김민수

이미 남녘땅에는 봄 기운이 충만한데 중부지방은 아직도 봄이 먼듯 연록의 빛을 여간해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나뭇가지마다 물을 머금고 곧 피어날 듯 봄을 준비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봄이면 초록의 빛깔, 그리고 그들 가운데 피어난 작고 수수한 들풀의 꽃, 간혹은 농익은 듯한 붉은 동백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었다 봄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아쉬운 이별을 하는 풍경 정도가 되어야 봄이라 하지 않겠는가!

우수를 전후해서 맹추위가 움츠러들었다. 그들이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켜며 꽃샘추위를 몰고 오겠지만 가는 이들의 심술이 한 겨울 동장군만 할까? 오는 봄을 막을 겨울없고, 가는 계절 붙잡을 세월이 없는 것 아닌가?

복수초와 비이슬 봄을 알리는 꽃 복수초, 작은 비이슬에도 가득 피어났다.
복수초와 비이슬봄을 알리는 꽃 복수초, 작은 비이슬에도 가득 피어났다. ⓒ 김민수

복수초, 벌써 피어난 복수초를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 서울, 콘크리트 회색도시에 사는 덕분이다. 초록의 생명들을 포기한 대신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과연 그것이 지혜로운 것이었을까 묻는다.

저 남녘땅 제주에 살 적에는 이맘 때면 수선화, 복수초, 변사바람꽃과 냉이꽃, 광대나물의 보랏빛 꽃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텃밭에서 풋풋한 상추를 뜯어 먹을 수도 있고, 조금 들판으로 나가 수고를 하면 파뿌리만큼이나 실한 다래와 씀바귀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도시의 삶은 그런 조금의 여유를 갖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만 한다. 재래시장에 들러 투박한 좌판에 놓여있는 풋풋한 봄나물을 구경하는 것으로 봄맞이를 한다.

광대나물과 비이슬 바보꽃이라도 좋다. 봄, 어서 오라
광대나물과 비이슬바보꽃이라도 좋다. 봄, 어서 오라 ⓒ 김민수

"이름이 광대나물이야? 그러면 먹을 수도 있겠네?"
"글쎄요…."

꽃 이름을 하나 둘 알려주면 신기하다며 한 번 가르쳐 준 이름을 잘도 기억해 내던 선배 한 분이 있었다. 참 따스한 분이셨는데 암투병 중 세상과 이별을 했다. 세상과 이별을 앞두고도 덤덤했다.

"왔던 곳으로 가는 거지 뭐. 조금 섭섭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는 갔다. 사람들의 삶, 어쩌면 광대놀음과 같지 않은가? 목숨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던 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 일 같았는데 지나고 나니 참으로 소중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 우리네 사람들이다. 소중한 것을 다 소중한 것으로 알지 못하고, 버려야 할 것을 버려야 할 것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인생의 묘미리라.

괭이밥 이파리와 이슬 이른 아침 만나는 이슬, 그들처럼 맑고 깨끗한 것들이 또 있을까?
괭이밥 이파리와 이슬이른 아침 만나는 이슬, 그들처럼 맑고 깨끗한 것들이 또 있을까? ⓒ 김민수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린다. 이제 저 봄비를 맞고 겨울 지나기를 기다렸던 신록의 생명들이 하나 둘 스프링처럼 튀어오르겠지? 그런 것들을 바라볼 수 있어 '봄'이라는 단어도 좋지만 'Spring'이란 단어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봄은 작은 이슬처럼 다가온다. 이른 아침 풀섶을 바라보면 송글송글 맺혀있는 이슬방울처럼 그렇게 다가온다. 그러다가 햇살 비치면 이내 사라지는 이슬방울처럼 봄도 그렇게 간다. 참으로 짧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인가, 아니면 아름다워서 짧은 것인가?

새싹과 일액현상 필요한 만큼만 갖는 지혜, 자연은 비만이 없다.
새싹과 일액현상필요한 만큼만 갖는 지혜, 자연은 비만이 없다. ⓒ 김민수

밤새 비가 내린 뒤 아침이면 풀들은 제 몸에 있는 물을 내어놓는다. 일액현상이라고 한다.
필요한 것 이상을 갖지 않는 자연, 그러니 자연의 법칙을 따라 살아가면 비만이 없다. 그들을 보면 마치 노동자들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건강한 땀방울을 보는 듯하다.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서 쌓아놓는 '부의 축적'이 목적이 되고, 성공이라고 불리는시대를 살아간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을 배려할 줄 모르는 세상, 그들을 실패자라고 낙인찍는 세상은 허무한 것을 추구하는 세상이다.

봄을 기다리며 나는 무엇을 보려고 하는가? 무엇이 보고 싶은가? 내가 보고자 하는 것, 보는 것이 마음 한 켠 따스하게 하는 것들이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카페 <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봄비#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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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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